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터성경사역원 LA 지부장
하늘소망교회 담임
우리는 구약과 신약을 이어주는 중간사를 시작으로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길을 함께 걸어왔습니다. 오늘은 공동서신과 요한계시록을 살펴보며 신약을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는 신약도 구약과 마찬가지로 ‘역사’라는 길을 따라 읽어왔습니다. 그래서 사복음서에 기록된 모든 예수님의 사역을 유월절을 기준으로 한 시간순서대로 재배치하여 한 편의 드라마처럼 읽었고, 사도행전을 읽을 때는 바울의 서신서들이 발생되는 시점과 상황에 맞추어 바울서신서들을 현장감있게 읽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공동서신서들과 요한계시록을 읽어볼 것입니다.
공동서신서를 바울서신과 연결시키지 않은 이유는 공동서신서들은 발생된 시간과 사건에 구애받지 않고 읽을 수 있는 보편적 편지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을 읽어 볼 것입니다.
공동서신(약, 유, 벧전후, 히, 요일이삼)
사도 바울이 열심히 선교사역을 하고 있을 때, 예루살렘 교회의 리더들이었던 사도들도 열심히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고 있었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공동서신서이며, 공동서신서를 통하여 사도들의 활동을 추적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는 바울의 3차 선교여행 즈음에 기록되었습니다. 야고보서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야고보라는 인물을 먼저 그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이며, 율법적인 성격이 강했던 사람입니다. 수리아 안디옥교회에서 베드로가 이방인과 식사를 하다가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 자리를 황급히 떠났습니다. 아마도 이방인과 함께 식사를 했다는 소식을 야고보가 듣게 되었을 때 야고보로부터 받을 질책이 베드로는 부담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이런 성향의 야고보는 ‘행함’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그 행함은 ‘구원의 조건’으로서가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의 거룩한 생활’로서의 행함입니다(약1:22, 2:14-26). 즉 야고보서의 행함은 ‘믿음의 증거’로서의 행함입니다(약2:21-22). 그 행함은 언어의 표현(약3:1-12), 다툼의 원인인 욕심을 제어함(약4:1-3), 비방과 허탄한 생각을 금함(약4:11-17) 등 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특별히 믿음이 구체적으로 삶에 나타나는 증상은 인내와 기도(약5:7-18)로 나타납니다.
유다서는 바울이 1차로 로마감옥에 갇혔을 즈음(행28장 즈음)에 쓰여졌으며, 저자는 예수님의 동생 유다입니다. 당시 교회 안에 침투한 영지주의에 물든 거짓 교사들을 경계하며(유1:3-16), 이단에 대한 변증을 통해 성도들을 복음 안에서 올바로 세우기 위하여(유1:17-25) 쓰여졌습니다.
베드로전서는 사도 바울이 목회서신을 쓸 즈음에 기록되었습니다. 핍박 받고 있는 흩어진 교회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핍박 받는 중에도 우리의 산 소망은 그리스도(벧전1:3)입니다. 그 소망을 가진 자들은 거룩의 삶을 살게 됩니다(벧전1:13-21). 거룩의 삶을 사는 자들의 정체성은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며, 그들의 사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전하는 것입니다(벧전2:9).
그 사명을 직장에서(벧전2:18-25), 가정에서(벧전3:1-7) 사랑으로(벧전4:8) 감당해야 합니다. 그 사명을 감당하다 보면 시련과 고난이 옵니다(벧전4:12-19). 또한 교회지도자들은 마음을 다하여 목양을 할 것을 당부(벧전5:1-11)하며 마칩니다.
베드로전서를 쓰고 약 1년 후에 베드로후서를 씁니다. 죽음에 임박한(벧후1:14-15) 베드로의 유언과도 같은 편지입니다. 내용은 성도의 성화(벧후1:3-11)와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변화산에서 본 그대로(벧후1:16-21) 꼭 오십니다. 재림의 때에 나타날 현상들을 베드로후서 2장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현상들은 예수님께서 감람산강론(마24-25장)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재림이 더딤을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벧후3:3-4). 예수님의 재림이 더딘 이유는 더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여 영생에 이르기를 기다리시기 때문(벧후3:8-9)입니다. 그렇기에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삶은 거룩해야 합니다(벧후3:10-18).
