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그렇게 저희 집을 만남의 장소요, 숙소요, 선교현장으로 사용하셨습니다. 보통의 윗마을 사역은 안가를 따로 만들어놓고 현지 동역자를 세운 후, 윗마을 분들을 숨겨주며 성경을 가르칩니다. 스파이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면 선교사님들이 와서 본격적으로 성경공부를 시키고 세례(침례)를 줍니다.
그러나 저는 안가를 세우지 않았습니다. 세울 재정이나 인프라가 없기도 하였지만 일부러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사선을 넘는 사람들의 낯선 경계와 눈빛이 복음을 듣고 변하는 순간, 하나님을 아버지라 고백하는 그 순간을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사역할 당시는 남북 대립으로 윗마을에서 온 스파이가 너무 많았습니다. 윗마을 특무대원들도 무역상처럼 변장하고 돌아다니며 선교사를 찾아서 납치 또는 해코지 하였습니다. 중국 정부에서도 대대적으로 선교사들을 추방하였습니다. 80-90%의 선교사님들이 사역을 포기하고 철수하였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저희 가족이 추방되지 않고, 윗마을 분들을 계속 만나게 하셨습니다. 저희가 한인들과 교류를 끊은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외로워도 그들을 만나지 않고, 선교사님들과 이야기도 하지 않고 중보기도도 아랫마을로 보내지 않았기에 저희가 안전할 수 있었습니다. 시골 산골에 떨어져 살며, 일상에서 은밀하게 사역을 하였기에 저희는 노출되지 않았고 선교지에서 오래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외롭고 슬펐습니다.
윗마을 사람이 없는 날에는 세 자녀들과 압록강 두만강에 나가서 물고기도 잡고 고동도 잡으며 물놀이를 하였습니다. 강 건너의 집과 사람들을 볼 때면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고 싶지만 쉽게 안부를 물을 수 없어서 때때로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물이 고였습니다. 발을 물에 담근 셋째 딸에게 “이 물은 강물이 아닌, 우리민족의 눈물이란다” 하고 시같이 말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한 없이 물이 넘쳐흐른다!” 하고요.
한 번은 강가의 어부가 “이 강의 물고기는 다 우리 것이요!” 저 조선사람들은 이 강에서 물고기를 잡아먹을 수 없어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북중 변경 조약에서 강의 섬은 윗마을 것, 강 속 자원과 물고기는 중국 것으로 조약을 세웠다는 것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먹을 것이 없는데, 강 속의 풍부한 어류자원조차도 윗마을 사람들이 배질해서 먹을 수 없다는 것이 한없이 슬펐습니다. 빈 옥수수대만 덩그러니 세워진 산 아래 자락에서 윗마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으면서도, 튀어 올라오는 연어도 마음껏 잡아먹을 수 없다니, 강 속의 풍부한 물고기를 볼수록 윗마을의 굶주림이 더 가혹하게 느껴졌습니다.
하루는 평상시 알고 지내던 윗마을 청년과 같이 식사를 하였습니다. 제 옆에서 한참 혼술을 하더니 불쑥 의자에서 일어나 “형님! 고마워요!” 하고 허리를 굽히는 것입니다.
“뭐가, 고맙지?” 의아해서 물었는데, “그동안 나에게 아무 것도 안 물어줘서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유학중에 한국사람을 보고, 호기심이 들어서 몇 번 만나봤는데, 윗마을의 정치가 어떠니 경제가 어떠니 하면서 자꾸 가르치기에 역겨워서 다신 안 만났답니다. 그런데 저는 윗마을을 조롱하지도 않고 자신을 평범하게 대해주어서 형님으로 모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그 동생에게 물어보고 싶고 알려주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성령께서 제 입을 막으셨습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마음을 열고 다가온 것입니다. 그 친구와 저희 집에서 식사도 하고 명절에는 애인과 함께 와서 윷놀이 하며 놀았습니다. 형 동생하면서 경계심 내려놓고 이야기하였던 친구인데, 그 친구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그 친구가 평양으로 들어갔습니다. 동생이 유학을 나와야 한다면서요.
‘복음을 나누었으면 어땠을까! 왜 나누지 못했을까!’ 지금도 후회가 되는 동생입니다.
윗마을 가정에서 자녀유학은 보통 한 자녀씩 교대로 내보냅니다. 가족을 한꺼번에 유학시키지 못하도록 법으로 제제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형 동생 하던 그 친구와 관계가 두절되었습니다.
‘지금은 그 동생 어디서 잘 지내고 있는가? 민족 사랑하고 애인 고민 많던 친구였는데...’ 그 친구와 어깨동무하며 웃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09.11.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