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동북부 뻬르남부끄 선교여행기 (4)

우리는 하나였다

신숙자 선교사

하나님은 그녀의 남편의 영혼을 구해주셨고 그들 자신이 오병이어가 되어 요단에 발을 들여 놓자 홍해는 드디어 갈라지기 시작했던 것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그녀의 손을 번쩍 들어 주신 것이다. 이 보석 같은 뚜배 란지아라는 사랑스런 여인을 세상에 보내셨음이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이곳 쏠리덩에 교회를 짓고 영혼을 구하시려는 주님의 계획이 있으셨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들은 몰랐어도 하나님은 우리들을 향하신 영혼구원을 향한 멋진 계획이 만세전부터 있으셨으며 때가 되면 반드시 그 뜻을 이루신다는 사실이다.

오늘날도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거룩한 성도들의 옳은 행실 세마포를 기억하신다는 말이다. 과연 우리는 하얗고 깨끗한 세마포를 얼마나 만들어가고 있는가?

재림하시는 주님을 예비하는 복음의 아름다운 소리가 들리는 이곳 쏠리덩 외진 씨찌우(별장)에 모인 무리에게 잘 구워진 고기와 음식들이 나뉘고 이곳저곳에 자리 잡고 식사하는 무리의 모습은 마치 그 옛날 벳세다 뜰에서 오병이어를 먹던 광경의 축소판 같았다. 그녀의 딸아이가 경쾌하게 기타를 치고 모두가 소리 높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양의 축제가 시작되었으니 모기들도 덩달아 찬양에 흥겨워 더 더욱 열심히 먹이를 찾아 빨아 대니 영혼은 천국이요 육신은 지옥이었으나 누구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이 주님의 임재 속에서 목소리를 높여 찬양을 드렸다.

더러는 덩실덩실 몸을 날리며 춤을 추기도 했고, 산천초목도 바람에 흔들리며 천지주재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곳에 그 밤은 너도 없고 나도 없어 오직 주님뿐이었으니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 또 만족, 여기가 천국이 아니고 무엇이랴! 언제인가? 뉴욕에서 청소년수련회에서 은혜받은 청소년들이 “나는 모기가 좋아”라며 찬양하던 일이 생각났다.

드디어 쏠리덩교회 봉헌예배 때 다시 만나기로 하고 그들을 뒤로 하고 저녁예배를 드리기 위해 따비라교회로 향했다. 베데스타교회가 건축한 따비라 교회에 도착 했을 때는 7시반이었다. 날은 완전히 어두웠지만 소리 없이 내리는 비속에도 말씀을 그리워 목마른 사슴처럼 성도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시편 121편을 내용으로 남편 김우선 목사가 설교를 하였다. 예배가 끝났는데도 성도들은 가랑비를 맞으며 동양인 부부를 둘러선 채 교회를 떠나려 하지 않았다. 말씀이 있는 곳 그곳은 우리의 마음을 붙들고, 그 말씀으로 만족하기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주님을 사랑함이 교회를 사랑함이 아닌가? 그곳을 떠나면서 넬슨 목사에게도 믿음으로 중고차를 약속했다. 주님은 우리 부부의 사역의 길목마다 기도할 때 가슴으로부터 불타오르는 꿈을 주셨고,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기도하게 하셨고 때에 맞추어 주님의 멋진 방법으로 성취해 나가셨음을 확신한다. 생각해보면 베데스타 한인교회 사역이나, 책을 쓰게 하셔서 신학교를 건축하게 하신 것 또한 브라질 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어 주의 종들을 기르게 하신 일 그리고 브라질 교회당 건축과 탁아소를 건축하여 운영케 하신 것이나 현지인 목사에게 중고차를 사주는 운동까지 이모든 것들은 주의 종이 된 후부터 지금까지 우리 부부가 꿈을 가지고 기도하던 제목들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심어주셨던 꿈들을 때를 맞추어, 어떤 때는 즉각즉각, 어떤 때는 오랜 세월을 거쳐서라도 하나님의 신기하고 놀라운 방법과 하나님의 전권으로 영혼구원을 위해서 하나하나 이루신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들이었음을 필자는 알고 있다. 하기에 무엇 하나 “나”라는 불순물이 들어갈 수가 없다는 말이다. 마음은 그곳에 두고 밤길을 재촉해서 썽 조제 두 에지또에 도착하여 한 모텔에 투숙하였다. 2인용 방에 60헤아이스를 지불하고 방을 찾아 올라가기 위하여 나무 층계를 올라가는데 가방을 들어올리기에는 너무 힘들고 제법 높기까지 했다. 방이라고 들어섰는데 이때부터 고통의 시작일 줄이야...

