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디옥에서 출발한 바울과 바나바 선교팀은 실루기아 항구에서 배를 타고 구브로(Cyprus, 키프로스, 혹은 사이프러스)로 이동합니다. 처음 만난 곳이 ‘살라미(Salamis)였습니다. 살라미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증거 했던 선교팀은 섬을 가로질러 넘어가 바보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바보(Paphos)는 구브로 섬 서쪽 끝에 있는 살라미에서 약 160km 거리입니다. 바보는 오랫동안 구브로 섬의 수도이었으며 AD 4세기까지 무역과 경제의 중심지였습니다. 바울의 선교 당시 바보에 로마 식민지 본부가 있었습니다. 바보는 신바보와 구바보로 나뉩니다. 바울이 선교한 곳은 신 바보입니다. 구(舊) 바보(Old city)는 오늘날의 신(新) 바보(New city)에서 동쪽으로 16km 떨어져 있습니다.
바보는 그리스 신화에서 비너스 즉 아프로디테(Aphrodite) 여신의 출생지로 알려집니다. 고대 그리스 최대의 서사시인 호메로스는 “황금을 머리에 쓴 아름답고 숭고한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노래를 바친다”고 했습니다. 아프로디테는 사랑(Love), 미(Beauty) 그리고 풍요(Fertility)를 상징하는 여신입니다. 그리스신화에서는 아프로디테는 구브로의 바보 근처의 바닷가 물거품 속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구브로는 유명한 구리 산지입니다. 그래서 키프로스라는 이름도 구리를 뜻하는 히브리어 ‘키프리오스’에서 나왔습니다. 구브로의 면적은 제주도의 5배 정도인데 지중해 섬들 중에 세 번째로 큰 섬입니다. 구브로에는 유대인이 많았습니다. 특히 로마가 지배했던 주후 1세기에는 상당한 유대인들이 살았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구브로에 성공한 유대인이 많았습니다.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와 바나바도 구브로 출신의 부자였습니다.
구브로(Cyprus)는 기원전 333년 알렉산더 대왕이 점령했고 알렉산더 대왕 사후에는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통치했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58년에 로마에 합병되었고, 기원전 37년에 로마원로원의 속주가 되었습니다. 기원전 15년경 아우구스투수 황제시절 바보 지역에 큰 지진으로 도시 전체가 파괴되었는데 곧 로마정부의 재정지원으로 재건되었습니다.
구브로에는 옛날 로마시대의 성(城)이 아직 남아 있고, 성 뒤로는 왕의 무덤 등 고대 유적지가 발굴되었습니다. 로마시대 생활상을 담은 모자이크들이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4세기 초에 거대한 비잔틴교회가 세워졌었습니다. 그런데 AD 7세기에 이슬람 세력이 침략해서 교회를 비롯해 많은 유적들을 파괴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비잔틴교회 터가 남아있고 꽃무늬 모자이크들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습니다.
구브로(키프로스)는 역사 속에서 부침이 많았습니다. 647년과 802년에 이슬람군에게 점령당했습니다. 1191-1571년에는 십자군들과 베네치아인들이 점령해 라틴 문화와 라틴 교회를 따르도록 강요당하기도 했었습니다. 1571-1878년까지 오스만투르크가 지배를 했고 1878-1960년에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기도 했습니다. 1960년에 독립했지만 현재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습니다. 북쪽은 터키가 점령했고 남쪽은 그리스로부터 독립했습니다.
바보는 BC 58년경 로마가 지배한 후부터 구브로의 수도가 되었고, 로마총독 주재지였습니다. 바울 때는 서기오 바울(Sergius Paulus)이 로마의 총독으로 주재했습니다. 발굴된 비석에 의하면 41년부터 54년까지 ‘퀸터스(Quintus) 서기오 바울’이라는 총독이 바보에 주재했다고 합니다.
사울이 바울로, 리더가 바나바-바울에서 바울-바나바로
40에 하나 감한 매 맞은 곳...‘성 바울의 기둥’남아있어
사도 바울은 이 서기오 바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방해하려던 바예수(Bar-Jesus)라 하는 유대인 마술사 엘루마(Elymas)는 바울에게 꾸중과 훈계를 받습니다.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는 바울의 저주에 따라 엘루마는 장님이 됩니다. 이 일을 통해 큰 충격을 받은 총독 서기오 바울은 바울의 전도의 메시지를 받아들입니다.
결국 구브로 섬의 로마총독 서기오 바울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믿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바보에서 행한 영적 능력과 이적 사건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이 사건을 계기로 바울의 이름을 사용합니다. 즉 ‘사울’이 공식적으로 ‘바울’로 바뀌어지는 장면입니다. 아울러 여기서 선교팀 리더가 바뀝니다. 이름순서가 바나바-바울에서 바울-바나바로 전환됩니다.
바보에 전해지는 전설 중에 하나가 바울이 40에 하나 감한 태장을 맞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바보에서 태장을 맞고 배를 타고 오늘날 터키 남부에 있는 버가로 이동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채찍을 맞은 것을 기념하는 바울채찍교회가 바보항구에서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이 교회는 바울이 채찍에 맞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교회입니다.
이 바울채찍교회 옆에 ‘성 바울의 기둥’이란 푯말이 있는데, 그리스어와 영어로 새겨진 대리석 기둥이 있습니다. 바울이 40에 하나 감한 매를 맞기 위해 묶였던 기둥이라고 알려집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4절에 바울이 40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그 매를 맞은 상황과 장소에 관한 언급은 없습니다. 바보에 ‘바울채찍교회’와 바울이 묶였다는 ‘성 바울의 기둥’을 통해 바보가 그 중의 한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 오른쪽으로 얼마 되지 않는 곳에 카타콤이 있습니다. 비록 작은 규모이기는 하나 바보에 있었던 신앙의 박해와 수난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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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4.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