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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ì´ì§€ 않는 싸움â€(The Invisible War) 출애굽기 14:13-14, 26-31

임수병 목사 (í•„ë¼êµí˜‘ 회장, í•„ë¼ì‚¬ëž‘ì˜êµíšŒ)

êµíšŒ 다니지 않는 ì‚¬ëžŒë„ ìž˜ 아는 성경 얘기를 하나 꼽으ë¼ê³  한다면 아마 오늘 본문, ‘ëª¨ì„¸ì˜ í™í•´ì˜ ê¸°ì  ì‚¬ê±´’ì¼ ê²ƒìž…ë‹ˆë‹¤. ì´ ìž¬ì•™, 파리 재앙, 악질 재앙, 메뚜기 재앙, 그리고 장ìžê°€ 죽는 재앙 ì´ëŸ° í•˜ë‚˜ë‹˜ì˜ ì—„ì²­ë‚œ ì—´ 가지 ìž¬ì•™ì´ ì´ì§‘트를 ë’¤ë®ì—ˆê³ , ì´ì§‘트는 그야ë§ë¡œ ì‘¥ëŒ€ë°­ì´ ë˜ì—ˆìŠµë‹ˆë‹¤. 그리고 마침내 ì´ìŠ¤ë¼ì—˜ì€ 400ë…„ 종살ì´ë¥¼ 마치고 출애굽하여 í™í•´ ì•žì— ë„착하게 ë˜ì—ˆìŠµë‹ˆë‹¤. 그리고 í•˜ë‚˜ë‹˜ì˜ ëª…ë ¹ì— ë”°ë¼ ê·¸ê³³ì— ì§„ì„ ì¹˜ê²Œ ë©ë‹ˆë‹¤. ê·¸ëŸ°ë° ì´ìŠ¤ë¼ì—˜ ë°±ì„±ì„ ë†“ì•„ì£¼ì—ˆë˜ ë°”ë¡œê°€ 마ìŒì„ 바꾸어 ê·¸ë“¤ì„ ì¶”ê²©í•´ 오게 ëœ ê²ƒì´ì£ . ê²°êµ­ ì´ìŠ¤ë¼ì—˜ 백성들ì—게 ì‰¼ì„ ì£¼ê³  안ì‹ì„ ì£¼ì—ˆë˜ í™í•´ê°€ ê°‘ìžê¸° ê·¸ë“¤ì„ ë§‰ê³  있는 커다란 ìž¥ë²½ì´ ë˜ì–´ë²„립니다. 오늘 ë³¸ë¬¸ì„ ë³´ë©´ì„œ ì´ëŸ° ì§ˆë¬¸ì´ ë– ì˜¬ëžìŠµë‹ˆë‹¤. 왜 하나님께서는 ì´ìŠ¤ë¼ì—˜ 백성들로 바다 ë°‘ 육지로 걷게 하셨ì„까? 하나님께서 물 위를 걷게 하실 ìˆ˜ë„ ìžˆìœ¼ì‹œìž–ì•„ìš”. 베드로가 물위를 걷는 ìž¥ë©´ì´ ë‚˜ì˜¤ë‹ˆê¹Œ 그리 어색한 ì–˜ê¸°ë„ ì•„ë‹™ë‹ˆë‹¤. ë˜ ì–´ì°¨í”¼ í™í•´ì˜ 기ì ì„ ì¼ìœ¼í‚¤ì‹  목ì ì´ ì´ìŠ¤ë¼ì—˜ 백성들로 í•˜ë‚˜ë‹˜ì˜ ê¸°ì ì„ 경험하게 하는 것ì´ê³ , ë˜ ì• êµ½ êµ°ì‚¬ë“¤ì„ ìˆ˜ìž¥ì‹œí‚¤ëŠ” 것ì´ë¼ë©´, ì´ìŠ¤ë¼ì—˜ ë°±ì„±ì€ ë¬¼ìœ„ë¥¼ 걸어서 통과하게 하시고 ì• êµ½ ë³‘ì‚¬ë“¤ì€ ê·¸ë“¤ì„ ë”°ë¼ ë¬¼ìœ„ë¥¼ 걷다가 ê°‘ìžê¸° ê·¸ ì• êµ½ ë³‘ì‚¬ë“¤ì„ ì‚¼ì¼œ 버리면 ë˜ìž–ì•„ìš”. 왜ì¼ê¹Œìš”? 왜 물 위를 걷게 하지 않으시고 ë¬¼ë°‘ì„ ê±·ê²Œ 하셨ì„까요?

