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모두가 예민합니다. 사소한 일에도 큰 갈등이 생깁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갈등’의 어원이 “왼쪽으로 감아 자라나는 칡과 오른쪽으로 감아 자라나는 등나무가 서로 얽히고설킨 모습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또한 동아새국어사전은 ‘갈등’을 ‘정신 내부에서 일어나는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욕구가 충돌하는 상태’라고 정의합니다. 이처럼 ‘갈등’이란 서로의 견해나 의견의 차이로 얽히고 설켜서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불화입니다.
우리는 주로 언제 갈등을 겪나요? 자기 주장이 강할 때 갈등을 겪습니다.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합니다. 심하면 묵살해 버리기도 합니다. 따라서 주위의 사람들의 반감을 일으킵니다. 이기심 때문에도 갈등을 겪습니다. 스스로 이기심을 다스리지 못하면 이기심이 나를 다스립니다. 이기심은 나에게 이득이 되는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는 나와 남 모두에게 피해를 줍니다. 이기심이 발동되면 그때부터는 의리나 우정은 사라집니다. 이기심이 전염병처럼 퍼져서 주위의 모두가 이기적이 됩니다.
탐욕 때문에 갈등을 겪습니다. 손톱이 길면 때가 끼는 것처럼 탐욕이 자라면 내 영혼에 때가 낍니다. 탐욕을 다스리지 못하면 마음에 평안을 잃습니다. 체면과 사랑과 우정도 모두 잃습니다.
가족끼리 싸우고, 형제끼리 소송합니다. 결국은 돈 잃고 가족 잃고 건강 잃고 영혼이 병듭니다. 하지만 때가 낀 손톱을 깎으면 개운한 것처럼 내 안의 탐욕을 잘라내면 내 영혼이 맑아집니다.
하나님께서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롬12:18)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갈등이 아니라 화목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갈등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첫째로 서로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웃의 것을 탐하는 이유는 이웃을 귀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웃을 귀하게 여기면 먼저 배려합니다. 끝까지 인내하며 섬깁니다. 갈등이 생겨도 형제 사랑으로 그 갈등을 해결합니다.
둘째로 관용을 베풀어야 합니다. 아브람의 종들과 조카 롯의 종들이 자신들의 가축에게 더 좋은 풀과 물을 공급하기 위해 다투었습니다. 사실 아브람이 롯보다 가축이 많았습니다. 그가 나이나 연륜 그리고 지위를 보더라도 롯보다는 더 좋은 목초지를 차지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먼저 롯에게 더 좋은 목초지를 양보했습니다. 관용을 베풀었습니다. 이기적인 롯에게 끝까지 너그럽게 대했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의 사랑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기적인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움직이는 능력, 이기심을 회개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갈등이 일어날 때는 하나님의 사랑을 품고 그 사랑으로 상대를 대하면 갈등을 멈출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품으면 내가 손해 보는 그 상황에서도 갈등을 중단하고 화목할 수 있습니다. 제한된 목초지를 놓고 갈등이 생겼을 때, 롯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입장만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익만을 구하는 이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양손으로 움켜쥐는 인생이었습니다. 그에게는 관용도 형제 사랑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람은 끝까지 하나님의 편에 서서 갈등의 문제를 풀어나갔습니다. 먼저 자기의 권리를 내려놓았습니다. 먼저 양보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큰 복을 주셨습니다. 롯은 자신이 선택한 것만 소유했지만 아브람은 눈으로 바라보는 대로 소유하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무엇보다도 아브람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되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성도 여러분, 갈등을 겪고 있습니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요?’(WWJD)
08.15.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