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열어야할 ‘그 신앙’의 시대

이동진 목사 (성화장로교회)

가까이 있는 리돈도비치에 나가면 갈매기들이 떼를 지어 날아다닌다. 그들은 삶의 목표가 먹이인 듯 관광객들이 떨구어주는 빵조각 하나에도 그야말로 쏜살같이 날아와 부리를 쪼아댄다. 지저분한 쓰레기통 주변을 향해서도 달려든다. 먹을 것만 있으면.

그렇게 생존하는 수많은 갈매기 떼를 바라보면서 한 마리 조나단을 기억해낸다. 리차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 등장했던 조나단을 그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갈매기들 속에서 찾아낸다. 수 십년전 처음 읽었을 때, 소년의 마음에 무언가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주었던 갈매기 조나단. 하늘을 비상(飛翔)하는 그가 기억난다.

갈매기 조나단은 여느 갈매기들과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도 배고팠지만 먹이를 찾아 쓰레기통을 향해 날아가기 보다 그럴수록 푸른 하늘로 치솟아오르는 연습에 더 몰두했다. 다른 갈매기들이 당장 물고기를 향해 달려가 잡아채서 쪼아먹는데 정신이 없을 때에도 그는 끊임없이 개인훈련에 여념이 없었다. 보는 사람이 지루할 정도로 같은 행동의 반복, 하늘로 최대한 빠른 속도로 치솟았다가 물을 향해 내리꽂듯 날아가는 훈련, 그리고, 어제보다 조금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수없이 반복하는 날아오르기.

다른 친구들은 그런 미친 짓(?)을 하는 갈매기를 전혀 이해할 수 없어서 손가락질하며 조롱하지만 조나단 그는 개의치않고 오늘도, 또 오늘도 계속 반복되는 연습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의 눈에는 조나단의 행동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현실을 무시하는지, 외면하는지 배고픔을 모르는지... 조나단의 반복행동이 자기들과 다르기 때문에 무시했고, 조롱할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날 외롭게 혼자 노력에 노력을 거듭한 조나단은 어느 순간 그간 자신이 수없이 연습하면서도 깨뜨리지 못했던 장벽을 초월하는 감격적인 날을 맞이한다. 그리고 가장 빠른 속도로 가장 높은 곳으로 날 수 있게 된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높은 구름위로 날아가며 창공의 푸르른 영광을 누리던 그에게 자신이 혼자라는 생각이 스며들면서 지독한 고독을 맛보게 된다.

그 때, 둘러보니 어디선가 자신과 비슷한 속도와 높이에서 날고 있는 다른 갈매기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서로의 삶을 나눈다. 그들 또한 조나단처럼 조롱의 시간, 외로움의 시간을 지나왔으며 초월을 통과한 후 지독한 고독을 맛보았다는 고백들을 나눈다. 같은 과정을 포기없이, 타협없이 통과한 조나단과 그 창공의 갈매기들은 자신들의 만남이 고기 한 점을 차지하기 위해 노려보는 눈으로 쓰레기통 옆에서의 만남이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에서 서로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조나단, 그는 마치 갈매기 세계의 진정한 그리스도인 같다. 모든 갈매기들이 가는 길이 아닌, 더 높은 하늘을 향해 끝없이 반복해서 날아오르는 미련함을 조롱당하면서도 그 미련한 날아오르기를 계속했던 조나단, 그의 삶이 부럽고 그리운 시대이다.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오늘 교회는 어디에 있으며, 그리스도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래 안보이면 좋겠다. 오늘도 더 높은 하늘을 향해 날아올라 간 조나단처럼, 더 깊은 은혜의 바다를 향해 가느라 차라리 이 세상에서 보이지않는 곳에 가있는 것이라면 좋겠다.

겨우, 내가 좀 더 큰 물고기 물었다고, 내가 좀 더 큰 먹이를 차지했다고 만족해하고, 자랑하는 군중 갈매기를 떠나 영혼의 닻을 깊이 내리기 위해 애쓰고 힘쓰는 ‘조나단 성도와 교회’가 되면 좋겠다. 이 시대를 걱정하는 세상 전문가들처럼 영성을 풀어내지 말고, 조용히 갈매기 조나단이 되어, 차원이 다른 세계를 향해 날아오르기 연습에 더욱 골몰하는 ‘그 신앙’의 시대를 열어가고 싶다.

djlee7777@gmail.com

02.10.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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