ì• êµ½ vs. í•˜ë‚˜ë‹˜ì˜ ì‹¸ì›€

ì´ ì§ˆë¬¸ì— ë‹µí•˜ê¸° 위해서 ë³¸ë¬¸ì— ë“±ìž¥í•˜ëŠ” ‘싸움’ì— ëŒ€í•´ ìƒê°í•´ 보아야 합니다. 가장 먼저 ì´ìŠ¤ë¼ì—˜ 백성 vs ì• êµ½ 군사(바로)ì˜ ì‹¸ì›€ì´ ë³´ìž…ë‹ˆë‹¤. ê·¸ê²ƒì€ ì†Œìœ„ ‘ë³´ì´ëŠ” 싸움’입니다. 사실 우리는 ì´ ë³´ì´ëŠ” ì‹¸ì›€ì— ì§‘ì¤‘í•˜ë©° 세ìƒì„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ì´ ì„¸ìƒì€ ì´ë ‡ê²Œ ‘ë³´ì´ëŠ” 싸움’만 있는 ê²ƒì´ ì•„ë‹ˆë¼, ‘ë³´ì´ì§€ 않는 싸움’ì´ ìžˆìŠµë‹ˆë‹¤. 오늘 ì´ìŠ¤ë¼ì—˜ê³¼ ì• êµ½ êµ°ì‚¬ë“¤ê³¼ì˜ ì‹¸ì›€ ë§ê³  오늘 ì´ í™í•´ì˜ 사건 ì†ì— ë³´ì´ì§€ 않는 ì‹¸ì›€ì€ ë¬´ì—‡ì¼ê¹Œìš”? ‘ì• êµ½ 대 ì´ìŠ¤ë¼ì—˜’ì´ ì•„ë‹ˆë¼, ‘ì• êµ½ 대 여호와 하나님’ì˜ ì‹¸ì›€ìž…ë‹ˆë‹¤. 13ì ˆ, 14ì ˆì— ì´ ë§ì”€ì„ ë³´ë©´ ì•Œ 수 있습니다. “너í¬ëŠ” 가만히 있으ë¼.” 우리가 언제 ì´ ë§ì„ 합니까? 능력 있는 ì‚¬ëžŒì´ ëŠ¥ë ¥ 없는 사람ì—게, ë‚˜ì´ ë§Žì€ ì‚¬ëžŒì´ ë‚˜ì´ ì–´ë¦° 사람ì—게 보호하며 하는 ë§ìž…니다. ë‚´ê°€ 대신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너í¬ëŠ” 가만히 있으ë¼.” ì´ ë§ì€ ê²°êµ­ ì´ ì‹¸ì›€ì´ í•˜ë‚˜ë‹˜ì˜ ì‹¸ì›€ì´ë¼ëŠ”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ì´ìŠ¤ë¼ì—˜ì„ 대신하여 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ë°, ì´ ì‹¸ì›€ì´ ‘하나님 대 ì• êµ½ì˜ ì‹¸ì›€’ì´ë¼ëŠ” ê²ƒì„ ëª¨ë¥´ëŠ” ì‚¬ëžŒë“¤ì´ ìžˆìŠµë‹ˆë‹¤. ì´ìŠ¤ë¼ì—˜ ë°±ì„±ë“¤ì´ ëª¨ë¦…ë‹ˆë‹¤. 알기는 아는ë°, 알았다 몰ëžë‹¤ 합니다. 