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발발 원인

이정현 목사 (씰비치사랑교회)

Q: 이번 주는 비극적인 6‧25 전쟁 74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북한 공산주의자 김일성의 남침 이유에 대해 보다 상세히 알고 싶습니다.

- 오렌지 카운티 엄집사가

A: 1950년 6월 25일 비가 촉촉히 내리는 조용한 주일새벽, 북한 공산정권의 김일성은 새벽 4시를 기해 38선 남쪽을 향해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1945년 일본에서 해방한 후에 5년간 적화통일의 야망을 불태우며 전쟁준비를 끝낸 공산주의자 김일성은 소련제 탱크와 야전포를 앞세우고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왔습니다. 김일성이 남침한 데는 3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 소련과 중국이 남침을 허락하고 군사적 지원을 했습니다. 김일성은 남침의 모든 준비를 다 끝내고는 1950년 3월에 소련에 가서 그 당시 스탈린에게 남침 허락을 받고 중국에 가서는 주석이던 주은래 수상과 중공군 사령관 모택동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중국은 소위 중국 공산당 팔로군인 2만 5천명의 병력을 1949년부터 보내어 한국침략의 주력부대가 되도록 북한에 후원했습니다. 그리고 소련은 전투기 200대 탱크 300대 야포 2,000문을 지원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김일성에게 6‧25 남침을 허락해서 비극적인 전쟁이 나서 우리의 부모 형제 한국인이 6‧25로 200만명이 사망했고 미군이 5만명이 죽었으며 가족과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이 천만명이 넘습니다. 

 

둘째, 에치스 라인 때문에 오판한 것입니다. 남한에서 1949년 미군이 철수해 일본으로 건너갔고 미국의 국무장관 애치슨 장관은 미국의 극동 방위 보호선을 한국을 배제한 채 일본 대마도를 경계선으로 삼아 필리핀과 연결했습니다. 한마디로 일본과 필리핀을 보호하고 한국은 빠져 있었습니다. 비슷한 시기 미국의 국가 안전 보장회의는 1949년 12월 결의에서 “만약에 공산군이 남한에 대하여 무력 침입을 행하더라도 미국은 남한에 지상군을 파견하지 않을 것이다.”라 의견을 밝혔던 적이 있고 이처럼 그 당시 미국 정부는 한반도에서 얻을 지정학적 이익은 거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것은 미국의 큰 실수라고 봅니다. 그래서 북한 공산주의자인 김일성은 미군이 한반도에서 이미 철수했고 전쟁이 나더라도 미군의 개입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판단하에 겁 없이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내려고 6‧25 전쟁을 도발했습니다.

 

셋째, 공산주의자 박헌영의 감언이설입니다. 박헌영은 8‧15해방후에 남한에 공산당 조선 노동당을 창설한 사람인데 그는 사람이 똑똑하고 상당히 조직과 선동에 뛰어난 정치적 천재로 충남예산 사람입니다. 그는 남한에 공산당 조선노동당을 창건하고 공산당원을 100만 이상 확장시켰습니다. 그런데 박헌영이 큰 실수를 했습니다. 공산당 조선노동당을 유지하려다 보니 운영자금이 부족하여 할 수 없이 위조지폐를 찍어 내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나중에 그것이 발각되어 박헌영 체포령을 내리자 그는 죽은 사람의 관에 들어가 북한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는 김일성 밑에서 부수상을 하고 외무부장관을 맡았습니다. 그는 김일성이 6‧25전쟁을 일으키도록 동기부여를 했습니다. 만약에 김일성이가 6‧25전쟁을 일으키면 남한 전국에서 자기가 조직한 남로당 출신 공산주의자 20만명이상이 전국적인 봉기를 해서 쉽게 남한을 무혈 적화 통일할 수 있다고 김일성에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박헌영의 감언이설의 말을 듣고 김일성은 6‧25 남침을 감행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김일성의 악한 도모가 허사로 돌아가게 하고 미군과 유엔군, 그리고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작전을 통해 공산화의 위기에서 한국을 기적적으로 구출했습니다. 특히 미국은 한국의 은인입니다. 

 

06.29.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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