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은 교리교육과 신학적 논쟁방어로 생겨

Q: 우리가 주일마다 고백하는 사도신경은 왜 생겨났으며 누가 기록한 것인지요? 그 유래와 저자를 알고 싶습니다.

-토랜스 장차연 권사

 

A: 좋은 질문입니다. 초대교회나 현대교회는 다 같은 고백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교회공동체에 입회한다는 것은 자신의 입으로 그 믿음을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역사적으로 초대 그리스도의 교회가 신조를 생성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오스카 쿨만이란 사람의 ‘초대 크리스천 고백’이란 책을 보면 “첫째는 개종 또는 회심을 통해 그리스도교에 입교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나면서 교회는 세례를 위한 준비교육이 필요해 세례 받을 자의 교리 교육용으로 신조가 사용되었다. 둘째는 예배와 예전가운데 믿음의 엄숙한 표현들이 요구되는 예전적인 신조 문언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셋째는 이교도와의 신앙적이며 신학적인 논쟁들이 발생하면서 신앙을 방어할 필요가 생겨났다. 다양한 상황들은 다양한 신조적 문언들을 요구하게 되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최초의 신조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고 베드로가 고백한 것처럼 그리스도 중심의 고백으로 시작되었으나 차츰 삼위일체를 믿는다는 고백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점차적으로 다른 항목들이 추가되고 확대되어 여러 형태의 신조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필립 샤프란 사람이 쓴 신조학을 보면 “4세기 이후에는 하나의 형태로 굳어져 서방교회에서는 “사도신경”으로 동방교회에서는 “니케아 신조”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필립 샤프는 이어 초대교회의 교리적 진술을 에큐메니칼 신조라고 하는데 그 신조에는 “사도신경, 니케아신조, 아다나시우스 신조, 이 3가지가 있는데 가장 간단한 것이 사도신경이요 다른 두 신조는 사도신경을 발전시키거나 해설한 것이다. 니케아 신조는 아리안(Arian) 이단에 맞서서 사도신경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신성 교리를 보다 분명하고 강력하게 확대시켰고 아다나시우스 신조는 니케아 회의 이후에 일어난 여러 이단들과 맞서 사도신경의 삼위일체 교리와 그리스도의 품위에 관한 교리 전체를 더욱 확장시킨 것이다”라고 그 책에서 기술했습니다.    필립 샤프는 신조학이란 책에서 “사도신경은 저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제4세기 이전에 서방교회에서 만들어졌다. 사도신경은 사도의 친 저작이 아니라 교회가 영감을 받아 만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루피누스(Rufinus, 345-419 AD)는 사도신경은 오순절에 사도들이 성령충만을 받은 후에 기독교 교리를 사도들이 각각 한 구절씩 고백하며 합작(Symbolum Apostolicum)한 것이라며 사도신조의 저자성을 12사도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12사도들이 건네준 글귀들(Tradunt majores)을 정리하여 사도신조라 칭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도신경(신조)의 정확한 기원에 대해서 확정짓는 것은 의견이 다양하게 나뉩니다.  사도신경은 처음에는 세례를 위한 신앙고백으로 사용되다가 나중에는 점차 공예배 시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은 그리스도교 정통 신앙의 규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도들과 속사도, 교부들 그리고 정통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믿음을 하나의 텍스트, 문서화하도록 종용했습니다. 그래서 주일마다 예배에서 각자가 사도신경을 고백함으로 자신과 공동체의 신앙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빛과 소금의 교회 이정현 목사 310)749-0577 /   Email: TLspc0316@gmail.com

02.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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