뉴욕빌라델비아장로교회 | 김혜천 목사
콜로라도 주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참사는 미국에 또 다른 소용돌이치는 후폭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총기규제에 대한 논란이다. 총기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미국은 총기규제에 대한 첨예한 쟁론을 벌린다. 왜 그럴까?
미국문화를 들여다보면 미국인들은 무기에 대한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은 독립전쟁 때에 각자가 개인의 무기를 들고 독립전쟁에 참여했다. 서부 개척시대에는 자신이 무기를 들고 스스로를 지키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총기 소유문화가 정착되었다. 대형총기참사 이후에 일어나는 총기규제 논란은 항상 미국수정헌법 2조의 벽에 부딪힌다. 헌법은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국민의 권리는 침해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기소지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총기소지와 휴대는 “생명이나 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인간의 기본권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미국의 논쟁을 보는 외부의 시선은 다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21일 “총기규제는 늦었다”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총기소지가 천부인권이라는 미국 총기지지자들의 논리를 비판했다. 사실 미국과 달리 한국, 영국, 캐나다, 프랑스, 일본, 이스라엘 등에서는 총기소지를 제약하고 있다.
이번 총기난사 참사의 범인 제임스 홈스의 행적을 보면 총기규제에 대한 논란이 일어날만 하다. 미국의 총기관리에 큰 구멍이 있다. 그는 무기를 구입할 때에 인터넷을 통해 책을 주문하듯 구매했다. 4개월 동안 인터넷에서 6천발 이상의 탄알을 구입했다. 범행에 사용한 총기 역시 오로라의 한 총기판매점에서 합법적으로 구입했다. 미국의 총기문제는 단순한 공기총이나 사냥용이 아니라 대량살상 무기들도 구입할 수 있는 심각한 국면에 이르렀다.
미국의 가정은 1977년에 54%가 총기를 가지고 있었다. 이 수치는 2010년에는 32.3%로 크게 줄어들었다. 이번 총기참사 후 지난 20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나는 우리가 향후 이러한 의미 없는 폭력을 어떻게 저지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심사숙고하게 되길 바란다”고 말하며 근본문제인 총기규제를 다시 비켜갔다. 공화당의 경쟁자 롬니는 아예 애도만을 표했다. 굳이 참사와 총기규제를 연결시키지 않겠다는 입장인 것이다.
총기규제는 미국인들이 서로 양보할 수 없는 뜨거운 감자이며 생명을 거는 이슈 중에 하나이다. 매 선거 때마다 총기규제는 중요 쟁점이고 피 튀기는 싸움을 한다. 팽팽한 기싸움을 벌린다. 하지만 총기규제는 늘 실패한다.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로비단체인 미국총기협회 NRA의 영향력 때문이다. 4백3십만명 회원을 두고 있는 전미총기연합(NRA)은 버지니아 주와 오하이오 주에서 선거결과를 좌우하는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볼 것인가? 쉬운 대답이 없다. 총기규제를 찬성하는 사람이나 총기를 소유하는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이나 다 성경을 인용하고 있다. 양편의 주장은 다 원색적이고 접촉점이 없다. 우리는 보다 원리적인 면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먼저 우리가 어떤 도구를 악으로 여길 수 있는가? 악의 도구의 리스트에 총기나 다른 무기를 넣을 수 있는가?
전 총기소유주 대표인 Larry Pratt은 총기소유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무기에 대한 기원은 성경 창세기 4장에 처음 나온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최초의 살인에서 나온다. 성경은 무슨 무기를 썼는지에 대하여 정확하게 말씀하지 않지만 아마도 칼이나 돌을 사용하였을 수 있다. 무슨 무기이었는가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살인하려는 악한 마음이 문제이다. 하나님은 아벨에게 분노하고 있는 가인에게 무기를 버리라고 하지 않으시고 네 마음을 다스리라고 하셨다. 범죄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무기를 제거하신 것이 아니라 살인자를 추방하셨다. 창세기 9장은 사형을 명하시지만 또한 무기를 제거하는 말씀은 없으시다.
