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루(Mru)족은 주로 인도, 방글라데시, 미얀마 세 나라가 교차되는 곳에 살고 있다. 일부는 방글라데시 남동부 치타공 산지(Chittagong Hills)의 열대삼림에 있는 약 200여개의 마을에 거처하고 있지만 실상 대다수 므루족들이 서부 미얀마의 아라칸 요마(Arakan Yoma) 주(州) 평야와 산지, 또 북동부 인도의 잘파이구리(Jalpaiguri) 지역에 집중적으로 살고 있다.
모국어는 므루(Mru)어로 불린다. 방글라데시의 므루족에게는 자신들의 언어와 연관된 전설이 있는데, “토라이”(Torai-the great spirit)라는 위대한 영적 존재가 므루족을 제외한 모든 민족에게 문자를 주었으며, 우연히 자신들만 제외됐다는 것. 그래도 여전히 그 신이 자신들의 삶을 이끌고 있다고 믿는다. 므루족은 상당히 고립된 민족인데, 이는 국가정책으로 전략적인 국경지대에는 출입을 통제하고 또한 외부인들이 그 땅을 사들이지 못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고에 의하면 대규모 군대에 의해 축출된 벵갈 농민군들이 오히려 그 일대 전략지대로 숨어들어갔으며 므루족은 군비들로 무장해서 그들과 맞서 대항했다.
삶의 모습
대다수 므루족은 농부들로 일찍이 관개농법을 이용한 벼 농사법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대부분은 계단식 밭에서 화전농법을 계속하고 있다. 따라서 2년마다 한번씩 새로운 땅을 찾아 옮겨다녀야 하는 반유목민 생활을 하는 셈이다. 남녀가 공동으로 밭일을 하며 쌀은 미얀마 므루족에게 가장 주요한 작물이다. 므루족의 자연환경은 풍부한 재목과 수력전기가 있는 지역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술이나 지식 부족으로 경제상황을 전혀 개선시키지 못하고 가난한 농부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가난을 “토라이”가 운명적으로 준 것으로 믿고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급자족이 가능한 자신들의 생활에 자부심을 느낀다. 므루족 각 가정에서는 자기들이 쓸 물건을 직접 만들고 다른 필요한 물건은 평지에서 열리는 주말시장에 가서 목화를 팔아 옷, 소금, 칼, 그릇 등을 얻는다. 므루족은 대체로 목재 또는 대나무 등을 이용해 집을 짓고 가축들도 집들의 튼튼한 기둥아래서 밤에 추위를 피한다.
므루족 사회는 씨족이나 혈연집단으로 나눠지며 외부사람과 결혼하기도 한다. 촌락공동체는 민주정치를 한다. 촌장이 있지만 명목상의 권위를 지닌 정도이며 적당한 교육시설은 없다. 청년들은 16세가 되면 머리카락을 변발로 꼬아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며 터번 위에 장식용 꽃 모자를 쓰기도 한다. 청년들은 대개 배우자를 자유로이 선택하지만 아버지의 승낙을 얻어야 한다. 혼전성교가 비교적 자유롭게 허용되는데, 임신을 하게 되면 바로 결혼을 해야 한다. 일단 부부가 여러 명의 자녀들을 낳게 되면 분가한다. 므루족 남자들은 농사일 외에 주로 대나무 공예품을 만드는 솜씨가 뛰어나다. 므루족 여자들은 특히 수제품 보석이나 장식품 치장하기를 즐겨한다.
신앙
인도와 방글라데시의 므루족들은 실제 불교적 요소가 섞인 토속신앙을 가진다. 불, 물, 숲의 신들을 숭배하면서 “토라이”의 전설에 얽힌 믿음이 그들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므루족의 조상들은 다른 부족들이 모두 문자와 생활규범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위대한 영, 토라이에게 소를 제물로 바치며 자신들에게도 그러한 규범과 문자를 줄 것을 청했다. 토라이는 바나나 잎에다 규범들을 적어주었지만, 악한 동물이 그 바나나 잎을 먹어버렸고 므루족은 다시 불행하게 됐다. 이 설화를 기념하기 위해 소를 바치는 축제가 매년 이틀 동안 벌어지는데, 이 축제가 므루족들의 가장 큰 연중행사이다. 미얀마의 므루족은 불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약 95%가 불교도이지만, 정령숭배사상도 지키고 있다.
필요로 하는 것들
므루족은 육적으로나 영적으로 매우 곤궁한 종족이다. 가난과 문맹에 묶여있을 뿐 아니라 그러한 비참한 삶을 사는 것이 자신들을 향한 토라이신의 뜻이라는 생각에 붙잡혀 있는 것이다. 방글라데시와 인도의 므루족을 목표로 하는 선교단체가 몇 있지만 현재 미얀마의 므루족을 섬기는 선교단체는 없다. 더 많은 사역자와 기독교방송들, 므루어로 된 복음자료들이 절실히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