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노라면 여러 이유로 분을 품고 노를 발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한 기독교 상담자에 의하면 내담자의 반수 정도에 분노의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지난달 있었던 수양회 때, 분노에 관련된 설교를 한 후 돌아가면서 각자의 경험에 대해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한 분은 집에 문제가 생겨 어느 건축업자에게 공사를 맡기면서, 자재비로, 또 급하게 필요한 일이 있다고 하여 공사비 전액을 일도 끝나기 전에 지불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곧 연락이 안 되고 일도 마무리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만약 남편이 있는 걸 봤으면 이렇게까지 했을까라는 생각에 화가 치솟았지만, 마음을 고쳐먹으며 다치지 않은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 남성은 식구들 간에 생긴 문제로 수년간 자기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고 지냈다고 했습니다. 결혼해 본 일도 없이 어느덧 50줄에 들어선 그가 허망한 미소를 띠며 말을 마쳤을 때 모두에게 측은한 느낌이 전해졌습니다.
다음으로, 한 어머니의 나눔으로 이어졌습니다. 남편이 집을 나간 후, 작은 아이는 끊임없이 병치레를 하고 본인은 때로 운전이 어려울 정도로 눈에 이상이 오는 등 힘겹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타주에 살고있는 애들 고모가 오랜만에 와서 애들을 보고 싶다고 했을 때 여러 생각이 겹치면서 허락하지 않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한 참가자가 ‘핏줄을 나눈 조카들이 얼마나 보고 싶었겠는가?’ 했을 때 마치 보드라운 고양이 발에서 날카로운 발톱이 나오듯 대응하는 것을 보자 그 분노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친정 식구라곤 아무도 없건만 남편쪽의 많은 식구들이 애들과 본인이 아플 때 어디에 있었냐고 허공에 소리치는 듯했습니다. 분노란 의사소통을 어렵게 하며 기쁨과 건강을 파괴할 수 있는 것임을 실감하면서 어떻게 접근해야 될까 고민하게 됐습니다.
내게 가해진 부당함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적절한 것일 수 있지만 용서하지 못한다고 마음을 강퍅하게 한다면 때로 절제할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오르게 되고 이는 곧 죄가 되어 마귀에게 틈을 줄 수 있습니다. (엡 4:26,27)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자신이 받은 상처와 그로 인한 분노를 인정하면서, 통제할 수 없는 상대방의 행동에 대해서는 성령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곧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공격할 때 분노 해결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면, 나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은 없는지에 대해 돌아볼때 용서에 한발 다가갈 수 있을 겁니다.
자신의 분노를 무조건 견디고자 한다면 우울증이나 정서적 과민반응으로 건강의 문제가 올 수 있으며, 정당화하려는 것 또한 마음의 전쟁을 종식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결국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약 1:20)라는 말씀에 비추어 보면서 하나님이 원하시고 인정하시는 올바른 행위에 대해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시 37:8,9)라는 권면의 말씀이 있습니다. 한부모 인도자께서는, 분노의 문제로 힘들어하는 분들께,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계시고 가장 선하고 공정하게 다스리시는 여호와를 바라보며 의지하자고 권고하면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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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31.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