그들ì—게 있는 ‘ë‘려움’ì„ ë³´ë©´ ì•Œ 수 있습니다. 왜 ë‘려워할까요? ê·¸ ì‹¸ì›€ì´ ìžê¸°ë“¤ì´ 하는 싸움ì´ë¼ ìƒê°í•˜ê¸° ë•Œë¬¸ì— ë‘려운 것입니다. ë„대체 ê·¸ë“¤ì€ ë¬´ì—‡ì„ ë‘려워하고 있는 것ì¼ê¹Œìš”? ë‘ë ¤ì›€ì˜ ì‹¤ì²´ê°€ 무엇ì¼ê¹Œìš”? 10ì ˆì— ë³´ë‹ˆê¹Œ, “ì• êµ½ ì‚¬ëžŒë“¤ì´ ìžê¸°ë“¤ ë’¤ì— ì´ë¥¸ì§€ë¼. ì´ìŠ¤ë¼ì—˜ ìžì†ì´ 심히 ë‘려워하여”ë¼ê³  ë§í•©ë‹ˆë‹¤. 그리고 12ì ˆë„ “우리를 내버려ë‘ë¼. 우리가 ì• êµ½ ì‚¬ëžŒì„ ì„¬ê¸¸ 것ì´ë¼ 하지 아니하ë”ëƒ. ì• êµ½ ì‚¬ëžŒì„ ì„¬ê¸°ëŠ” ê²ƒì´ ê´‘ì•¼ì—ì„œ 죽는 것보다 ë‚«ê² ë…¸ë¼.” ì´ìŠ¤ë¼ì—˜ ë°±ì„±ì´ ë‘려워한 ê²ƒì€ ë°”ë¡œ ‘ì• êµ½ 사람’입니다. 어쩌면 당연한 것ì´ì£ . 노예가 ê·¸ 주ì¸ì„ ë‘려워하는 것ì´. ë” ë‘ë ¤ì› ë˜ ê²ƒì€ ‘ì• êµ½ 군사’들ì´ì—ˆì„ 것입니다. ê·¸ë“¤ì´ ì±„ì°ì„ 들고 있는 모습, ì¹¼ì„ ë“¤ê³  있는 ëª¨ìŠµì— ì•„ë§ˆ 트ë¼ìš°ë§ˆê°€ ìžˆì—ˆì„ ê²ƒìž…ë‹ˆë‹¤. ë”구나 ê·¸ êµ°ì‚¬ë“¤ì€ ê·¸ë“¤ì„ ì£½ì´ê² ë‹¤ê³  ë§ì„ 타고 달려들고 있는, ë…기 í’ˆì€ êµ°ëŒ€ì˜€ìŠµë‹ˆë‹¤. 당연히 ë‘ë ¤ì› ì„ ê²ƒìž…ë‹ˆë‹¤. 왜요? ê·¸ ì‹¸ì›€ì´ ‘애굽과 ìžê¸°ë“¤(ì´ìŠ¤ë¼ì—˜)ì˜ ì‹¸ì›€’ì´ë¼ê³  여겼기 때문입니다.

ë°˜ë©´ì— ë‘려워하는 ì´ ì´ìŠ¤ë¼ì—˜ 백성과 반대로, ë‘려워야 í•˜ëŠ”ë° ë‘ë ¤ì›€ì´ ì—†ì–´ ë³´ì´ëŠ” ì‚¬ëžŒì´ ë‚˜ì˜µë‹ˆë‹¤. ì•„ì´ëŸ¬ë‹ˆì»¬í•˜ê²Œë„ ê·¸ê²ƒì€ ‘바로’입니다. 지금 ì—´ 가지 ìž¬ì•™ì„ ë§žì•„ ê·¸ì˜ ë‚˜ë¼ëŠ” 그야ë§ë¡œ ‘쑥대밭’ì´ ë˜ì—ˆìŠµë‹ˆë‹¤. 나ë¼ë¿ 아니ë¼, ê·¸ì˜ ê°€ì •ë„ ìžê¸° í°ì•„들까지 죽으면서 ‘í’비박산’ì´ ë‚¬ìŠµë‹ˆë‹¤. 그만하면 하나님께 항복할 ë§Œë„ í•©ë‹ˆë‹¤. 