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석 목사 | 퀸즈장로교회 부목사
들어가는 말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기존 성경은 우리말 성경이 번역된 지 한 세기가 가까운 번역이므로 오늘날 이 번역을 그대로 계속하여 쓰기에는 어려움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 한글의 맞춤법이 달라졌고, 사람들이 사용하는 실제 언어도 많은 변화를 겪고 있기에 기존의 번역 성경을 개정할 필요성에 관한 논의는 1960년대부터 계속되어왔다. 그리고 그 내용을 쉽게 전달하고자 학자들이 노력하여 기존의 개역성경을 개정한 성경을 내어놓은 지 10년 이상이 지났다. 그러나 문제는 그 개정개역 성경이 얼마나 정확하게 성경원문이 전하는 바를 그대로 전하도록 번역했는가 하는데 있다. 개역 개정판을 대하는 성경 원어에 익숙한 성경학도들이나 학자들은 여기에 대하여 많은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필자는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언급해야 할 복잡한 내용을 가지고 있지만 여기서는 간단하게 기존 한글 개역성경 사용의 필요성에 대해 이미 회자되고 언급된 내용들을 다시 정리하고 기존 한글 개역성경 사용의 필요성을 강조해보고자 한다.
1.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측 총회의 결정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제 96회 총회가 2011년 9월 19일부터 23일까지 전북대학교 삼성문화관에서 개최되었다. 여기서 총회의 성경 사용에 대한 입장은 ‘개역개정판’이 아니라 기존의 ‘개역 성경’을 강단용으로 그대로 사용하도록 결의하였는데, 발표된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작금의 교회는 거짓 교사들로 인하여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계시라는 불변의 진리를 퇴락시키고 있습니다. 성경의 축자영감설을 부정하는 자들의 해석들은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규범인 성경의 권위를 추락시켰습니다. 다소 번역의 차이 혹은 표현의 차이를 인정한다고 할지라도 진리의 오역과 왜곡은 결코 용납될 수 없습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한글개역성경’을 여전히 선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라도 진리 전파와 수호를 위해서 성경 원문의 뜻을 충실하게 살리면서 이 시대 사람들의 신령한 교훈에서 전혀 손상이 되지 않는 성경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하여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제 96회 총회에서 ‘한글개역성경’을 강단용으로 계속해서 사용하도록 결의하였습니다. 총회 산하 모든 지교회들과 더 나아가서 한국 교회가 진리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의 말씀 밖으로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총회의 신학 연구결과에 의한 분명한 판단을 우리는 심사숙고하며 그 결정을 존중하고 따를 필요가 있다.
2. ‘한글개정개역성경’을 강단용으로 사용하는데 있어서 부적합성
다음은 개정개역성경이 강단에서 사용되기에 적절하지 못한 몇 가지 이유를 밝히고자 한다.
1) 신학적인 무책임성
다음은 2011년 7월 22일자 교회 연합신문에 발표되었던 내용이다.
성서공회는 1993년 표준 새번역 성경을 번역 출판했으니 합동측을 비롯한 보수 교단들의 반발에 부딪혀 표준, 새번역 성경은 공인본으로 채택되지 못했다. 표준 새번역은 높은 수준의 번역임에도 불구하고 교계로부터 “자유주의 신학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여러 곳 가감하였고, 신관과 구 원관 등을 약화시켰으며, 물질만능주의 사상 등이 도입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자 대한성서공회는 1998년 순전히 개역성경의 판권 연장을 위해 7만3천 군데를 고쳤다는 ‘개역개정판’성경을 내어놓은 것이다...... 이것은 처음부터 성서 원문 번역전문가가 수정한 것이 아니고 국어 문법을 좀 안다는 사람들이 어설프게 시작한 수정작업이었다. 성서공회는 이 수정 원고를 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10년이나 방치해 두었다가 표준 새번역이 거부되자 부랴부랴 판을 만들어 출판했는데 너무 서둘다 보니 결국 네 번에 걸쳐 판을 낼 때마다 새로운 성경으로 둔갑하는 ‘누더기 성경’이 되고 만 것이다......
2) 개정 감수위원회 일부 임원들의 오류 시인
당시 개정 감수위원회에 참가했던 임원들조차 잘못된 것임을 시인하고 있다고 한다. 임원이었던 모 교수는 “감수 작업을 위해 최소한 3개월의 시간을 더 달라. 이에 대한 보수는 받지 않겠다”고까지 성서공회에 제안했으나 공회는 이 요구를 거절하고 서둘러 인쇄를 할 때마다 전혀 다른 새로운 성경으로 판이 바뀌어 지금 교계에는 각기 다른 네 종류의 개역개정판 성경이 사용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3) 번역상의 오류
한국교회언론회는 2007년 “성경번역은 신중하고 정확해야 한다”며 개역개정판 성경에 대한 성명서를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번역상 오류된 단어나 문장이 1만여 곳이며, 그 중 신속히 고쳐야 할 곳만도 4천여곳이나 되고, 심지어 개역성경에서 바르게 번역된 내용을 개악(改惡)한 경우가 7백여 곳이나 된다고 밝히고, 대한성서공회는 한국교회 앞에 사과하고 개역개정판 성경의 보급을 당장 중지하며 이를 회수하고 각 교단 총회는 개정판의 사용 승인을 시급히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정판에서 수정된 것은 현대어나 쉬운 말로 고친 것에 불과하고 원문을 충분히 검토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며 ‘개악된 성경’이라고 규정했다.
