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오웬(John Owen)의 기도에서 성령의 사역 (The Work of the Holy Spirit in Prayer)

제 10장 로마 가톨릭교회 몇몇 사람들이 주장하는 ‘마음으로 하는 기도’

2. 자연의 빛 이외에 성경을 통해 살펴보아야 할 기도의 문제

 

자연의 빛에 따라 주장이 되는 기도는 성경의 범위를 벗어나거나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왜곡할 수도 있다. 성경에 그리스도의 기도나 다른 성도들의 기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기도의 은혜와 특권들이 강조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성경으로 보거나 상식으로 보거나 소위 말하는 ‘명상기도’는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다.

 

(1) 성경적인 기도는 외적인 요소들과 내적인 은혜와 효력을 가진다.  

 

성경은 기도가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신이 요구하는 바를 애원과 감사로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간절히, 뜨겁게, 끈질기게, 쉬지 않고, 끝까지 기도하는 것은 전자에 속한다. 이렇게 기도할 때 어떤 사람도 자신의 이성이나 지성을 사용하지 않고 기도할 수는 없다. 이성이나 지성을 사용하지 않고 기도한다면 그들이 어떻게 기도하든지 간에 그들의 기도는 야만적인 행위가 될 것이다.

내적인 측면에서 성경이 말하는 기도는 때를 따라 믿음과 사랑과 즐거움과 두려움과 성령의 모든 은혜로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은혜를 따라 기도할 때 기도의 생명력이 살아나며,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중보와 아무런 공로 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게 된다. 이런 기도의 수단을 통해 하나님은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으로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내신다. 그러므로 성경에 근거가 없는, 이성이나 지성이 무시되는 기도가 다른 어떤 성도가 해야할 의무나, 어떤 특권보다도 더 탁월하며 고차원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2) 다음과 같은 성경구절들이 이것을 말씀한다.

 

  에베소서 6장 16절, 빌립보서 4장 6절, 히브리서 4장 15절과 10장 9-22절과 같은 기도의 본질과 특권에 대해 말씀하는 구절들은 잘 보면, 이런 명상 기도와 일치하는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기도, 그리고 태초부터 살아왔던 많은 거룩한 사람들의 기도도 그것이 자신들을 위한 기도이든, 전체 교회를 위한 기도이든지 간에 이런 명상기도를 지지하는 것은 조금도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성령으로 기도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성경에는 우리가 그들이 주장하는 형태의 기도를 따라야 할 어떤 예도, 어떤 지시도 없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전적으로 성경에 위배되는 것이며, 몇몇 미혹된 사람들이 상상으로 만들어 낸 것일 뿐이다.

신약은 그리스도의 중보와 그에 대한 믿음을 통한 구원을 제외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다른 어떤 방법도 제시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리스도와 무관하게 하나님과 본질적이고 직접적으로 교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처럼 주장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구속하신 왕국을 하나님께 드릴 때까지 교회가 직접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없다. 그러므로 그들이  주장하는 명상기도가 전혀 기도가 아니라는 것은 그들의 기도에서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가 배제된 것만 보아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렇게 상상으로 만들어 낸 것은 이 땅에서 우리 성도들이 가지는 믿음의 영역이나 활동에 속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지 눈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행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행하는 가운데 우리 스스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첫 번째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합리적인 예배’에 속한 것으로 그 외에 더 요구되는 것이 없다(롬 12:1). 그러나 우리의 지성과 이성이 사용되지 않는 기도는 합리적인 예배에 속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더욱이 이 땅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왜냐하면 그런 것에 대해 성경 어느 곳에서도 약속되어 있지 않고, 우리는 오직 이 약속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본질에 참여하며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상의 것을 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환영을 좇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미래에 주실 영광을 격하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이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것이며, 이것은 진리를 구름과 어둠 속에서 찾기 위해 헤매는 것과 같다.

younsuklee@hotmail.com

05.04.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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