히브리서는 저자 미상이며, 예수님(기독론)에 대한 논문과 같은 서신서입니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며(히1:1-3), 천사보다 우월하시고(히1:4-14), 모세(율법)보다 우월하십니다(히3:1-19). 그 분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큰 대제사장(히4-8장)이십니다. 지금까지 주셨던 성소, 장막, 제물 등은 그리스도를 설명하기 위한 비유였습니다(히9-10장). 그렇기에 그 분을 믿음으로 굳게 잡는 자들만 구원을 얻습니다(히10:19-39).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던 조상들(히11장)처럼 우리도 믿음의 주인이신 예수님만 믿음으로 바라보며(히12:1-2), 그 믿음이 삶의 거룩한 습관으로 나타내야 함(히13장)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 일이삼서는 사도 요한이 기록한 서신서입니다. 사도 바울의 신학이 ‘이신칭의(以信稱義, Justification by faith)’라면, 사도 요한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그가 기록한 요한복음이나 요한일서는 창세기의 첫 단어인 “태초에”라는 단어로 시작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는 이렇게 마치고 있습니다.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요일5:20).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새 계명은 사랑(요일2:7-11)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해야 합니다(요일3장).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그 분이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요일4장). 그 사랑 안에 거하는 자, 곧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자는 영생입니다(요 5:12, 20). 요한이서, 요한삼서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기록되었습니다.
요한은 예수그리스도가 창조주 하나님이심 드러내
계시록은 고난 받는 교회를 격려하기 위함이 목적
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본 것을 기록한 묵시인데,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묵시는 장차 일어날 미래의 일을 예언함을 통하여, 그 예언을 이루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현재 고난 받는 교회를 격려하시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시기는 로마의 도미티아누스에 의해서 교회가 큰 박해를 받던 시기였습니다. 도미티아누스는 자신을 신격화하여 숭배를 받았고, 교회는 믿음을 지키며 도미티아누스 숭배하기를 거부하였습니다. 이것이 박해의 이유였습니다. 박해를 받는 중에 사도 요한은 밧모섬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고, 거기에서 장차 일어날 일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대로 받아 적은 것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요한이 본 내용은 이렇습니다.
전 세계로 교회가 확장되고 있을 무렵 드디어 예수님께서 박해 받고 있는 교회에 나타나셨습니다(계1-3장). 교회는 이 땅에 존재하는 눈에 보이는 ‘하나님 나라의 샘플’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영토가 아니라 통치의 영역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시적인 형태의 샘플로 존재한 것이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였고, 신약에서는 ‘교회’라는 공동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통하여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 교회에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기에 요한계시록은 교회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합니다.
교회에 나타나신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어린 양, 그리스도이십니다(계4-5장). 세상 죄를 지고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은 하나님 나라의 절대왕권을 가지고 이 땅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오실 심판주 하나님이십니다(계6-7장). 일곱 인을 떼시며 세상을 심판하시는 어린 양(계6장)은 예수님 때문에 박해를 받은 교회와 온 성도들의 눈물을 닦아주시며 위로하십니다(계7장).
8장부터 18장까지는 심판 주 그리스도께서 심판 전쟁을 통해서 세상 나라를 완전히 무너뜨리십니다. 바벨론이라는 이름의 세상 나라와 싸우시는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며, 만왕의 왕이십니다(계17:14). 그 분이 세상 나라를 무너뜨리십니다(계18:2-3).
심판의 예언 후에는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계19장). 혼인잔치 장면이 지나고 성도들이 주님과 함께 다스리는 천 년 왕국을 보여주시며(계20장), 궁극적인 하나님의 나라인 새 하늘과 새 땅이 완성되는 것(계21장)으로 요한계시록은 마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1:20)
창세기로부터 시작하여 흘러 온 하나님의 역사는 오늘 우리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장차 궁극적으로 완성될 그 나라를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이루실 것입니다. 말씀이 일하십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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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5.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