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딱 20년 전에, 저희 가족이, 헝가리에 선교사로, 부다페스트에 도착(1991년 6월 11일)했습니다. 이 시점에, 기독교 잡지인 ‘가이드포스트’로부터 원고청탁이 와서 놀랬습니다.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인생의, 다뉴브강~
“그는 제게 아기(baby)도 주지 않고 갔어요.” 정 선생님이 헝가리에서 재혼한 아내 플로리가 울면서 말했습니다. 그녀는 한국대사관에서 일했는데, 뮤지션(musician)인 그 분을 무척 사랑했습니다. 부다페스트 공원묘지에 한인커뮤니티 지인들이 모여 애도했는데 그분의 관이 주저주저 내려갈 때 46이라고 써져있는 나이가 제 눈에 글썽거렸습니다. 몇 달 전 그렇게 땀 흘리며 혼신의 힘으로 지휘를 하시더니... 한국인 남편의 장례식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던 플로리도 그 후 석 달 만에 세상을 떴습니다.
저희가족이 헝가리 땅에 발을 디딘 것이 딱 20년 전이네요. 1991년 6월 11일 도착했으니.
성경 사도행전 16장 9절, 바울이 본 마게도니아 환상을 따라 갖게 된 유럽선교 비전과 또 공산권 선교, 그 두 특성을 가진 나라로서 가장 먼저 문을 연 나라가 헝가리였습니다. 이렇게 저희는 선교사로 이 조그만 땅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다뉴브 강이 도도히 흐르는 아름다운 부다페스트! 저희는 소외되고 가난한 노숙자들을 위해 급식 밴을 몰고 다니는 무명의 한국인 선교사지만, 같은 공간을 일상으로 사신 유명한 분이 계시니, 그분은 바로 애국가를 만드신 안익태 선생님이십니다. 1934년 헝가리에 오셔서 코다이 음악과 리스트 아카데미에서 공부하셨다니...
얼마 전에 리스트 아카데미 기숙사 건물 입구에 안익태 선생님의 흉상 건립식이 있었습니다. 우리 편에서도 자랑스러운 일이었지만, 헝가리 음악 관련인들도 무척 자랑스러워하더군요. 멀리 에스파니아에서 안익태 선생님의 따님도 오셨는데, 인생의 다뉴브강을 느꼈습니다.
한 국가의 역사든 한 인생의 개인사든 가정사든 유유히 흐르는...
헝가리의 개혁교회는 예배가 끝날 때 항상 힘누스(애국가)를 부릅니다. 나라를 위한 기도문으로. 맨 처음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나님이여! 우리나라를 축복하소서!” 우리나라 애국가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선교사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희생의 물질로 후원해주는 나의 조국, 선교한국! 안익태 선생님의 “한국 환상곡”처럼,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처럼, 우리는 선교로, “오마주 투 코리아(Homage to Korea)!” 헝가리는 우리나라처럼 한이 많은 나라입니다.
주변 강대국의 침입과 전쟁 때마다 패전국에 섰으며 결국 땅도 2/3를 빼앗겼습니다. 지금은 남한 크기 정도의 국토에 서울 인구보다 좀 적은 천백만 명이 살고 있습니다. 그중 사 백만 명이 가난하고 자살률은 우리나라와 일, 이등을 한다고 합니다. 부다페스트에 노숙자가 삼 만 명이고 시설 수용인원은 6천 명이라고 하네요. 아름다운 문화유산과, 노벨상을 열 네 명이나 받은 나라가...
‘한’(恨)! 감사한 것은 그래도 우리나라는 그 한(恨)을 역동적인 에너지로 쓴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전쟁을 겪으면서도 자녀와 가족을 위해 희생한 우리 부모님들이 계시기 때문이지요. 더구나 신앙의 부모님, 그분들의 기도와 사랑으로 이제 다른 나라에 가서 그 사랑 베푸는 것입니다. 선교사로 그 땅에 살지 않더라도 단기선교로 많은 크리스천들이 일정기간 선교지에 나갑니다. 저희에게도 꽤 많이 다녀갔고 각자의 은사를 따라 섬기고 가지요.
특히 음악을 통해 인종과 언어를 초월해서 사람들이 마음을 엽니다. 유럽과 미국, 한국 등 코리언 디아스포라들 중 많은 뮤지션들이 헝가리에 오고갑니다. 그러나 뮤지션, 음악전문인이 한 명도 없을 때 복음을 전하는 남편 옆에서 제가 반주를 합니다. 왜 어릴 때 엄마가 교회 반주자로 만들려고 피아노를 배우게 했는데 열심히 하지 않았던가! 아마추어지만 복음을 전하는 데는 선교사로서 마음이 간절해져서 반주하게 됩니다.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이세...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헝가리 부다페스트에는 전철이 3호선까지 있고 현재 4호선을 건설 중에 있습니다. 거기 좀 어두컴컴한 후미진 곳 또는 광장 한쪽 계단 밑에 노숙자들이 모입니다. 헝가리인이 대부분이지만 그 중에는 루마니아인, 로마니(집시), 독일인도 있습니다.
월요일에는 동부역, 화요일에는 모스크바 광장 역, 금요일과 주일에는 남부역에서 영의 양식인 복음과 육의 양식인 구야쉬 국 또는 레초 국을 급식하는 한국인 선교사와 함께. 길을 지나가다 찬양소리에 이끌려 다가온 관광객들 외국인 방문객들도 있습니다.
애국가를 남긴 안익태 선생님도 뮤지션으로 왔다가 뼈를 묻은 정 선생님도 선교사로 이 땅에 와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저희도 자자손손 이곳에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한 때를 이 헝가리 땅에서 살았다는 거, 인생의 다뉴브강에 합류했었다는 거, 그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부다페스트에서
헝가리 선교사 김흥근&서명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