아니, ì‚¬ì‹¤ì€ í•­ë³µí–ˆì—ˆì£ . ê·¸ëŸ°ë° ë‹¤ì‹œ ë¤ë²¼ë“¤ê³  있습니다. 분명히 ì—´ 가지 ìž¬ì•™ì„ ë‹¹í•˜ë©´ì„œ ê·¸ë„ ì•Œì•˜ìŠµë‹ˆë‹¤. ì´ ì‹¸ì›€ì´ ì´ìŠ¤ë¼ì—˜ê³¼ì˜ ì‹¸ì›€ì´ ì•„ë‹ˆë¼, í•˜ë‚˜ë‹˜ê³¼ì˜ ì‹¸ì›€ì´ë¼ëŠ” ê²ƒì„ ë§ì´ì£ . ê·¸ëŸ°ë° ê·¸ ì‚¬ì‹¤ì„ ê¸ˆì„¸ 까먹고 ë˜ë‹¤ì‹œ ë¤ë²¼ë“¤ê³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ê·¸ì˜ ìž…ìž¥ì—서는 ì´ë ‡ìŠµë‹ˆë‹¤. ì‹¤ì€ ì§€ê¸ˆê¹Œì§€ 그가 ê²ªì€ ì‹¸ì›€ì€ ë³´ì´ì§€ 않는 ê²ƒë“¤ê³¼ì˜ ì‹¸ì›€ì´ì—ˆìŠµë‹ˆë‹¤. ì ì´ 있는ë°, ì ì´ 안 보입니다. 그가 컨트롤할 수 있는 ê²ƒë“¤ê³¼ì˜ ì‹¸ì›€ì´ ì•„ë‹ˆì—ˆë˜ ê²ƒìž…ë‹ˆë‹¤. 하늘ì—ì„œ ìš°ë°•ì´ ë–¨ì–´ì§€ê³ , ê°œêµ¬ë¦¬ë“¤ì´ ì˜¬ë¼ì˜¤ê³ , í‘ì•”ì´ ë®ì´ê³ .... 그가 컨트롤할 수 있는 ê²ƒë“¤ì´ ì•„ë‹ˆì—ˆìŠµë‹ˆë‹¤. ê·¸ëŸ°ë° ì´ë²ˆì—는 다릅니다. ì ì´ ëˆˆì— ë³´ìž…ë‹ˆë‹¤. ë„ë§ê°€ëŠ” ì´ìŠ¤ë¼ì—˜ ë°±ì„±ì´ ë³´ìž…ë‹ˆë‹¤. 그리고 어떻게 ì‹¸ìš¸ì§€ë„ í™˜ížˆ 보입니다. ê·¸ì—게는 ì¹¼ì´ ìžˆê³ , 병거가 있고, 막강한 êµ°ì‚¬ë ¥ì´ ìžˆìŠµë‹ˆë‹¤. 그러니 ì´ë²ˆì—” 기필코 ì´ê¸¸ 수 있겠다는 ìƒê°ì´ 들지 않았겠습니까? ì´ê²ƒì´ 그가 내린 ë˜ í•œ ë²ˆì˜ ì˜¤íŒìž…니다. 그는 ê·¸ ì‹¸ì›€ì´ í•˜ë‚˜ë‹˜ê³¼ì˜ ì‹¸ì›€ì´ë¼ëŠ” ê²ƒì„ ë˜ ìžŠì€ ê²ƒìž…ë‹ˆë‹¤. ì´ìŠ¤ë¼ì—˜ì€ ë‘려워했습니다. í•˜ë‚˜ë‹˜ì´ ê·¸ë“¤ì„ ìœ„í•´ ì‹¸ìš°ì‹œëŠ”ë° ìžê¸°ë“¤ì´ 싸우고 있다고 ìƒê°í–ˆê¸° 때문입니다. 반면 바로는 ë‘ë ¤ì›€ì„ ìžŠì—ˆìŠµë‹ˆë‹¤. ë³´ì´ëŠ” ì´ìŠ¤ë¼ì—˜ê³¼ 싸운다 ìƒê°í–ˆê¸° 때문입니다.

