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희 목사 (달라스 웨슬리연합감리교회 담임)
베두인들은 3천년 이상 사막에서 양을 치며 살아가고 있는 유목민이다. 이들은 문명을 등지고 천년, 2천년 동안 내려온 전통과 관습을 따라 살아간다. 이런 사람들 가운데 15만명 정도가 시나이 반도와 이스라엘 요르단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에 걸쳐 살고 있다. 이들의 조상은 성경에 나오는 미디안 족속으로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가 옛날의 미디안이다. 이들은 환대(hospitality)로 유명한 사람들이다. 아브라함도 지나가는 손님들을 강권해 대접해서 보내곤 하지 않았는가? 이것이 바로 베두인들의 관습이다. 그들은 손님을 극진하게 잘 대접한다. 손님이 오면 아무 것도 묻지 않는다. 무조건 자기 손님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사흘까지는 극진히 대접한다. 그러나 사흘이 지나면 손님이 떠나는 것이 예의다.
백여년 전에 터키가 이스라엘과 요르단 지역을 다스리고 있었을 때다. 죄수 2명이 탈출해서 광야로 도망갔다. 그들이 베두인 장막에 숨어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군인들이 베두인 집으로 들이닥쳤다. 그리고 죄수들을 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베두인 주인은 거절했다. 자기 집에 온 손님이기 때문에 내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군인들이 강제로 들어가려고 하자, 베두인이 총을 꺼냈다. 그리고 한 방을 쏘아 자기 말을 죽였다.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말을 죽였소. 내가 가장 사랑하는 말도 죽인 마당에 내가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소. 그래, 한번 들어와 보시지요. 내가 어떻게 하는지 두고 보시오.” 이것이 유목민들의 환대 문화이다. 일단 자기 집에 손님으로 온 사람은 목숨을 걸고서 지켜주는 것이다. 성경에 아브라함이 손님들을 대접했다가 부지불식간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야기가 나온다(창18:2-8). 아브라함이 지극 정성을 다해 신나서 손님들을 대접하는 모습이 눈에 그려지지 않는가? 이런 것이 베두인들의 문화이다. 어떤 의미에서 아브라함은 성경에 나오는 베두인들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베두인들처럼 평생 양을 치면서 살았다. 광야에서 장막을 치고 살았다. 그리고 평생 이동하면서 살았다. 베두인들이 평생 사막에서 살기 때문에 사람이 그립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기 집(장막)문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이 손님을 집에 맞아들였을 때 그는 그들에게 발 씻을 물을 가져다주고 손수 음식을 준비해서 대접했다. 그런데 왜 아내 사라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어디에 간 것일까? 왜 사라가 하지 않고 아브라함이 했을까? (창118:9-10) 사라는 손님들이 갈 때까지 단 한 번도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작별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어떻게 손님대접을 그렇게 할 수가 있는가? 요르단의 와디 럼 사막을 방문했을 때 양을 치는 할머니를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으려고 하다가 돌에 맞을 뻔한 일이 있었다. 이것이 내가 베두인에게 받은 첫 번째 환대(?)였다. 베두인 여자들은 외부 남자들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린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고 사진을 찍으려고 하다가 그런 봉변을 당했던 것이다.
이집트에서 베두인과 결혼해서 사는 한국인을 만났다. 그 분은 이집트에 배낭여행을 왔다가 사막에 반해서 그곳에 사는 베두인과 결혼했다고 한다. 그분에게 사진을 찍을 것을 요청했으나 정중하게 거절을 당했다. 사진 찍은 것을 남편이 알면 절대로 안 좋아할 것이기 때문에 거절한다는 것이었다. 요르단의 와디 럼 광야에 사는 베두인 장막에서 하룻밤을 지낸 적이 있다. 사라처럼 안주인은 우리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단 한마디도 말을 건네지 않았다. 물론 요리도 모두 남편이 했다. 이런 것이 베두인의 문화이다. 중동의 이슬람권 여인들은 얼굴을 드러내놓지 않는 관습이 있다. 그래서 온 몸을 칭칭 감싸고 다닌다. 이것이 그들의 문화다. 이런 관습은 여인들이 남자들과의 접촉을 극도로 삼가야 하는 베두인들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라가 손님들을 접대하지 않고 방 안에만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메일: jinhlee1004@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