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현재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와 전쟁 중인데 예루살렘이 주후 70년쯤에 로마의 디도장군에 의해 함락된 후에 전 세계로 흩어졌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면 그 이후에 예루살렘을 누가 점령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 실비치의 김애환권사
A: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로마제국은 주후 68년 유대인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로마는 주후 70년 디도장군을 통해 예루살렘을 공격해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성전을 불태웠으며 110만명의 유대인들을 죽이고 예루살렘에서 모든 유대인들을 다 국외로 추방시켰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나라를 잃고 전 세계에 흩어지는 고난의 세월을 1,800년 동안 겪었습니다. 그 이후의 기간을 6시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로마시대 - 로마는 예루살렘을 점령한 이후 하드리안 황제는 유대를 팔레스타인(Palestine)으로 이름을 바꾸고 예루살렘을 엘리아 카피톨리나로 명명하였습니다. 이것은 이 땅이 유대인들의 땅이 아니라 유대인의 적인 불레셋 사람의 땅이라는 의미로 유대인들에게 상처를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2) 비잔티움 시대(로마 기독교시대) - 제국의 수도가 비잔티움으로 옮겨지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AD 323년에 콘스탄틴 황제(AD274-337)는 기독교를 로마 국교로 공인하게 됨으로서 예루살렘은 종교적 정치적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많은 장소에 기념 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골고다 언덕위에 예수님의 무덤교회, 베들레헴에 예수님 탄생 교회등을 건축하였습니다. 이 시대의 건축 양식은 교회 바닥에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채색한 것입니다.
3) 회교 아랍시대 - 모하메드에 의해 창시된 회교도들은 페르시아와 비잔틴 제국을 차례로 정복하였습니다. 주후 638년에 예루살렘성은 회교 아랍국의 오마르(omar) 왕에 의해 점령된 후 약 450년간 회교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선지자 마호메트가 천사장 가브리엘의 인도를 받아 신비한 말을 타고 하늘로 승천한 곳이라고 하여 성지로 정했습니다. 오마르 사원 즉 황금사원을 그곳에 건축하였습니다. 이곳은 메카와 매디나와 더불어 회교도들의 3대 성지 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비잔틴 시대에 세워진 많은 기독교회가 이 시대에 파괴되었기 때문에 유럽의 기독교인들이 자극되어 성지 탈환을 목표로 한 십자군 전쟁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4) 십자군시대 - 1095년 교황 우르반 2세에 의해 소집된 십자군은 여러 차례 실패를 거듭했지만 1099년 6월15일에 예루살렘을 탈환하였습니다. 첫 번째 왕위에 오른 볼드윈 1세는 많은 회교도들을 학살하고 그들의 사원을 파괴했으며 곳곳에 튼튼한 요새를 건축하였습니다., 그러나 1187년 회교국의 살라딘(Saladin)황제에게 패배하게 되어 1291년 십자군의 최후의 보루였던 악고가 무너짐으로 십자군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5) 오스만 터키시대 - 터키의 오스만(Ottoman)제국의 살림왕에 의해 1543년 콘스탄티노플이 점령된 후에 1516년 이스라엘에 이어 1517년 애굽이 정복되었습니다. 슐라이만 대제가 1537년-1542년 사이에 현재의 예루살렘 성을 수축하여 그 당시의 성벽과 성문이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 기간에 유럽과 러시아에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헤르츨(Teodor Herzl)을 중심으로 시온이즘 (Zionism)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6) 현대 이스라엘시대 - 1917년 영국군 총사령관인 알넨비 장군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점령하였습니다. 그래서 1917년 11월에 발포아 선언을 발표하고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지역을 분리시켜 유대인 민족국가 건설을 선언하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후에 1947년 UN에서 팔레스타인 땅 안에 유대인 국가와 아랍국가를 양분하여 독립시킬 것을 결의했으나 아랍은 이 결정을 무효로 주장하는 반면에 유대인들은 이것을 받아들임으로 1948년 5월 14일에 이스라엘은 독자적으로 독립을 선포하였습니다.
11.04.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