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바비 무리 가지채
더운 여름이 되면 모든 고려인들에게 통하는 정감어린 말이 있습니다. 어떤 고려인에게라도 ‘바비 무리 가지채’라고 하면 금방 얼굴이 밝아진답니다. 이 말은 ‘밥을 물에다 말아서 가지채와 같이 먹는다’라는 뜻인데, 고려인들은 중앙아시아에서 살 때에, 항상 여름이 되면 밥에다 물을 말아 기름으로 뽁은 가지채와 함께 먹었답니다. 어머니가 만들어준 가지채와 물에 말은 밥은 고려인 마음속에 자신이 고려인임을 잊지 않게 한 것입니다.
러시아어의 영향으로 받침소리가 명확하지 못해 ‘밥’을 ‘바비, ‘물’을 ‘무리’라고 발음한 까닭입니다. 70년 동안 구소련 때 제2국어로 고려말을 학교에서 배웠지만 대체적으로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한 탓인지 고려 말과 글을 아는 고려인을 거의 만나기 어렵습니다.
민족 언어와 말을 몰라선지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는 고려인 청년들은 민족의식이 그렇게 뚜렷하지 못하지요. 이들을 위해 한글을 나름대로 열심히 가르쳐보지만, 그렇게 기대만큼 잘되지 않습니다. 물론 교사들도 부족하지만 무엇보다 고려인들이 한글을 배우겠다는 의지가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오데사에서 한 시간 거리인 아비디오폴 한글학교도 지난주에 종강을 했는데 어른 2명과 초등학생 5명만이 끝까지 자리를 지켰답니다. ‘바비 무리 가지채’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것처럼 고려인들이 민족을 사모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우크라이나 모든 고려인들이 한민족임을 잊지 않고 이 땅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비올라 세례식
지난 주일은 세례식과 함께 야외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번 세례는 비올라 자매 1명만 받아 주일 예배의 주인공(?)이 되었답니다. 비올라는 16세 되는 고려인 여학생입니다. 3년 전에 어머니가 사는 이곳에 와서 언니와 함께 교회에 나오게 되었답니다. 세례 받기까지 비올라가 예수님을 믿게 된 동기를 살짝 소개할까 합니다.
어려서 부모님이 헤어지는 관계로 외할머니와 함께 우즈베키스탄에서 10년 넘게 살다가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어머니 있는 오데사로 오게 되었습니다.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실 때, 어린 비올라는 너무 두렵고, 자신도 같이 죽을 줄 알았답니다. 그때 하나님을 찾고 할머니를 살려 달라고 기도를 했답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다른 가정을 가지고 있는 어머니에게로 와서 언니와 그리고 현재 아버지에게 낳은 네 살 되는 남동생과 함께 화목한 가정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작년 추운 겨울 때, 비올라가 집에서 남동생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비올라가 잠깐 낮잠을 자는 사이, 동생이 옷을 벗은 채 마당으로 나가다가 그만 문이 잠기고 말았습니다.
어린 아이가 옷 벗은 채 밖에서 몇 시간 동안 있게 되었습니다. 몸이 얼은 동생을 발견하고 병원으로 갔을 때, 비올라는 또 다시 죽음의 두려움에 있었습니다. 비올라는 죽으려고 손목에 칼을 갖다 대기까지 했답니다. 그때 다시 하나님을 기억하고 동생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다녀온 어머니의 위로를 받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답니다. 처음엔 언니 따라, 친구 만나기 위해 나오던 교회에서 비로소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고, 까다로운(?) 세례공부도 무사히 마치고 홀로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3개월 전에 세례를 받겠다는 비올라가 세례공부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반신반의 했는데, 오히려 나이 많은 언니들은 모두 탈락하고 혼자만 통과했습니다. 성도님 앞에서 구원 간증하는 비올라 모습은 저에게 많은 위로와 힘을 주었답니다. 고려인 청년들이 비올라처럼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하는 믿음을 주시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연락처 visionukraine@hanmail.net 정한규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