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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경건생활 (The Piety of John Calvin)

이윤석 목사 (NY 부르클린제일교회)
이윤석 목사

3)『교황권 안에 있는 신앙인이 취해야 할 행동은 무엇인가 (1543)』(2)

 

(5) 미사는 우상숭배행위

 

우리는 미사를 이교도의 우상숭배라고 낙인찍어야 하는가? 분명한 사실은 그것이 부패한 것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경배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도가 내포된 것으로 인위적으로 고안된 우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므로 그같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우상적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위험하다고까지는 볼 수 없지 않겠는가? 이런 논증은 칼빈에게 감동을 주지 못했다. 그는 이렇게 답변한다. “만일 여러분이 왜곡되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을 경배한다면 여러분은 우상을 섬기는 것이다”

 

(6) 당시의 미사관행

 

그러면 칼빈 당시의 미사는 어떠했는가? 가톨릭교회의 모든 의식들을 다 비난하자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그릇된 것들만을 비난하자는 것이다. 복음주의적인 기독교인이라면 일일미사에 참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명백한 우상숭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찬미사는 어떤가? 그것은 성만찬을 기념하는 것이므로 낫게 보아줄 수 있지 않을까? 아니다. 그것은 성찬을 더럽히는 것이요 그 자체가 이미 우상숭배이다. 미사에 뒤이어 사제가 죄를 용서해주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침해하는 것이다.

 

(7) 위선적인 우상숭배의 관습

 

 칼빈은 개혁되지 않은 기독교인이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범하게 되는 우상숭배 행위들을 개관하면서 그 행위들이 신실한 신자들이라면 마땅히 피해야 할 가증한 것들이라고 낙인찍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 같은 관습에 순응해야 한다는 수많은 구실들이 제시된다. 이런 의식들에 참여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들 눈이 무서워서 어쩔 수 없이 참여한다면, 그것이 그렇게 무서운 죄로 취급되어야 하는 것인가? 이보다 더 무서운 죄들이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칼빈은 그런 위선은 가벼운 죄가 아니라고 일침을 가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이 영혼과 육체를 통해 자신을 하나님께 성별하여 바쳐야 한다는 하나님의 요구에 정면으로 대립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영적 성별은 육체적 성별에 선행한다.

 

(8) 핍박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

 

또 하나의 핑계가 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순결하게 섬기고 싶다고 선언한다면 그것이 무슨 유익을 주는가? 이 질문에 대해 칼빈은 이렇게 대답한다. 만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이라면 그리스도인은 핍박, 곤경, 투옥, 추방 그리고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핑계는 또 남아있다. 모든 사람이 다 우상숭배를 포기한다고 가정해 보라. 그때는 적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있는 모든 나라들이 신자들을 빼앗아 갈 것이며, 하나님을 순수하게 예배하는 곳에는 더 이상 사람들이 모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반응에 대하여 칼빈은 이렇게 답변한다.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주님께서 신자들을 보호하실 것이다. 왕들과 행정왕관들의 마음을 회심시켜서 우상숭배를 포기하고 진정한 하나님 예배를 확립하게 하든지, 최소한도 그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녹여서 신자들이 양심을 더럽히지 않도록 배려해주든지, 지나칠 정도로 잔인하게 대하지 않도록 배려해주실 것이다.

 

(9) 하나님의 증인들을 더 일으키신다

 

그 밖에도 얼마든지 다른 핑계들을 열거할 수 있다. 복음을 따르는 자들이 죽어 없어진다면 씨앗이 제거되는데, 어떻게 복음의 교리가 증가될 수 있겠는가? 칼빈의 답변은 날카롭다. 진리에 관한 지식을 가진 모든 자들이 그들의 의무를 반만이라도 수행한다면 이 세상에는 진리의 지식이 없는 구석이 한군데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용기가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한 사람이 사라지면 하나님께서 네 사람을 일으키실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라.

 

(10) 칼빈 자신에 대한 조롱

 

마지막 핑계는 칼빈에 대해 퍼붓는 조롱이다. 너처럼 안전한 곳에 들어앉아서 말하는 것은 누구인들 못하겠느냐? 네가 우리 입장에 한번 서보면 너의 태도도 우리와 똑같이 될 것이다. 칼빈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사랑하기 위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나의 양심이 지시하는대로 따를 뿐이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는 우상숭배를 피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곳에 내가 있다면, 나는 주님께 나에게 힘을 주시고 주의 영광이 언제나 나의 삶 위에 머물게 해달라고 기도할 것이다.

 

(11) 칼빈의 마지막 충고

 

순교에 대한 요청을 받은 바 있는 칼빈은 복음적인 기독교인들에게 마지막 충고를 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을 순결하게 예배할 수 없는 나라에 살고 있다면 할 수 있는 한 피난을 가라. 만일 도망칠 수 없다면 혼자 하나님을 순결하게 예배하면서 우상숭배를 제어하라. 그러나 힘도 꾸준함도 없이 부모, 가족 등으로부터 제재를 받고 있는가? 당신의 연약함으로 극복할 수 있는 한 가장 확고하고 건실한 충고를 따르라. 사람들이 무서워서 올바른 길로부터 떠나게 될 때는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라. 하나님의 자비를 얻기 위해 날마다 마음을 겸손하게 가지라. 그 뒤에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실 것을 구하든지 아니면 당신이 하나님을 적절하게 섬길 수 있는 교회가 세상에 형성되도록 간구하라.

 

이와 같이 칼빈의 논문들은 목회적인 관점에서 고통을 겪는 자, 이미 마음에 영향을 끼친 거듭남을 실행에 옮기기를 갈망하던 자들의 방향을 뚜렷하게 설정하지 못한 삶에 적용된다. 칼빈은 어려운 시대를 살다간 신학자였다. 교회가 풍요의 커튼에 뒤덮일 때 어려운 시대를 맞이할 때가 많다. 16세기에 진정한 의미에서 개혁적인 신앙을 방해했던 모든 세력들이 지금 시간에도 그대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의심에 찬 신앙인들과 학식 있는 조롱자들이 교회 내에 들어와 있다. 심지어 신학교에도 침투해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에 실패했을 때 우리가 어떤 범주의 방해꾼에 속하느냐 하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자아를 부인하라! 하나님을 따르라! 자신의 십자가를 지라! 내세에 대한 소망으로 현세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라! 이 같은 경건을 따르지 않는다면, 어떤 충고가 따라야 할 것인가!

younsuklee@hotmail.com

 

10.19.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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