*다음은 합동측 총회가 개역성경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결정한 근거로서 인용된 몇 가지 실례에서 발췌한 내용들이다.
4) 구약의 실례
가)민수기 23장 20절
-개역성경: 내가 축복의 명을 받았으니 그가 하신 축복을 내가 돌이킬 수 없도다(히, 웰로 아쉬벤나) -개역개정: 내가 축복할 것을 받았으니 그가 주신 복을 내가 돌이키지 않으리라
*본 절에서 발람 자신은 하나님께서 베푸시기로 작정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복을 돌이킬 수 없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개역개정은 발람이 하나님의 복을 베풀거나 돌이킬 수 있는 권세가 있는 것처럼 ‘내가 돌이키지 않으리라’고 번역함으로서 하나님의 주권을 발람이 가로챈 것으로 잘못 번역하였다.
나)이사야 38장 15절
-개역한글: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고 또 친히 이루셨사오니 내가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내 영혼의 고통을 인하여 내가 종신토록 각근히(히, 에다데 콜 쉐노타이, 부지런히 힘씀) 행하리이다.
-개역개정: 내 영혼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신토록 방황하리이다.
* ‘내가 종신토록 방황하리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문은 ‘내가 근신하리라’, ‘내가 부지런히 행하리라’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내가 종신토록 방황하리이다’라고 번역한 것은 원문을 왜곡하고 내용적으로 정반대의 의미가 되어 버렸다.
다)다니엘 3장 17절
-개역한글: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히. 엘라하나)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개역개정: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 ‘하나님이 계시다면’이라고 번역한 것은 우리 신앙에 극심한 혼란을 주고 있고 자칫 잘못하면 하나님이 안 계실 수도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내용이다. 5) 신약의 실례
가)사도행전 2장 3절
-개역한글: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헬, 에카디센 엪 헤나 헤카스톤 아우톤)
-개역개정: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삼위일체 하나님 되신 성령님의 임재를 물건의 개수로 표현하는 것은 찬양받으실 하나님에 대한 합당한 표현이 아니다. 바르게 번역된 개역을 개역개정은 개악한 것이다.
나)고린도후서 7장 6절
-개역한글: 그러나 비천한 자들을(헬, 투스 타피에누스)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의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개역개정: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 타페이누스는 ‘낮은’, ‘천한’, ‘겸손한’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개정’은 바르게 번역된 ‘개역’을 개악함으로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
다) 고린도전서 1장 30절
-개역한글: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헬, 아폴뤼트로시스)이 되셨으니
-개역개정: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 ‘아폴뤼트로시스’는 속전을 받고 놓아준다는 의미인 ‘구속’을 뜻한다. ‘구원’을 뜻하는 단어는 헬라어 ‘소테리아’이다. 따라서 개정한글성경은 바르게 번역된 개역성경을 개악하였다.
나가는 말
미국교회나 영국교회의 경우 다른 많은 현대어 번역들이 있지만 아직도 다수의 교회들이 권위역 성경(Authorized Version, KJV)을 강단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4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 성경을 강단용으로 사용하는 이유는 그것이 가장 권위있는 사본을 사용한 종교 개혁자들의 성경이기 때문이다.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를 생명처럼 귀중히 여겼던 종교 개혁자들의 기도와 연구가 선행된 번역본이기 때문이다. 권위역 성경에 있어 오래되어 의미가 애매한 표현들은 지금도 성경 밑 부분이나 가운데 부분에 쉽게 표현됨으로 권위역 성경은 오히려 그 아름답고 권위있는 표현들로 인한 진가를 드러내며, 이 번역이 우월시 되고 있는 입장이다.
한국교회들은 지금 80%의 교회가 개역개정판을 사용하고 있다. 대한성서공회는 아직 새로운 성경의 번역을 위한 번역기구 하나도 구성하지 않고 있다. 성서공회는 개역개정판이 잘된 성경이라고 교단장들을 설득해서 개교회가 사용토록 하고 있다.
물론 어려운 한자의 쉬운 표현이나 현대 맞춤법의 표현에 대한 공로는 인정한다. 그러나 위에서 표현한 몇 가지의 부적합성의 실례만 보더라도 필자는 기존 개역성경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싶다. 성경번역을 하는 방법에는 문자대 문자(Corresponding translation), 혹은 역동적(Dynamic translation)인 방법이 있지만 우리의 기존 ‘개역성경’은 중도적 입장을 취하여 잘 번역된 성경이다.
맞춤법보다 중요한 것은 성경원문의 내용과 동일하도록 맞추려는 최대와 최선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한글 맞춤법에 입각한 말들은 성경 밑 부분에 주를 달아서 얼마든지 보충해 줄 수가 있다. 그러나 원문을 잘못 번역한 것이나, 무시한 것이나 빼버린 것은 그야말로 개역(改譯)이 아니라 개악(改惡)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비록 지금 80%의 교회와 교인들이 ‘개역개정’을 사용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그대로 전수하고자 하는 개혁교회의 입장인 성경의 무오성과 축자영감설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항상 견고하게 계속되어야 할 것이며, 이에 따라 성경 원문에 입각한 정확한 번역을 위해 진력함으로 한국 개혁교회의 입장을 표방하는 시대에 합당한 성경 번역이 출판될 것을 기대하며 기도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한국 개혁교회의 신앙과 신학에 충실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기존의 ‘개역성경’을 아직은 그대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