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한인예수장로회 총회장, 뉴욕센트럴교회 담임
오래된 부끄러운 경험을 털어놓으려고 한다. 모처럼 아내와 함께 모국 방문을 마치고 인천 공항에서 뉴욕 행 탑승 수속을 시작했었다. 여직원이 대뜸 하는 말- 손님 좌석이 비지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되었네요.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네요? 본사에서 업그레이드를 해 놓았습니다. 그 때 주집사님은 ASIANA뉴욕 지점장으로 우리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다. 그가 교회에 나왔다가 담임목사가 한국 출타했다는 광고를 보고 승객 명단을 찾아 우리 부부의 좌석을 업그레이드를 해 놓은 것이다. 그래서 난생 처음 2등칸을 호사스럽게 누려봤다.
그 후에 서울의 아버님이 뉴욕을 방문하시고 귀국길에 케네디 공항에 배웅을 갔었다. 역시 시간에 맞춰 우연히 만난 주집사님이 나타나 내 손의 패스포트를 낚아채 가더니 비지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 티켓을 들려주었다. ‘목사님! 지점장들에게는 특권으로 일년에 몇 장씩 업그레이드할 권리를 보너스로 준다면서 부담 갖지 말라’고 안심을 시켜 주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얼굴이 두껍지 못해서 자진해서 부탁한 일은 결코 없었다.
그 후에 KAL기로 한국을 방문하고 뉴욕으로 돌아올 때였다. 이미 탑승 수속을 마치고 아시아나 터미널의 주집사님에게 안부 하러 갔었다. 마침 모친 장례 치르느라고 지방에 가 있었다. 직원이 전화 연결을 해줘서 인사를 마쳤는데 직원이 우리 부부의 탑승권을 가지고 사라졌다. 얼마 후에 저들의 손에 KAL 비지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 된 탑승권을 가지고 왔다. 회사가 달라서 안심하고 갔었는데…‘자기들끼리는 주거니 받거니 한다면서… 부담 갖지 마시고 편안한 비행하십시오.’깍듯한 대우를 받았다. 그날 이후로는 다시는 주집사님의 얼굴을 스스로 피하고 한 번 보질 못했다. 인천지점장을 마치고 본사의 이사로 승진했다는 후문만을 들었고 더 이상 얼굴을 보지 못했다. 아니 일부러 찾아가지 않았다.
수치스러운 해프닝은 주집사님이 뉴욕을 떠난 다음에 일어났다. 그때는 혼자 한국 행 탑승 수속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번엔 대한항공사의 직원인 김부장이 프리티지 카운터에서 날 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었다. 김집사님은 금새 탑승 수속을 마쳤고 라운지 티켓까지 내 손에 쥐어 주면서 온갖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시간이 되어 미리 탑승구 앞에 나왔다. 역시 김집사는 비지니스 탑승구 앞에서 탑승이 시작된다는 방송을 듣고 이코노미석 뒷줄에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그때 김부장은 또 나에게 빨리 비즈니스 개찰구로 오라고 손짓을 건넸다. 편안한 여행하시라고 고개 숙여 깍듯한 배웅까지 해줬다. 나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비즈니스칸으로 들어섰다. 정갈한 승무원의 깍듯한 영접을 받았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좌석 번호가…’ 난 능청스럽게 ‘29A이네요’ 승무원은 이어서 그 좌석은 이코노미석 인데요?’‘아! 그렇군요? 제가 잘 못 들어왔네요…’ 하고 얼른 몸을 이동 했어야 했는데… 아뿔사 기어코 큰 사고를 치고 말았다. ‘아니? 김부장께서 분명히 비지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를 했을 턴데요…’ 승무원은 확인하고 올테니 3등칸 내 좌석에 가서 기다리라고 친절하게 안내까지 했었다. 이때까지 만해도 앞으로 몇 분 후에 닥쳐올 수치심에 대해서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호젓한 맘으로 3등칸에 앉아 금새 비지니스석으로 옮겨갈 기세로 버티고 있었다. 한 참 시간이 지난 후에 승무원이 다가왔다. ‘손님! 여기가 맞다고 합니다!’ 오 마이 갓!!! 어쩌면 좋아~~~ 앞이 캄캄해졌다. 온 몸이 숯불이 이글거리는 수치심으로 팔팔 끓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목사가 있다니?… 나 어쩌면 좋아? 쥐구멍이 어디 있을까? 당장에 날아가는 비행기 밖으로 피하고 싶었다. 수치와 부끄러움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부끄러움의 뜨거운 감정이 마치 용암처럼 나를 덮쳐왔다. ‘야! 네가 이러고도 목사 맞냐? 어찌 목사가 공짜를 이렇게 바랐던가? 난 이제 교회 가서 그 김집사님을 어떻게 봐야 할까? 김부장은 지점장이 아니잖아? 그렇지… 내가 해도 너무했다. 그 때까지도 안절부절을 못하는 사이에 벌써 비행기는 출발한지 2, 3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기내의 분위기도 차분해졌고, 이제 겨우 펄펄 끓던 나의 수치심도 진정을 찾아 가라앉을 그 무렵이었다. 갑자기 중간의 커텐이 확 열리더니 비즈니스석의 여승무원이 우아한 식반을 들고 3등칸 내 자리까지 배달해 오는게 아닌가? 오 마이 갓! 이제 겨우 진정하려던 내 심장이 다시 폭발하기 시작했다. 꺼져가던 수치의 숯불덩이가 다시 발화하기 시작했다. 이걸 어쩌면 좋아… 아! 그 김집사님이 비행기에 전화한 게 분명해… 내가 말단 직원이라 업그레이드는 하지 못했지만 승무원들에게 우리 목사님이니 잘 대접해 주세요! 마치 보는 것 같은 김집사님이 곤란해서 쩔쩔매는 모습이 내 눈에 어른거렸다. 오! 나의 하나님! 어쩌면 좋습니까? 이 못난 목사가 대접은커녕 대접 받기만을 좋아하는 파렴치한 목사가 되었네요… 나는 그날 이후로 다시는 김집사님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그 김집사님도 다시는 김목사 볼 면목이 없어서… 우리는 영영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한지가 20년이 넘었네요. 김집사님! 어디선가 이 글을 본다면 꼭 나에게 연락주세요. 제발 나의 수치스러운 부끄러움을 치유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제발… 못난 김목사 드림.
jykim47@gmail.com
02.11.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