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오스틴 주님의교회)
매일 아침이면 집 주위에 있는 산책로를 걷는 게 수년간의 일상이 되었다. 대부분의 미국 사람은 개를 데리고 나오는데 한 마리, 두세 마리, 어떤 이는 열 마리를 줄에 묶어 다니는 진기한 광경도 볼 수 있다. 가끔 저들은 왜 개를 좋아할까 궁금해진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개는 말을 못 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개가 그들의 감정을 주인에게 마구 표현하고 말대꾸한다면 주인이 개를 이뻐할 리는 만무할 것이다. 사춘기 아이들을 둔 엄마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 역시 자녀들의 말대꾸이기에 그러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훈련된 개는 주인의 말에 절대복종한다. 더구나 꼬리를 흔들며 주인을 반겨주고 순수한 눈빛으로 늘 주인을 응시하니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남편을 도와 한 교회를 건강한 토양으로 개간하며 세워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과의 싸움의 연속이었다. 억울하고 분하지만, 그 감정을 표현할 수 없고 고스란히 그것을 내 안에 담으며 말씀으로 이겨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담임 목회를 하고 7년 차가 되었을 때 우울 증세가 찾아왔다. 허탈감과 무기력감으로 슬픈 날들을 보내고 있을 때 하나님은 말씀으로 위로하시며 영혼을 어루만져 주셨다. 그때 이런 고백을 하나님께 드렸다. “저는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도 동일한 고백을 하신 것을 보았다. “나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는 내가 듣는 대로만 심판을 한다……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 하지 않고 오직 나를 보내신 분이 원하시는 것을 하려고 애쓴다” (요한복음 5:30).
예수님은 스스로를 기쁘게 하기 위한 삶을 선택하지 않고 늘 하나님의 뜻에 고정되어 있었다. 철저히 하나님 앞에 겸손한 태도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절대복종하는 모습이다. 예수님의 마음과 눈은 언제나 하나님을 응시하며 그 뜻이 지배하는 삶을 선택하셨다.
예수님의 모본은 또 다른 시련 앞에 있는 나를 깨운다. 어떤 태도로 이 상황을 이겨내야 할 것인지를 말이다. 문득 지나온 날들을 반추해 본다. 악을 행하는 사람들로부터 교회를 지키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며 두려움과 싸워야 했던 일, 억울함의 깊이가 너무나 커 천국 가고 싶다고 펑펑 울던 일 등 위장에 경련을 일으키는 많은 사건들을 돌이켜보니 내 감정대로 내 생각대로 그 상황을 해석할 때는 더욱 쓰라린 가슴으로 웅크리는 시간이 더 길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숨 막히는 그 상황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뜻을 응시할 때는 마음의 평정을 다소 신속하게 회복할 수 있었다.
앞으로 남은 부르심의 시간을 어떻게 채워가야 할까? 예수님이 가지셨던 그 마음, 어떤 상황에서도 내 생각대로 내 마음대로 상황을 해석하는 대신 철저히 하나님의 뜻을 응시하며 담대하게 반응하고 그 앞에 겸손과 믿음의 시간으로 채워야 할 것이다. 분명히 하나님은 이런 자들에게 보호막이 되시고 끝내 승리를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무기도 너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너를 재판에 거는 사람을 네가 물리칠 것이다. 이것이 나 여호와의 종들이 받을 몫이다. 그들의 승리는 내게서 나온다. 여호와의 말씀이다” (쉬운 성경, 이사야 5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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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9.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