총기를 악한 물건으로 죄악시 할 수 있는가? 아니 그 자체가 악한 물건이 있는가?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귀신이 붙어있는 물건 등은 믿지 않는다. 물건 자체에 마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존재 자체가 악한 것도 있다. 우상은 그 목적이 사람을 유혹하여 넘어지게 하는 것이니 그 자체가 악한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신으로 믿는 죄악이다. 우상 자체에 힘이 있는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은 우리 앞에 우상을 두지 말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총기 자체가 악한 것인가? 성경은 무기 자체를 악하다 하지 않으셨다. 에베소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통해서 신앙의 완전무장을 요구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칼로 비유하셨다. 시편127:4-5은 장사의 전통에 가득한 화살은 복되도다 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들도, 천사도 무장함을 보여준다.
총기소유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구약에 보면 자기방어의 정당성의 예를 든다(출22:2-3). 그래서 정당방어를 위해서 무기소유가 필요하다는 논리이다. 물론 성경은 정당방어를 죄악시 하지 않는다. 악과 싸우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그래서 무기 자체가 악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같은 칼이지만 칼은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서 주님의 일을 위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칼이 살인의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칼은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 짐승을 잡기 위하여 사용할 수 있다.
문제는 무기 자체가 아니라 사람이 중요하다. 악한 사람인가 아닌가? 마음에 무엇을 두고 무엇을 하는가가 중요하다. 왜 무기를 만드는가 하는 그 의도가 중요하다. 성경에 보면, 살인무기를 최초로 만든 사람들도 역시 가인의 후손들이다. 가인의 후손인 두발가인은 무기 제조자의 시조이다. 또한 라멕이 무기를 사용하겠다는 선언은 정당방위가 아니라 무기를 들어서 다른 사람들을 위협하고, 또한 위협함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시키려는 의도이다. 마치 오늘날 흉기를 든 사람의 잔악한 횡포를 보는 것과 똑 같다(창4장). 문제는 무기를 소유하면 소유할수록 폭력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많아진다는 사실도 묵과할 수 없다. 불과 얼마 전에도 여러 가정들에서 집안에 둔 장전된 총기를 가지고 놀던 아이들의 총기오발 사고들로 많은 아이들이 희생당한 사건들이 총기규제에 대한 논란을 불지핀 적이 있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분명히 무장하여 있었다. 그는 무기로 다른 사람을 침략하고 노략하지는 않았지만 조카 롯을 공격한 그돌라오멜 연합군을 기습하여 소돔과 고모라 지경의 사람들과 조카 롯을 구한다. 그는 분명히 무기를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전쟁의 영웅이 아니라 평화의 사람이고, 신앙의 영웅으로 기억된다.
오늘의 미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필자는 미국의 총기규제의 논란은 미국문화의 독특성에 근거를 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총기규제의 정당성을 혹은 총기소유의 정당성을 성경에서 찾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성경을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 가를 겸손하게 듣고 해석하는 exegesis를 벗어나게 된다. 도리어 내가 원하는 것을 결정해 놓고 성경을 통해서 나를 정당화 하려는 isogesis의 죄를 범하게 된다. v미국의 총기소유 자체가 죄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미국의 총기규제에는 허점이 너무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총기소유가 아무리 헌법에 규정된 권리라고 해도 적정한 관리는 필요하다. 그렇다고 총기규제만 하면 아무런 사고가 없을 것이라 믿는 것도 너무도 순진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무엇보다도 사람의 마음에 가득한 죄로 인하여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죄를 회개하고 버리지 않는 한 총기가 없더라도 또 다른 도구를 흉기로 사용하여 더 흉악한 일을 저지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사는 마지막 시대는 날이 갈수록 무기가 더욱 더 흉용하게 될 것이다. 두발가인이나 라멕의 무기와 비교할 수 없는 잔악한 무기들이 세상에는 가득하다. 총기규제가 해답이 아니다. 총기소유가 해답이 아니다. 회개하고 거듭난 영혼을 가지고,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득 채울 때에만 이런 고민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될 것이다.
▲이메일: revdavidkim@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