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어느 교회로부터 여전도회 헌신예배 때 말씀을 전해줄 수 있는지 연락이 왔다. 갈 수 있다는 답변에 일주일 안으로 설교제목, 본문을 보내달라고 했다. 평소에 기본 설교가 준비되어 있는 목사가 아니어서 갑자기 무슨 설교를 해야 하나 부담이 되었다. 여전도회 헌신예배라 해서 주님을 섬긴 두 자매의 이야기가 나오는 누가복음 10장 마르다와 마리아를 주제로 “꼭 필요한 한 가지”로 제목을 정했다. 바쁜 일정 속에서 틈틈이 아침 묵상시간과 밤 시간을 이용해서 나름대로 열심히 설교준비를 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가 등장하는 세 에피소드를 순서대로 살펴보기도 하고 각 복음서의 기록을 비교해보기도 하였다. 원고를 정리하고 어느 정도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설교하기로 한 금요일에 너무 많은 약속이 잡히게 되었다. 이틀 전부터 갑자기 옆구리가 아파서 병원에 연락을 했더니 헌신예배가 있는 금요일 아침에 병원에 오라고 했다. 사역에 관계된 일로 우리교회 부목사님 두 분과 점심식사를 하기로 미리 정한 날도 마침 그 날이었다. 오래 못 만난 친구 사모님이 설교를 하러가기로 한 교회부근에 살아서 어차피 저녁을 먹어야 하니까 교회로 가기 전에 같이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금요일 아침 병원으로 떠나려 하는데 한국에서 오신 제자 목사님이 연락이 와서 혹시 점심시간에 만날 수 있는지 물어보셨다. 점심은 이미 약속이 있으니 설교할 교회 가까이에서 오후에 차를 마시자고 하였다. 그러다보니 아침부터 저녁 설교할 때까지 볼 일이 네 개나 잡힌 것이었다. 원래 계획은 점심식사 후 교회부근으로 가서 몇 시간 동안 커피샵에서 조용히 설교할 내용에 대한 마지막 터치를 하려고 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생긴 약속들로 전혀 조용한 시간을 못 갖은 채 교회로 향했다.
준비한 설교내용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로서 내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마르다가 예수님을 섬기다가 분주함 때문에 마음이 나뉘어서 염려와 근심에 빠지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요한복음 11장의 기록을 보면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라는 마르다의 신앙고백을 읽을 수 있다. 베드로의 예수님을 향한 위대한 신앙고백과 매우 흡사한 고백을 한 마르다는 믿음의 여인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다가 예수님께 불만을 토로하게 된 것은 마르다의 마음이 주님을 섬기느라 너무 분주해졌기 때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분주함이 마르다의 마음을 어지럽게 해서 기쁨으로 섬기는 대신 걱정과 근심을 하게 된 것을 지적하셨다. 그리고 주님을 섬기는데 필요한 것은 단 한 가지, 즉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임을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시편 27:4절에 나오는 다윗의 고백처럼 평생에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여호와를 묵상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꼭 필요한 한 가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설교의 요지였다. 적용으로는 우리의 삶 속에서 주님을 사모하며, 주님과 대화하며, 주님을 묵상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를 생각해보자고 했고 주님의 일보다 주님의 임재를 더 추구하는 여전도회 회원들이 되기를 권면했다.
설교를 마친 후 마침 타주에 갔다가 오는 딸을 예배 후에 픽업하기로 했었는데 비행기가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고 메시지가 와 있어서 친교도 못하고 서둘러 공항으로 떠나야 했다. 급하게 교회를 나오려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목사님들이 설교를 마치면 설교가 잘 전달되었는지 아니면 그야말로 죽을 쑤었는지 스스로 느낀다고 들었는데 공항으로 운전을 하면서 내가 설교를 죽을 쑨 것을 느꼈다. 계획했던 마지막 조용한 시간 없이 설교를 해야 했던 것에 대한 부담 때문에 스스로가 만족을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죽을 쑨 것인지 잘 모른 채 잠자리에 들었다.
늘 사람들 앞에 설 때마다 “하나님, 한 사람만 은혜를 받아도 쓰임 받은 줄 알고 감사하겠습니다”라는 마음으로 서지만 강단을 나누어주신 목사님께 죄송한 마음도 들었다. 그 다음날 아침까지도 마음이 찜찜해서 왜 죽을 쑤었을까 생각하다가 기도를 하는데 부드럽게 마르다를 꾸짖었던 예수님이 나에게도 말씀하셨다. “명혜야, 명혜야. 네가 어제 너무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하였다. 그러나 네가 설교한 것처럼 꼭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여전도회 회원들에게 나누려고 준비했던 말씀이 사실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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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5.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