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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전쟁

변명혜 박사 (ITS 교수)
변명혜 교수

(아주사퍼시픽대학교 교수)

내가 우리 동네를 좋아하는 여러가지 이유 중 하나는 치노 힐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 곳 저 곳에 많은 언덕이 있는 것이다. 집에서 오분 정도 걸어가면 나지막한 언덕으로 향하는 길이 시작된다. 특별한 아침 스케줄이 없는 한 나는 매일 뒷산 언덕을 오른다. 길가에 핀 작은 들꽃들을 즐기기도 하고 새소리에 마음이 평안해지기도 한다. 언덕을 오르다 보면 자주 만나는 얼굴들이 있다. 그 중에는 이 지역에서 목회를 하다가 몇 년 전에 은퇴하신 목사님 부부도 있다. 그 분들이 섬기던 교회는 우리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다. 내가 다니던 교회가 멀었기에 주중에는 그 교회로 새벽기도를 갔었고 두 분과는 그 때부터 가끔씩 식사교제를 하는 사이가 됐다. 두 분이 개척했던 교회는 넓은 부지에 예배당을 잘 건축했다. 그러나 건축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교회가 분열되는 바람에 재정난에 부딪혔다. 몇년간 애썼지만 결국은 교회 건물을 포기해야 했고 목사님은 목회를 접으셨다. 교회는 건물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지만 두 분의 교회 건물에 대한 애착은 많이 컸었다. 그래서 새로 그 건물로 이사해 들어온 한국 교회의 목사님이 인사를 드리려고 만나자고 한 것도 거절할 정도로 두 분의 상처는 깊었다. 

 

언덕의 정상에 올라가면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어 먹는 넓게 펼쳐진 초원과 함께 동네가 한 눈에 들어오는 자리가 있다. 그 자리가 목회를 접으신 후 미국교회에 출석하시는 목사님 부부에게는 기도의 자리가 되었다. 두 분은 언덕의 정상에 서서 동네를 내려다보며 때로는 손을 들고 기도하고, 때로는 벤치에 나란히 앉아 손을 잡고 기도를 한다. 목사님은 어느 날 나무 십자가를 언덕 꼭대기에 꽂아 놓았다. 그 십자가는 한 동안 잘 서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십자가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서 조용히 묵상을 하기도 했다. 작년 부활절 즈음에 목사님은 교회에서 나누어 준 “예수님은 부활하셨다”라고 쓴 꽤 큰 플래카드를 십자가 옆에 꽂아 놓으셨다. 어느새 언덕의 기도 자리가 목사님에게는 교회 장소가 된 것이다. 부활절 플래카드는 며칠 후 사라졌다. 마침 목사님 부부가 그 장소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와서 플래카드를 뽑아서 언덕 밑으로 던져버린 것이다. 당연히 작은 논쟁이 있었고 그 사람은 “너희 집에나 꽂아 놓지 왜 이곳에 그런 것을 꽂았느냐”고 항변했다고 한다. 사모님은 산을 내려가는 그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주님, 저 사람을 불쌍히 여겨 주세요”라고 기도했다고 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몇 달에 걸쳐 십자가를 다시 꽂고 뽑아버리는 싸움이 지속되고 있다. 목사님은 집에 나무로 만든 십자가가 많아서 얼마든지 다시 갖다 놓을 수 있다고 하신다. 나는 목사님 부부의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이해하고 집까지 팔아 헌금해서 건축했던 교회건물을 잃은 후 언덕의 예배장소를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도 이해한다. 그러나 그 곳은 공공의 장소이므로 개인의 특정한 신앙의 표현을 고집하는 것은 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난 주에 한국에서 다니러 온 친구들과 함께 뒷산을 갔다가 목사님 부부를 만났다. 목사님 손에는 십자가와 망치가 들려 있었다. 누군가가 뽑아버린 십자가를 다시 세우려고 가져 왔는데 다른 사람이 십자가를 세워 놓고 튼튼한 철판으로 뒷받침까지 해 놓아서 이제는 쉽게 못 뽑을 것 같다고 좋아하셨다. 그런데 이틀 후에 가보니 그 튼튼하게 세워 놓은 십자가는 또 안보였다. 그리고 다음 날, 가는 나무로 십자가 형태를 만든 것이 다시 세워져 있었다. 누가 이기나 보자는 듯이 열심히 십자가를 뽑아 내던지는 사람도 달갑지는 않지만 영적인 싸움이라고 계속 십자가를 세워 놓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종교전쟁으로 불리는 십자군 전쟁이 아닌 누가 이길지 모르는 십자가 전쟁이 우리 집 뒷산에서 날마다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linda.pyun@itsla.edu

02.15.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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