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혜 박사 (아주사퍼시픽대학교 교수)
토마스 킨케이드의 그림에는 자연과 더불어 집 풍경이 많이 나오는데 그 집들은 노을과 어울린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눈 쌓인 숲속에 포근하게 자리하기도 하면서 아늑하고 평안한 느낌을 준다. 만약 그림 속의 집안에 들어가 볼 수 있다면 따뜻한 저녁식탁에 가족이 둘러앉아 오손도손 사랑을 나누며 식사를 할 것 같은 상상이 되기도 한다. 요즈음 같이 이혼율이 높은 때에 우리 모두가 바라는 행복한 가정이란 어떤 가정일까? 세상이 말하는 행복한 가정과 우리 크리스천이 정의하는 행복한 가정은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세상이 정의하는 행복과 우리가 정의하는 행복이 다르기 때문이다. 세상은 행복이 개인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소유함에 달려있다고 정의한다. 즉 물질, 교육, 지위 등 눈에 보이는 것과 드러나는 것을 웬만큼은 갖추어야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성취를 위해 일상 속에 숨어있는 작은 기쁨들을 놓치며 정신없이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우리 크리스천의 행복은 성취에서 오는 것이 아닌 나눔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혀 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을 깨달음으로 내가 받은 사랑을 곁에 있는 사람에게 베풀고 나눌 때 우리의 삶속에 행복이 있다.
주님 안에서 행복한 가정의 특징이 무엇일지 생각해본다. 무엇보다도 서로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일 것이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살기 때문에 서로의 부족한 점을 다른 누구보다 더 잘 아는 사이이지만 그 부족을 고치려들고 잔소리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사랑하는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다. 혹시 계속되는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겉으로 드러나는 어떤 행동을 고친 척 할 수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잔소리의 결과로 사람이 변화되었다는 말을 나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 자신을 버리신 것을 깨달을 때 그 사랑에 우리의 삶이 바뀌듯이 배우자나 자녀의 부족한 모습을 알면서도 서로를 있는 모습 그대로 용납할 때 우리의 가족들은 사랑 안에서 변화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서로를 향한 인내가 행복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미성숙이 성숙으로 나아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린 아기가 어머니의 오랜 돌봄과 희생을 거쳐 청년으로 성숙하듯이 사람의 내면의 성숙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은 여러모로 부족하고 별 볼 일없지만 십년 후에 혹은 이십 년 후에 은혜로 바뀌어질 배우자나 자녀의 미래의 모습을 기대하며 지켜보는 것이 인내하는 사람의 모습이다. 주님께서 자주 넘어지는 우리를 한없는 인내로 기다리시며 성숙의 자리로 이끄셨음을 기억하면서 상대방의 변화될 최선의 모습을 믿음으로 그리며 인내하는 가정은 주님 안에서 행복을 누릴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서로를 격려하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라고 생각한다. 아빠는 아빠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자녀는 자녀대로 각자의 삶의 자리가 힘들고 무거울 때 따뜻한 말 한마디로 서로의 마음을 녹이는 가정은 행복한 곳이라고 생각된다. 주님께서 주님을 부인한 후 기가 죽어있는 베드로를 격려하시고 새로운 사역의 장으로 초대하셨듯이. 거칠고 힘든 세상에서 넘어지고 실패하며 살아갈 때 “괜찮아, 다음에는 잘 할 수 있어, 나는 너를 믿는다”라는 사랑의 메시지가 전해지는 곳, 마음의 다리 쭉 벋고 누울 수 있는 곳이라면 세상적으로는 풍족하지 않은 원베드룸(one-bedroom) 아파트라도 그 곳은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는 행복한 가정이다. 이메일: lpyun@ap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