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의 발원은 여러 요인이 있었겠으나 우연한 사건으로 폭발하게 되었다. 인간 역사는 예기치 못한 사건을 통하여 물줄기가 휘돌아 가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것을 신학자의 입장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치부하지만 말이다. 유고를 방문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왕가 후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의 피살이 원인으로 작용하여 1차 세계 대전으로 비화 되었던 것처럼--- 사실 르네상스의 출발점은 1348년에 일어난 흑사병이 큰 동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원인을 모르는 병으로 피렌체 시민의 절반이 죽어 나가야 했으니 그 당혹감과 두려움은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몇 시간 전, 식사를 함께한 이웃이 갑자기 유명을 달리하였으니, 그리고 그런 일이 앞뒤에서 무수하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으니 말이다. 이런 손 쓸 틈 없는 정황에서 사람이 대응할 수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코로나로 수많은 사람이 일시에 손 쓸 틈도 없이 쓰러졌던 것처럼, 유로굴라 풍랑을 맞은, 뱃사람들이 로마로 운반할 그 귀중한 밀들을 아낌없이 바다에 던져 배를 가볍게 하려고 했던 것처럼, 금고에 쌓아놓은 돈이 그런 상황에서 무슨 위로가 되었을까! 오로지, 흑사병만 걸리지 않는다면, 이런 상황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면, 그 한 가지 염원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저들은 일찍이, 기도를 드렸다가 효험을 보았다는 오르산미켈레 성소를 찾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일찍이 그곳은 앉은뱅이가 일어났고, 미친 사람이 고침을 받았다는 소문이 바람처럼 전국을 휘돌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는 곡물 판매업자들의 길드(협동조합)가 사용하는 장소로 엉성한 창고에 불과한 곳이었다. 천장을 나무로 얼기설기 놓은 곳으로, 이층에는 시민들의 비상식량을 저장하였고, 아래층 한쪽 구석에 작은 예배당이 있는데,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그림이 있었다. 고로 곡물 상인들이 가끔씩 찾아가 성호를 긋고 복을 비는 곳이었다. 그런데 흑사병의 창궐로 그 허름한 곳을 이탈리아 전역에서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다. 그리고 찾아오는 사람마다 예물을 지참하였다. 그래서 모인 헌금이 35만 피렌처 금화(현재 우리 시가로 약3천5백억원)이었다. 그 돈으로 성소를 새롭게 단장하기로 결단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연의 행동은 죽음의 공포에서 자유하고 더 나아가서 연옥의 공로를 쌓기 위함이었다. 이들은 예수를 믿었기에 지옥 대신 연옥으로 가게 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연옥에서 기나긴 성화 과정을 거친 후에 천국으로 가게 되는데, 그 과정은 고통스럽고 오랜 기간을 보내야 하기에 그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공로가 요구되었다. 그 공로는 교회를 건축하거나 교회의 성화를 위한 헌금을 드린다거나 교회의 장식물을 조각하는 데 후원하는 일이었다. 그런 과정이 르네상스라는 놀라운 문화와 예술을 흥왕하게 하는 수단이 되었다. 일찍이 인문학을 공부한 코시모 데 메디치는 이 일에 목숨을 걸었다. 어떻게 물려받았고, 벌게 된 그 많은 재산을 아낌없이 문화와 예술에 쏟아부을 수 있었을까? 그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예술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외의 어떤 목적이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가 앞날을 예상하고 한 일은 아니었는데, 멋진 열매를 후손들이 거두고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이다. 메디치의 그 많은 재산(15세기, 6천억)은 역사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로마의 1차 삼두정치의 한 사람은 크라수스는 얼마나 재산이 많았던지 로마 시내를 그의 땅을 밟지 않고는 다닐 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게 되었나? 그런데 코시모 데 메디치는 그가 아낌없이 쏟아부어 브루넬레스키로 하여금 완성한 피렌체 두오모의 돔을 보기 위한 관광객이 2013년에 약 3백만이었고, 그가 공들인 우피치 박물관의 그림을 보기 위한 입장객이 5백만 이상이었다고 한다. 두 곳의 입장료만 합쳐도 연 2천억이 넘는 수익이었다고 관계 당국은 밝히고 있다. 그뿐인가, 가이드로 종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을까? 그렇다면 연옥에서 고난을 덜기 위한 자신의 사사로운 공로가 피렌체 시민들에게 영원한 연금을 들어준 셈이다. 그렇다면 피렌체 시민은 메디치 가문에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전대사(공로로 대사면을 받는 가톨릭의 제도)를 통해. chiesadiroma@daum.net 08.17.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