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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도전하는 법을 보면서...

박상원 목사(샘 기드온 대표)

얼마 전에 있은 미국 모 교단의 동성애자 성직임명허용이나 뉴욕 주의 동성결혼이 법으로 제정되었다. 그리고 이를 축하하는 가두행진이 시애틀 다운타운에서 약 30만 명의 동성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제 우리는 극도의 혼란을 넘어 진리의 법이 위협을 받는 시간에 마침내 다다랐다. 이러한 때 자연인의 한 사람으로서 다음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법은 인간이 만든 것이지만 인간 이상의 이념에서 유래되었다는 존귀한 사상을 가져야 한다. 히브리 민족이 그 율법의 근거를 하나님께 두고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현존하는 성문법전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함무라비 법전만 하더라도 그 법이 새겨진 돌기둥의 상부에 왕이 정의의 신인 태양신 사마슈로부터 법전을 수여 받는 장면이 양각으로 부조되어 있다. 법은 신성한 것이므로 소수의 이권을 위해 가볍게 수정되거나 남발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이렇게 말하는 것은 진리의 반쪽만 말하는 것이요, 다른 반쪽은 말하지 않는 것이 된다. 법이 신성한 것이므로 아무나 쉽게 손대지 말라는 뜻은 모든 법이 다 인간을 존중하고 있는 좋은 법이라는 말과는 다르다. 법이 인간의 권익과 행복을 수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인간을 억누르고 인간을 비인간화할 때에는 그 법을 타파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일반법은 자연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고 자연법은 영원법, 즉 하나님의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와 같이 법에 대한 서로 다른 양극적 태도를 예수의 모범에서 찾을 수 있다. 예수는 법이 인간을 비인간화 또는 생명을 파괴하려 할 때는 당당하게 타파하려고 했다. 손을 씻지 않고 식사를 하는가 하면, 돌로 쳐 죽여야 할 경우에도 용서하셨다. 그는 법의 근본정신을 ‘사랑과 생명’에 두셨다. 법이 사랑과 생명에서 벗어날 때 그것은 인간을 억누르는 악법이 되며 동시에 생명을 죽이는 독이 된다. 그러하기에 첫째로 현행 헌법만으로도 동성애자들의 기본권보장은 충분하다. 그래서 헌법상의 기본권 차원을 넘어서는 동성애 소수자들의 집단적 이익을 적극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법률을 반드시 제정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본다. 국민건강과 생명의 보전 그리고 후손의 유지에 심각한 해를 입힐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추진할 사안은 더더욱 아니다.

둘째로 동성애 법은 창조질서에 정면 반하는 반생명적 일탈행위(곧 자연법의 질서를 파괴행위)인 동시에 창조주에게 정면 도전하는 행위이다. 남녀의 구분은 신체적으로 결정되는 것이지 정신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남녀의 구분은 하나님만이 내리시는 결정사항인데 이제 인간 스스로가 결정하려 하고 급기야 법으로 인정, 확대하려는 조짐이 다분하다.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도 동성애자들의 삶과 그 법의 효력 속에는 인류의 ‘사랑과 생명’(자연법)이 보이기보다는 인류의 ‘속박과 파괴’라는 독(실제로 필자는 6년 동안의 치유과정을 지내고 동성애를 극복한 어느 분의 간증을 읽었는데 동성애자들의 참상과 실태는 실로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었음)이 들어 있다.

그래서 결국 성경이 예언한대로 이제 곧 하나님의 심판과 개입 말고는 더 이상 대책이 없는 상황을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도 강하게 든다.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법)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벧후2:2) 결국 법이 되었다고 다 법은 절대 아니다!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벧후1:4)라며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법을 다만 두려워하자! 이제 더 두려운 것은 하나님께 도전하는 악법을 보면서 바라만 보고 있는 교회들과 신앙인들의 타협과 침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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