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아이들을 학교까지 데려다 줄 때면 차에서 꼭 기도한다. 둘째가 먼저 기도하고, 다음에 첫째가 기도하고, 그리고 내가 기도한다. 하루는 딸 하나가 눈을 뜨고 기도하고 있길래, ‘기도할 때는 눈을 감아야지.’ 하고 말했더니, 아빠는 왜 눈 뜨고 기도하느냐고 한다. 그래서, ‘아빠는 운전을 해야 하니까 그런거야.’ 하고 말을 했는데, 잘 설득이 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 이후로도 종종 눈을 뜨고 기도하는 아이의 모습을 발견했으니까. 어쨌든, 이렇게 아침마다 기도할 때면 기도하는 내용이 늘 같다. 마치 외웠던 주문을 그대로 읊는 것처럼 똑같은 기도를 아침마다 한다. ‘아이의 몸과 마음과 생각과 관계를 지켜주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루가 되게 해 주세요’ 하고 말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대부분의 기도가 매번 별 다를 바 없는 기도이다. 식탁을 마주하고 기도할 때 갑자기 특별한 내용의 기도를 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예배 시간에 기도할 때도 특별하게 대단한 문장으로 기도하지도 않는다. 우리의 기도는 그렇게 늘 평범하다.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다. 그래서 기도가 마치 진부한 습관 같아 보인다. 그런데, 그렇게 평범하게 기도하는 것이 틀린 것이 아니다.
우리는 매일 습관처럼 물을 마시면서 ‘물이 너무 지겹다, 오늘은 콜라만 마셔야겠다’ 하고 말하지 않는다. 매일 습관처럼 밥을 먹으면서 밥을 지겨워하지 않습니다. 매일 똑같은 가족과 함께 살아가면서 함께 사는 가족을 지겨워하지 않는다. 가족이 지겹다면 매우 심각한 위기이다. 우리의 기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도 매일매일 다를 바 없는 습관처럼 기도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 주님도 그렇게 기도하셨다.
누가복음 22장 39절은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하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감람산에 가셨다는 것은 등산하셨다는 뜻이 아니다. 감람산 중턱에 겟세마네 동산이 있는데, 당시 기도원처럼 쓰이던 곳이다. 예수께서 바로 그 기도하는 곳에 가셨다는 뜻이다. 그러니 예수님은 습관을 따라 기도하셨음을 이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다.
분명 예수님은 기도하지 않으셨어도 이 땅에서 구원자로 살아가시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으셨을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예수께서 습관을 따라 기도하셨던 이유는 그 모습을 본 제자들도 습관을 따라 기도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고,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습관을 따라 기도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기도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오늘 하루 기도하지 않는다고 하여 갑자기 심각한 질병에 걸리거나, 오늘 하루 기도하지 않는다고 하여 갑자기 엄청난 재앙을 겪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예수처럼 매일매일 습관처럼 기도함으로 예수를 닮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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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9.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