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니아인들은 발칸 반도의 서쪽에 거주한 원주민이었던 일리리아인들(Illyrians)의 후예들로 여겨진다. 6세기 경, 이주하던 슬라브인들은 일리리아인들의 영토에 정착하기 시작했고 그들을 오늘날의 알바니아로 몰아냈다.
알바니아인들은 그들이 사용하는 방언에 따라 크게 2개의 종족으로 나눠지는데, 게그인과 토스크인들이다. 토스크인들은 쉬쿰빈 강의 남쪽에 사는 반면, 게그인들은 이 강의 북쪽에서 산다. 이들이 사용하는 2개의 방언은 단어와 발음에 있어서 약간씩 다르다. 1950년대에 토스크 방언을 알바니아의 모든 출판물에 사용하기로 결정을 했는데, 이는 당시 토스크 언어가 알바니아 전역에 있어 가장 널리 사용되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알바니아 남부지역 기후는 이탈리아 남부지역의 기후와 비슷하다. 이 알바니아 남부지역에 거주하는 토스크 알바니아인들은 친절하고 생기가 넘치며 사람들과 서로 대화하기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이 토스크 알바니아인들이 알바니아의 정치를 비롯한 사회 전반의 여러 영역들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다.
삶의 모습
1940년대 공산주의정권 전까지만 해도 알바니아인들은 피스(fis)라고 불리우는 대가족으로 살았던 부족들로 오래된 많은 전통들을 갖고 있는데 벤데타(vendettas)라고도 하는 ‘피의 다툼’은 대개 여러 세대에 걸쳐서까지 계속되곤 했다. 이러한 다툼이 계속되는 동안 방어를 위해서 가족들은 쿨라(kulas)라고 불리우는 단단한 석조가옥에 살았는데 이 집의 1층은 창문대신 세로로 가느다랗게 쪼개진 틈들을 갖도록 짓고 위층은 닫을 수 있는 창문을 갖고 있었다. 알바니아는 많은 고립된 지역들이 있는 나라이다. 수 세기에 걸쳐서 이러한 고립은 지역적으로 매우 다양한 생활양식과 정착의 형태를 낳았다. 그러나 1944년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전통적인 생활양식은 철저하게 변했으며 정치지도자들은 국가적 단합을 이루기 위해 종족과 종교, 심지어 복장까지 그 다양성을 없애야 한다고 믿었다. 거대한 농장이 세워지고 교육은 의무화 됐다.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세워졌고 많은 인구가 도시화됐다. 오늘날 알바니아 인구의 3분의1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으며 증가하는 산업인구와 의무교육의 도입은 사실상 많은 지역적인 차이들을 제거시켜왔다.
1991년 공산주의정권 붕괴로 수많은 외적 급속 변화가 일어났고 사람들은 정체성 위기를 겪고 있다. 상처, 분노, 혼란 가운데서 그들은 지금 유럽에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낙후된 나라로 여겨지는 자신의 나라 안에서 정체성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신앙
수세기 전 많은 알바니아인들은 오스만투르크 제국에 의해 이슬람으로 개종됐다. 그러나 그들은 일종의 ‘민속적인 이슬람’ 관습을 따르고 있다. 1967년 알바니아는 ‘세계 최초의 무신론국가’로서 선언하고 외부 세계의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하도록 그 국경을 닫아버렸다. 그 이전에는 종교가 대부분 미신에 기초해 있었다. 많은 토스크 알바니아인들은 정교회에 속해 있지만 이들의 종교적인 생활은 명목상의 피상적이고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다.
공산정권의 붕괴와 함께 범죄율이 급상승한 후로 종교적 행위가 허락됐을 뿐 아니라 범죄를 줄이는 대책으로 장려됐다. 중동에서 온 무슬림들은 지금 알바니아를 다시 이슬람화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오늘날, 무슬림들과 북 알바니아의 가톨릭 그리고 남 알바니아의 정교회들은 기독교와 같은 타 종교들을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 그들은 기독교가 알바니아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필요로 하는 것들
오늘날 알바니아의 경제는 매우 불안하다. 파업, 특히 광부들의 파업은 매우 잦다. 알바니아의 화폐는 가치가 없고 실직율은 극히 높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희망과 안정을 찾을 수 있음을 알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