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머리를 짧게 잘랐다. 코비드19이 한창 기승을 부릴 때 미장원에 갈 수 없어서 머리를 기르기 시작한 것이 일년반이 지났다. 늘 짧은 머리를 하고 있다가 머리를 기르니까 주변 사람들 몇 명은 젊어 보인다고 말했다. 인사로 하는 말이라고 할지라도 젊어 보인다는 말이 듣기 싫지는 않았다. 그런데 암으로 고생하던 한 친구는 긴 머리가 여성스러워 보이기는 하는데 전문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고 다시 짧은 머리를 하라고 말했다. 귀찮기도 하고 머리 자르러 갈 시간도 없어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마침 교회사역의 일부로 온라인 세미나를 인도했는데 타 주에 사는 조카가 등록을 했다. 세미나를 통해 배우고자 하는 의도보다는 오랜만에 이모 얼굴도 보고 이모의 강의에 대한 피드백도 하고 싶어서 들어온 것 같았다. 세미나를 마치고 조카가 보낸 메시지는 우습게도 세미나 내용에 관한 것이 아니고 “이모, 내일 당장 머리 잘라”였다. 사실은 짧은 머리가 좋다고 말했던 친구가 그 주 월요일에 세상을 떠나서 마음도, 몸도 지치고 힘든 상황이었다. 몸살이 난 채로 강의를 했더니 피곤해 보이고 머리까지 길어서 더 나이 들어 보인다는 것이다. “다음 주 세미나 때 이모 머리 잘랐나 볼거야”라는 조카의 잔소리도 있었지만 친구 장례식에 마지막 선물로 친구가 좋아하던 짧은 머리로 참석하고 싶었다. 그런데 몸살이 계속되는 바람에 장례식을 마친 후에야 머리를 잘랐다.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는 “그래, 짧게 자르니 좋네”라고 말할 수 없었지만 조카는 “이제야 우리 이모 같네” 하면서 짧은 머리에 한 표를 던진다.
아침에 머리를 감으려니 짧아진 머리가 훨씬 편하게 느껴지면서 머리 스타일에 대한 추억이 다가온다. 사십 년 전 미국에 와서 테네시 주 낙스빌에 살 때 남편과 나는 미장원에 갈 생각을 못했다. 시골이어서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미장원이 없었다. 돈도 없었지만 짧은 영어로 미국인 미용사에게 어떤 스타일로 잘라 달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집에서 서로 머리를 다듬어 주었다. 하루는 남편이 내 머리를 다듬었는데 한 쪽을 자르고 나서 다른 한 쪽하고 균형이 안 맞는다고 다른 쪽을 더 자르고, 또 다른 쪽이 더 긴 것 같다고 하면서 계속 자르다 보니 완전 군인 머리를 만들어 놓았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우스운데 할 말이 없던 남편은 “와우, 오드리 헵번 같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위기를 모면하려 했다. 대학시절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의 긴 머리가 기억에 남아 있었던지 남편은 내게 늘 머리를 기르라고 했다. 올망졸망 어린 아이들을 키우면서 긴 머리가 불편해서 짧게 머리를 자르고 오면 화가 나서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가곤 했다. 오죽하면 우리 집에 다니러 왔던 오빠가 “나 원, 네 머리 네가 자르는데 왜 저런다니…” 하시던 생각이 난다.
짧은 머리를 좋아하던 친구도, 긴 머리를 고집하던 남편도 이제 이 세상에 없다. 그리고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코비드19도 서서히 수그러지는 듯 하다. 일년반의 기간은 당황스럽게 퍼져가는 바이러스 앞에 우리 모두가 한없이 무력함을 철저히 배운 시간이었다. 경제가 휘청거렸고 사람들은 마치 구약시대 나병환자를 대하듯 서로가 간격을 두며 살았다. 화장실 휴지나 클로락스 페이퍼, 손 세정용 알코올을 사려고 긴 줄에 서서 기다려야 했던 시간도 있었다. 많은 사회학자들이 우리 사회가 코로나19가 끝난다고 해도 절대로 그 이전의 상태와 같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뉴노멀 시대에 대한 많은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가 종식되고 다시는 온 인류가 고통을 당하는 이런 질병이 없기를 바란다.
코로나 기간 동안 알게 모르게 침체되고 우울했던 마음이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친구의 죽음으로 더 힘들었다. 이제 코비드 이전처럼 다시 짧아진 머리에 어울리게 그동안 힘들었던 시간을 훌훌 털어버리고 새 마음으로 앞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 세상을 떠난 친구에게도 그만 작별을 고하기로 한다. “친구야, 네가 그렇게도 간절하게 더 살고 싶어 하던 이 땅에서의 삶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도록 할께. 그 날이 올 때 주님 앞에서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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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