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복음화는 네팔인들이 이뤄가야

이훈우, 이아희 선교사부부(네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는 바그마티 강과 비슈누마티 강이 만나는 부근 해발 1324미터 고지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지형이 완만하고 날씨가 좋아 2천 년 전부터 원주민인 네와르족이 정착해 살고 있었고 4세기 리처비 왕조가 들어서 원주민을 통치했다고 한다. 이후 군소 왕조의 난립시대를 거처 15세기 말라 왕조를 비롯한 3개 왕국이 들어서 각각 카트만두, 박타푸르, 파탄을 수도로 네와르 문화의 꽃을 피웠다.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 시내에는 더바르 광장, 스와얌부나트 사원, 부다나트 사원, 파슈파티나트 사원 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있다. 기독교가 취약한 힌두교의 나라 네팔. 카트만두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500여명 정도로 그중 300여명이 선교사 가족이라고 한다. 거주한인에 비해 선교사가 많다는 생각도 없지 않지만 아직도 네팔의 복음화는 멀기만 하고 여전히 우리의 숙제로 남아 있다. 네팔 선교의 비전을 품고 지난해 1월 네팔 선교사로 파송을 받은 이훈우 선교사 부부. 그들이 당초 선교의 꿈을 품은 곳은 파키스탄이었다. 그러나 파키스탄에 비자를 받을 수 없어 네팔로 방향을 바꾸었다. 이훈우 선교사가 학생시절 품었던 꿈은 미술인. 그러나 미술을 전공하는데 그에게 결격사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색약. 2-3가지 색을 잘 분별하지 못하는 증상을 발견되자 절망의 늪에 빠지게 됐다. 그때 하나님은 청년 이훈우를 강권적으로 불러 신학을 하게 하셨고 1학년 때 ‘라틴 아메리카’라는 책을 통해 선교의 꿈을 품게 됐다. 총신대학을 마치고 미국으로 와 풀러에서 학위를 마친 이훈우 선교사는 아내 이아희 선교사를 만난다. 이아희 선교사는 이미 중국에서 한의학을 전공한 한의사다. 그 역시 한의를 공부하며 간간히 동참했던 단기선교에서 선교에 있어서 한의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절감하고 한의사로서 선교에 동참하기를 소원했다. 이 두 사람의 선교의 꿈은 하나가 되었고 네팔 카트만두로 향했다. “언어의 문제도 힘들었지만 하루 14시간씩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하루 한 시간만 물이 나오는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물갈이로 인한 고통도 잊을 수 없지요. 물과 음식이 먹는 순간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습니다....” 현지에 도착하여 적응기를 겪었던 두 선교사의 추억이다. 그런 고통을 잘 감내한 그들에게 이제 카투만두는 선교의 장이 됐다. 네팔사역 1년차이기에 아직은 선교 초년생이라 할 수 있지만 지난 1년 그들은 알찬 선교사역을 일궈나갔다.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의 3대 사역이 나타나 있지요. 이 3대 사역에 초점을 맞춰서 교회개척과 복음 전파사역, 가난퇴치와 교육사역을 통해 네팔 복음화를 꿈꾸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하며 이훈우 선교사는 1년 동안 세 지역에 교회를 개척했다고 들려준다. 산속에 있는 혹세교회는(사진) 아직 많은 문명들이 들어오지 못하여 힘들게 살아가는 자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곳이라고 한다. 아직 바닥이 흙바닥이라 예배 때마다 불편한 모습이 보여서 이곳에 비닐장판을 깔아 주고픈 것이 이 선교사의 소박한 꿈이다. 이 외에도 두리바리은혜교회는 40-50명의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대나무로 지어진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히말리아교회는 다음세대를 이끌어갈 교회로 기대하고 있다고 기도를 당부했다. 이 선교사는 이 세 교회를 중심으로 복음전도에 앞장서고 있다. 한국에서 오는 단기선교팀들, 그리고 네팔의 청년 헌신자들과 함께 오지로 전도를 떠난다고 한다. 네팔은 126종족이 있는데 종족마다 문화와 언어가 다르다. 네팔의 청년들도 그렇게 선교를 다녀오면 도전을 받는다. 그가 네팔 청년들과 오지 전도를 떠나는 이유는 ‘네팔은 네팔인에 의해 복음이 전파돼야한다’는 신념 때문에서다. 이 선교사 부부는 복음전파와 함께 가난퇴치 운동을 벌이고 있다. 열악하고 힘든 상황과 환경이라 질병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많다. 그들에게 집을 지어주고 화장실을 지어준다. 또한 염소를 분양할 수 있도록 적극 돕고 있다. 이외에도 클리닉 사역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네팔 부모들은 종종 아이들을 버리는 예가 많다. 때로는 버리지는 않는다 해도 부모가 돈을 벌러 나가기 위해 방치해 두는 예가 많다. 이런 아이들을 케어하고 있다. 특히 이곳 네팔은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이 잘못돼 있다. 장애인은 전생에 죄를 많이 짓든지 잘못해 장애인으로 태어난다고 생각한다는 것. 이처럼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는 일도 이선교사부부의 몫으로 남겨졌다. 이 사역에 적극 힘이 되고 있는 것은 사모 이아희 선교사다. 이미 중국에서 한의학을 마치고 돌아온 터이기에 그가 배운 침술은 현지인들의 건강 지킴이가 되고 있다. 지난 일년을 돌아보면 짧은 시간에 큰 일을 이룬듯하다. 그러나 지금이 있기까지 이 선교사 부부는 네팔인이 되기 위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언어와 문화, 환경에서 오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이제 빨리 네팔로 돌아가고픈 그곳 사람이 돼버렸다. 미국에 잠시 머무르며 영육 간에 충전을 받은 이 선교사 부부는 네팔을 향해 발길을 옮기며 “첫 해는 네팔 전체를 보았다고 할 수 있지요. 이제 이 일들이 전문화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네팔 현지인 사역자들을 더 많이 세워주고 힘을 실어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떠났을 때 네팔은 네팔 사람이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하니까요”라며 네팔사랑을 표현했다. 이 선교사 인터넷 카페 : http://cafe.daum.net/gpeople1004 <이성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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