ë³´ì´ì§€ 않는 싸움: 나 vs 하나님

í•˜ë‚˜ë‹˜ì€ ë°±ì„±ë“¤ì´ ë‘려워하기를 ë°”ë¼ì§€ 않았습니다. 그래서 ë‘려워하고 있는 ì´ìŠ¤ë¼ì—˜ ë°±ì„±ì„ í–¥í•´ ì´ ë§ì”€ì„ 주신 것입니다. “ë‘려워 ë§ê³  가만히 있으ë¼.” ê·¸ëŸ°ë° ‘ë‘려워 ë§ë¼’는 ë§ì”€ì€ ì´í•´ë˜ëŠ”ë° ‘가만히 있으뼒는 ë§ì€ 사실 어려운 ì¼ìž…니다. 가만히 있으ë¼ëŠ” ê²ƒì´ ê°€ìž¥ 쉬운 ì¼ ê°™ì§€ë§Œ, 가만히 있는 것처럼 어려운 ì¼ë„ 없습니다. ë‘려울 때는 소리ë¼ë„ 지르고 누군가ì—게 호소해야 ëœ ë‘렵습니다. 왜 ì• êµ½ê³¼ì˜ ì‹¸ì›€ì„ ì„ í¬í•˜ì‹œë©´ì„œ 그들ì—게 가만히 있으ë¼ê³  하실까요? 사실 ì´ê²ƒì´ ë³¸ë¬¸ì— ë‚˜íƒ€ë‚œ 진짜 “ë³´ì´ì§€ 않는 싸움”입니다. 지금 í™í•´ì—ì„œ 벌어지고 있는 ì‹¸ì›€ì€ ‘ì• êµ½ 대 ì´ìŠ¤ë¼ì—˜’ì˜ ì‹¸ì›€ë„ ì•„ë‹ˆê³ , 심지어 ‘ì• êµ½ 대 í•˜ë‚˜ë‹˜ì˜ ì‹¸ì›€’ë„ ì•„ë‹™ë‹ˆë‹¤. ê·¸ê²ƒì€ ë‹¤ë¦„ì•„ë‹Œ ‘ì´ìŠ¤ë¼ì—˜ 대 í•˜ë‚˜ë‹˜ê³¼ì˜ ì‹¸ì›€’입니다. 지금 í•˜ë‚˜ë‹˜ì€ ì´ìŠ¤ë¼ì—˜ 백성과 싸우고 계시는 것입니다. 겉으로 ë³´ê¸°ì— í•˜ë‚˜ë‹˜ê»˜ì„œ 바로를 치는 싸움 같습니다. 하지만 그건 싸움ì´ë¼ê³ ë„ í•  수 없는, 눈 ê°ê³ ë„ í•  수 있는 싸움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진짜 싸우고 계신 ì‹¸ì›€ì€ ‘바로’ê°€ 아니ë¼, ì´ìŠ¤ë¼ì—˜ê³¼ì˜ 싸움, 즉 ‘나’ì™€ì˜ ì‹¸ì›€ì¸ ê²ƒìž…ë‹ˆë‹¤. ì´ ì‹¸ì›€ì€ í™í•´ì˜ 싸움ì—ì„œ ë나는 ì‹¸ì›€ë„ ì•„ë‹ˆê³ , 광야ìƒí™œ ë‚´ë‚´ ì´ì–´ì§€ëŠ” 싸움입니다. 왜ëƒí•˜ë©´ 하나님께서는 모든 ê²ƒì„ ë°”ê¾¸ì‹¤ 수 있지만, ìš°ë¦¬ì˜ ë§ˆìŒë§Œì€ 억지로 바꾸는 ë¶„ì´ ì•„ë‹ˆê¸° 때문입니다. ë°”ë¡œì˜ ë§ˆìŒë³´ë‹¤ ë” ê°•í…í•œ ê²ƒì´ ë°”ë¡œ 우리 마ìŒì´ê¸°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ì—게 “가만히 있으뼔 하신 것입니다. ìˆœì¢…ì„ ê°€ë¥´ì¹˜ì‹œë©° 그들과 싸우고 계신 것입니다. 왜 물위를 걷게 하지 않으시고 물 아래 ë•…ì„ ë°Ÿì•„ 걷게 하셨ì„까요? 물위를 걸었다면 ì´ êµë§Œí•œ ë°±ì„±ì´ ê·¸ê²ƒì„ ìžê¸°ìžëž‘으로 ì‚¼ì•˜ì„ ê²ƒìž…ë‹ˆë‹¤. ‘우리가 물위를 걸었노뼒고 ìžëž‘í•  것입니다. 하지만 ê·¸ë“¤ì€ ë°”ë‹¤ë°‘ì„ ê±¸ì—ˆì„ ë¿ìž…니다. 바다 ë°‘ì„ ë§ˆë¥¸ ë•… ê±·ë“¯ì´ í†µê³¼í•˜ë©° 그들 ìž…ì—ì„œ 저절로 í„°ì ¸ ë‚˜ì™”ë˜ ë§ì€, ‘ì•„, ì´ ì¼ì€ í•˜ë‚˜ë‹˜ì´ í•˜ì…¨ì–´.’ ì´ ë§ë°–ì— í•  수 ì—†ì—ˆì„ ê²ƒìž…ë‹ˆë‹¤.