두 번 발을 떼어놓던 키가 큰 남편이 전기 줄에 감긴 채 세면 벽에 박힌 무슨 나무토막에 머리를 부딪치며 “아야!” 소리를 지르는 가 했더니 주저앉은 침대는 지압 마사지를 하려고 기다리고 있기라도 하는지 동글동글한 스프링에 얇은 덮개를 씌워 놓았는데 앉자마자 삐걱거리며 스프링이 튀어 오른다.

이번에는 좁디좁은 방안에 걸어 다닐 길을 만들려고 60년대 텔레비전을 받쳐 놓은 받침대를 구석으로 밀어 넣으려는 남편을 도우려고 조그마한 냉장고를 옆으로 끌어당겼더니 냉장고 뚜껑이 벗겨졌다. 깜짝 놀라 억지로 밀어 넣고 숨을 쉬려고 의자에 앉았더니 이번에는 의자 다리가 씰그러져 넘어지려는 찰라 용케도 중심을 잡았다. 옆으로 가제 걸음을 걸어 화장실에 들어가니 무릎이 벽에 닿아서 용변기에 똑바로 앉을 수가 없어서 옆으로 앉아야 했다. 남편이 비누를 하나 얻으려고 안내 대에 앉은 사람에게 청하니 가게에 가서 사다 쓰라더란다. 그가 시간을 보더니 가게 문들이 닫혔다며 계면쩍게 웃더라나?

그냥 돌아온 남편이 형편대로 살자고 했다. 수건도 하나밖에 없어서 남편과 사이좋게 반쪽씩 나누어 써야 했다. 어쩌면 그렇게도 철저하게 방안의 가구들은 전쟁을 겪은 상이군인들만 모아다 놓았는지...

상이군인들이야말로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우다 다쳤다지만 손님을 받은 건지 쳐 넣은 건지...그것도 예수님 때문이라 생각하니 무한감사라지만 정말 견딜 수 없었던 것은 후덥지근한 북부의 기분 나쁜 공기와 합세한 화장실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그 설명할 수 없는 냄새야말로 실로 죽을 지경이 아니라 할 수 없었다. 잠을 잤는지 안 잔건지 혼미한 밤이 지난 후에는 그 분위기와 공기에도 어느 만큼 익숙해 졌는지 남편과 아침예배를 드리고 나서 방을 빠져나와 현관에서 네이말 목사를 기다렸다. 이미 모기밥이 된 발과 손가락까지 가려워 연상 긁어대면서 캐나다의 시원한 공기를 마시면서도 감사치 못했던 아픔에 또다시 주님께 미안할 뿐이다.

네이말 목사 부부와 함께 그가 시무하는 교회에서 기도회를 마치고 교회부흥을 위한 이런저런 대화를 마친 뒤 그들의 집을 방문해 커피 한잔을 마시고 난 후에 밤 11시 20분 헤시피행 버스를 타기위해 터미널에 도착했다. 시멘블록으로 지어진 터미널 한구석에 화장실 표시가 있길래 사용하려 했더니 표 파는 직원이 너무 더러우니 웬만하면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는 안됐는지 아직 열리지 않은 버스 문을 특별히 열어주면서 빙긋이 웃는 모습이 특별히 대우했다고 자신의 배려에 자신이 취한 듯 했다. 이곳저곳에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같이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리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선교를 시작한지 16년 동안 현지의 목사들로부터 밥 한 끼 먹자는 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썰렁해졌다. 그러나 차편은커녕 뙤약볕에 그 먼 길을 걸으시며 잠자리가 없어 여우의 굴, 그리고 참새 집을 부러워하셨던 주님 앞에, 시장기에 무화과 열매를 구하셨던 주님 앞에서 무슨 사치스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한심하기 짝이 없는 티끌 같은 “나”, 그런 나를 사랑하시며 사용하시는 그 주님의 십자가를 다시 붙들며 “주님 그래서 난 주님이 필요해요”라며 주의 얼굴을 구한다. 거의 완벽하게 주님을 섬기는 이들에게 주시는 은혜야 당연하다지만 시시때때로 고장난 자동차 같은 나에게 베푸시는 은혜와 사랑 이야말로 그 크기를 어디에다 비교할 수가 없어서 롬4:4-5절의 말씀을 외어본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 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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