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그래도, 희망을 말하라

민경엽 목사 (오렌지 카운티 나침반교회)

어떤 수필가가 “겨울산이 적막한 것은 춥기 때문이 아니라 노래를 부르는 새가 없기 때문”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 분의 안목으로는 세상이 살기 힘든 것은 힘들어서 힘든 것이 아니라 힘든 세상 속에서도 미래를 낙관하고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면서 희망을 노래 부르는 자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십시오. 아무리 을씨년스러운 겨울 날씨의 산이라 하더라도 노래 부르는 새가 있다면 그렇게 적막강산처럼 여겨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희망의 노래를 부를 수만 있다면 오늘의 고된 현실이 그렇게 어렵게만 느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함부로 인생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감동적인 책을 쓴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 빅토 프랭클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비참한 일들을 기록으로 남겨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일깨워주었습니다. 거기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이다. 반면에 희망을 포기한 사람들은 심신이 최악의 상태로 진행되어 결국 절망이 그들을 죽였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유대인들이 날마다 죽어갔다. 굶어죽고, 지쳐서 죽고, 병들어 죽고, 매 맞아 죽고, 가스실에서 죽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희망이 없기 때문에 죽어갔다.” 그는 특히 2차대전말 1944년 크리스마스부터 1945년 새해까지의 일주일 동안 수용소의 사망률이 전례없이 급속히 증가한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대다수의 유대인들이 막연히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집에 돌아갈 수 있겠지 하는 가냘픈 희망에 기대를 걸고 있다가 크리스마스를 지나 새해가 되어도 집에 돌아갈 희망이 없자 생명도 무너져버렸다”라고 분석하였다.

사람은 희망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까? 성경은 하나님께서 진정한 희망의 근원임을 증거합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15:13). 하나님 자체가 희망덩어리이시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생한 희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메시지 성경).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하심을 통해서(롬14:9),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으로서(롬14:10-12) 오늘 우리의 삶의 향방을 제시함으로 희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어느 페이지를 열어도 우리에게 희망으로 나아가는 길을 만나게 해줍니다. 성경은 희망의 함성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용의 해를 맞이하여 욱일승천(旭日昇天)을 꿈꾸지만 현실의 지표들은 희망을 꿈꾸기에는 거리가 멉니다. 사람들은 뉴스를 듣거나 신문을 읽고, 사람들의 말을 듣고는 희망이 없다고 말합니다. 세상의 절망은 올바른 절망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내린 결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생생한 희망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희망이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넘치는 희망을 소유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이 희망은 우리에게 오늘도 힘있게 부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실의 벽이 제아무리 높고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답답한 일을 당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희망을 말해야 합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게 있어서 희망의 마지노선이요 희망의 최후의 보루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믿는 사람들은 희망을 가슴에 품고 희망을 입으로 말하고 희망에 찬 행동을 해야 합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요일5:4,5). 담대하게 희망을 말하십시오.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희망을 말하십시오. 아무리 생활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희망을 말하십시오. 희망은 믿음과 동의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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