지금 ì—¬ëŸ¬ë¶„ì´ ë‹¹í•˜ê³  있는 ì‹¸ì›€ì€ ë‚˜ì™€ XXì™€ì˜ ì‹¸ì›€ë„ ì•„ë‹ˆê³ , 나와 ì–´ë–¤ ìƒí™©ê³¼ì˜ ì‹¸ì›€ë„ ì•„ë‹™ë‹ˆë‹¤. ì˜¤ì§ ë‚˜ì™€ í•˜ë‚˜ë‹˜ê³¼ì˜ ì‹¸ì›€ìž…ë‹ˆë‹¤. 하나님께서 나를 고치고 계시고 가르치고 계시는 것입니다. ìš”ë‚˜ì„œì˜ ì£¼ì œëŠ” 니ëŠì›¨ë¥¼ 고치시는 í•˜ë‚˜ë‹˜ì´ ì•„ë‹ˆë¼, 요나를 고치시는 하나님입니다.(ìš”~나) ì¶œì• êµ½ê¸°ì˜ ì£¼ì œëŠ” ‘(애굽과) 바로와 싸우시는 하나님’ì´ ì•„ë‹ˆë¼, ‘ì´ìŠ¤ë¼ì—˜ 백성과 싸우시는 하나님’ì´ì‹­ë‹ˆë‹¤.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등 4ë³µìŒì„œì˜ 주제는 ì£¼ë‹˜ì´ ë°”ë¦¬ìƒˆì¸ê³¼ 종êµì§€ë„ìžë“¤ê³¼ 싸우시는 얘기가 아니ë¼, ê²°êµ­ ì£¼ë‹˜ì´ ë¯¿ìŒ ì—†ëŠ” ì œìžë“¤(곧 우리들)ê³¼ 싸우시는 얘기ë¼ëŠ” 것입니다. í•˜ë‚˜ë‹˜ì€ ì„¸ìƒì„ 고치기 ì „ì— êµíšŒë¥¼ 고치고 계십니다. í•˜ë‚˜ë‹˜ì€ ë‚˜ì™€ 싸우고 계십니다. 나를 고치고 계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32장, ì•¼ê³±ì´ í•˜ë‚˜ë‹˜ê³¼ 밤새ë„ë¡ ì”¨ë¦„í•˜ëŠ” ìž¥ë©´ì„ ê¸°ì–µí•´ 보십시오. 왜 ì•¼ê³±ì€ ì•„ë¬´ë„ ì—†ëŠ” 광야ì—ì„œ 하나님과 싸워야 í–ˆì„까요? 깨지지 않으려는 ìžì™€ 깨뜨리려 하는 ìžê°€ 맞붙었기 때문입니다. 줄곧 ‘ì†ì´ëŠ” ìž’ì˜ ì‚¶ì„ ì‚´ì•˜ë˜ ‘고집스런’ 야곱과 ê·¸ ê³ ì§‘ì„ ë§ˆì¹¨ë‚´ 부숴 버리고야 ë§ê² ë‹¤ê³  ‘고집하신’ í•˜ë‚˜ë‹˜ì´ ì‹¸ìš°ê³  계시기 때문입니다. ê²°êµ­ ì•¼ê³±ì˜ í™˜ë„뼈가 부러졌다고 했습니다. ì•¼ê³±ì´ ê¹¨ì§€ì§€ 않으려고 저항했기 때문입니다. í•˜ë‚˜ë‹˜ì€ ê·¸ì—게 새 ì´ë¦„ì„ ì£¼ì‹­ë‹ˆë‹¤. ê·¸ ì´ë¦„ì€ ‘ì´ìŠ¤ë¼ì—˜’, ‘하나님과 싸워 ì´ê²¼ë‹¤’는 뜻입니다. ì´ìƒí•˜ì£ ? 허벅지가 부러진 ìª½ì€ ë¶„ëª…ížˆ 야곱ì¸ë° 왜 ì•¼ê³±ì´ í•˜ë‚˜ë‹˜ì„ ì´ê²¼ë‹¤ ë§ì”€í•˜ì‹¤ê¹Œìš”? 진짜 ì´ê¹€ì€ ë‚´ê°€ 죽는 것ì´ë¼ëŠ” ì˜ë¯¸ê°€ ì•„ë‹ê¹Œìš”? To die is gain! 진짜 ì´ê¹€ì€ ë‚´ê°€ 부서지는 것입니다. 