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종훈 목사 (시카고 그레이스교회)
고국 뿐 아니라 이곳 한인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천안함 침몰사건이 일어난 지 벌써 보름이 지났다. 분단 조국의 바다를 지키던 군함이 순식간에 침몰한 것이나, 시간이 흐를수록 사건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이유 때문에 곳곳에서 초미의 관심거리가 됐다. 방송은 연일 뉴스 머리에 천안함 분석보도를 했으며, 신문마다 천안함 기사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 주었다. 하지만 갖가지 루머 속에 진실은 더욱 미궁으로 빠져드는 기분이다.
원인을 분석하거나 그와 관련된 사람 혹은 관련기관의 책임을 묻자는 뜻에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다. 살면서 일어날 수 있는 대형사건에 대해 우선순위를 따라 일하는 일종의 위기관리 메뉴얼을 점검해보자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한 관계자들은 원인규명, 재발 방지대책수립, 책임자징계, 보상결정 등 해야할 일들이 참으로 많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가장 급하고 중요한 일인지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죽어가는 사람 구하는 일이다. 바다 속 함미부분에 객실이 있고 그 안에 갇히면 69시간 정도 견딜 수 있다는데, 대부분이 그 안에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69시간은 다른 어떤 이유로든 허비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구조된다면 69시간은 희망의 시간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두렵고 고통스러운 시간임이 틀림없다. 살기 위해서 기다리던 시간이 안타깝게 죽어가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그 이상의 시간이 흐른 지금, 결국 가족들은 구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구조하기 위해 수고했던 많은 사람들도 눈물을 흘리며 뒤돌아섰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이티 지진에서도 그랬다. 강도7.3의 강진으로 수도 대부분의 건물이 붕괴됐고, 많은 사람들이 비참하게 죽었다. 길거리에 방치된 즐비한 시신이나,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냥 보기에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래도 무너진 빌딩구조물 사이에 찢겨지고 부서진 몸을 누인 채, 겨우 숨만 내쉬며 구조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사망자 최종집계가 20만 명이 넘어선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집계조차 하기 어려웠다고 하니, 깊은 어둠 속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몇 명이었는지는 전혀 짐작할 수 없다. 그들에게 시간이란 생과 사의 갈림길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루 이틀 뿐 아니라 지진발생 일주일이 돼서도 여러 사람들이 구조됐고, 생존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시점을 넘어선 27일 뒤에도 구조된 사람이 있었다. 각국에서 아이티재건을 위해 달려온 사람들이 수고하는 동안에도 그 아래 땅 속에서는 죽어가며 애타게 생존을 갈망하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들이 기다렸던 시간 역시, 어느 누구도 어떤 이유로든 허비해서는 안되는 소중한 것이었음이 틀림없다. 어디 이 두 사고뿐이겠는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다양하게 엮는 어려움 속에서 생존을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 기다림은 정치, 경제, 사상, 그리고 종교를 떠나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로 소중한 것이 틀림없다.
봄철을 맞아 교회들마다 많은 대형행사들과 감격하기에 충분한 은혜의 잔치들 소문이 들린다. 세상보다 교회에 더 소문난 교회들이 많아지고 있다.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성공 지향적 목회원리는 목회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교회 밖 사람들을 위한 교회보다는 교회 안 사람들을 위한 교회되는데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들이 보인다. 그리고 누가 더 큰 지 따지고 싸우는 소문도 제법 들린다. 이런 때에, 왜 무너진 빌딩과 바다 밑에서 죽어갔던 사람들이 오버랩 돼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이미 살아난 우리들이 더 잘 살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는 동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가책어린 생각 때문일까? 아무래도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교회론적 입장에서 교회의 존재목적을 이야기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누군가 위기상황에서 우선순위를 잊고 다른 일에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살 수 있었던 사람들이 살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기 때문이며,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동안에 부지런히 살려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꽉 차 올라서 한 번 해본 소리이다. 분명 목숨은 천하보다 귀한 것이다. 사람부터 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