그걸 ê¸°ì–´ì´ ëëë‚´ í¬ê¸°í•˜ì§€ ì•Šê³  야곱ì—게 가르치고 계시는 것입니다. 처ìŒì— ì•¼ê³±ì€ ê·¸ ì‹¸ì›€ì´ ë‹¤ì‹œ 만나야 í•  ìžê¸° í˜•ê³¼ì˜ ì‹¸ì›€ì´ë¼ê³  ìƒê°í–ˆìŠµë‹ˆë‹¤. 하지만 í•˜ë‚˜ë‹˜ì€ ‘아니야, ì´ ì‹¸ì›€ì€ ë‚˜ì™€ ë„ˆì˜ ì‹¸ì›€ì´ì•¼’ ë¼ê³  ê°€ë¥´ì³ ì£¼ì‹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ê·¸ ì•ˆì— ìžˆëŠ” ‘사람(형 ì—ì„œ)ì— ëŒ€í•œ ë‘려움’ì„ ë‚´ë ¤ë†“ê²Œ 하신 것입니다. 우리 모ë‘ì—게 ‘ì–복강’ì´ ìžˆìŠµë‹ˆë‹¤. 하나님과 밤새 싸워야 í•  ì–ë³µê°•ì´ ìžˆìŠµë‹ˆë‹¤. ‘ê·¸ê²ƒì„ ë‚´ë ¤ë†“ìœ¼ë¼’ê³  하시는 í•˜ë‚˜ë‹˜ì˜ ìš”êµ¬ì™€ ‘ê·¸ê²ƒì´ ë„대체 무엇ì´ëƒ’ê³  ‘ê·¸ê²ƒì„ ë‚´ë ¤ë†“ì§€ 않겠다’ê³  싸우는 ‘ì–복강’ì´ ìžˆìŠµë‹ˆë‹¤. ê·¸ê²ƒì´ ë¬´ì—‡ì¼ê¹Œìš”? ì•¼ê³±ì´ ì–복강ì—ì„œ 붙잡고 있었ë˜, 오늘 ì´ìŠ¤ë¼ì—˜ì´ 붙잡고 있었ë˜, 그리고 오늘 ë‚´ê°€ ‘꽉’ 붙잡고 있는 ê·¸ê²ƒì€ ë¬´ì—‡ì¼ê¹Œìš”? ê·¸ê²ƒì€ ë°”ë¡œ ë‘려움입니다. ì‚¬ëžŒì— ëŒ€í•œ ë‘려움입니다. 형 ì—서가 ë‘려운 것ì´ê³ ìš”, ì• êµ½ 사람 (바로)ì´ ë‘려운 것입니다. 우리는 ì‚¬ëžŒì„ ë‘려워하고 있습니다.

ë‘ë ¤ì›€ì´ ë‘ë ¤ì›€ì„ ì´ê¸´ë‹¤!

ì´ì œ í•˜ë‚˜ë‹˜ì€ ì´ìŠ¤ë¼ì—˜ì˜ ê·¸ ë‘ë ¤ì›€ì„ ì¹˜ìœ í•˜ì‹­ë‹ˆë‹¤. 31ì ˆ ë§ì”€ìž…니다. í™í•´ ì‚¬ê±´ì˜ ê²°ë¡ ìž…ë‹ˆë‹¤. “ì´ìŠ¤ë¼ì—˜ì´ 여호와께서 ì• êµ½ 사람들ì—게 행하신 ê·¸ í° ëŠ¥ë ¥ì„ ë³´ì•˜ìœ¼ë¯€ë¡œ ë°±ì„±ì´ ì—¬í˜¸ì™€ë¥¼ 경외하며 여호와와 ê·¸ì˜ ì¢… 모세를 믿었ë”ë¼.” í•˜ë‚˜ë‹˜ì„ ê²½ì™¸í•˜ê²Œ(ë‘려워하게) ë˜ì—ˆë‹¤ê³  했습니다. ì‚¬ëžŒì— ëŒ€í•œ ë‘려움 대신 í•˜ë‚˜ë‹˜ì— ëŒ€í•œ ë‘려움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무슨 ë§ì¼ê¹Œìš”? í•˜ë‚˜ë‹˜ì„ ë‘려워하게 ë˜ë©´ ì‚¬ëžŒì„ ë‘려워하지 않게 ëœë‹¤ëŠ” 것입니다. 여러분, 진짜 ë‘려운 ê²ƒì´ ì˜¤ë©´ ìž‘ì€ ë‘ë ¤ì›€ì€ ì‚¬ë¼ì§‘니다. ì´ê²ƒì´ ì‹ ì•™ì˜ ì—­ì„¤ìž…ë‹ˆë‹¤. “ëª¸ì€ ì£½ì—¬ë„ ì˜í˜¼ì€ 능히 죽ì´ì§€ 못하는 ìžë“¤ì„ ë‘려워하지 ë§ê³  ì˜¤ì§ ëª¸ê³¼ ì˜í˜¼ì„ 능히 ì§€ì˜¥ì— ë©¸í•˜ì‹¤ 수 있는 ì´ë¥¼ ë‘려워하뼔(마10:28) 세ìƒì€ 기ê»í•´ì•¼ ìš°ë¦¬ì˜ ëª¸ì„ ì£½ì´ê² ì§€ë§Œ, í•˜ë‚˜ë‹˜ì€ ìš°ë¦¬ì˜ ëª¸ê³¼ ì˜í˜¼ì„ 멸하실 수 있는 분ì´ê¸° 때문입니다. 지금 ë¬´ì—‡ì„ ë‘려워하십니까? ê·¸ ì–´ë–¤ ê²ƒë„ í•˜ë‚˜ë‹˜ë³´ë‹¤ ë‘려운 ë¶„ì€ ì—†ìŠµë‹ˆë‹¤. 진정 í•˜ë‚˜ë‹˜ë§Œì„ ë‘려워하는 ê²ƒì´ ì§€í˜œìž…ë‹ˆë‹¤.

오늘 í™í•´ì˜ ê¸°ì  ì‚¬ê±´ì„ í†µí•´ 보여주시는 ì‹¸ì›€ì´ ìžˆìŠµë‹ˆë‹¤. ê·¸ê²ƒì€ ‘ì• êµ½ 대 ì´ìŠ¤ë¼ì—˜’, í˜¹ì€ ‘ì• êµ½ 대 í•˜ë‚˜ë‹˜ê³¼ì˜ ì‹¸ì›€’입니다. 하지만 그건 ë³´ì´ëŠ” 싸움입니다. 우리가 믿ìŒì˜ ëˆˆì„ ëœ¨ê³  ë³´ë©´, í™í•´ì—ì„œ 벌어진 ë˜ í•˜ë‚˜ì˜ ì‹¸ì›€ì„ ë³´ê²Œ ë©ë‹ˆë‹¤. ê·¸ê²ƒì€ ‘하나님과 ì´ìŠ¤ë¼ì—˜ê³¼ì˜ 싸움’, ‘하나님과 ë‚˜ì™€ì˜ ì‹¸ì›€’입니다. ê·¸ ì‹¸ì›€ì´ ì •ë§ë¡œ ì´ í™í•´ ì‚¬ê±´ì„ í†µí•´ ë³´ì—¬ì£¼ì‹œê³ ìž í•˜ì‹œëŠ” “ë³´ì´ì§€ 않는 싸움”입니다. ê·¸ ì‹¸ì›€ì€ ë¬´ì—‡ì„ ì§„ì§œë¡œ ë‘려워해야 하는지를 알게 하는 싸움입니다. 우리는 í•˜ë‚˜ë‹˜ì„ ì‚°ì‹ ë ¹ì²˜ëŸ¼ ë‘려워하는 ê²ƒì´ ì•„ë‹™ë‹ˆë‹¤. ê·¸ë¶„ì„ ì‚¬ëž‘í•¨ìœ¼ë¡œ ë‘려워합니다. 그래서 ê·¸ë¶„ì„ ‘경외’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ì‚¬ëž‘ì€ ëª¨ë“  ë‘ë ¤ì›€ì„ ë‚´ì–´ 쫓습니다. ê·¸ë¶„ì„ ì‚¬ëž‘í•˜ë©´, ë‚´ ì•ˆì˜ ëª¨ë“  ë‘ë ¤ì›€ì€ ë– ë‚˜ê°€ê²Œ ë˜ì–´ 있습니다. 하나님만 ë‘려워하고 하나님만 사랑하는 것, ì´ê²ƒì´ ìš°ë¦¬ì˜ ë³´ì´ì§€ 않는 싸움입니다.

colippastor@gmail.com

02.10.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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