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하던가? 여우도 죽을 때 자기의 굴을 향해 머리를 둔다. 이 말은 사람은 세상을 떠날 때가 되면 자기의 근본을 생각하게 된다는 뜻이다. 젊을 때는 전혀 자신의 뿌리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던 사람이라도 죽을 때가 가까우면 묻는 질문이 있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그리고 또 어디로 가는가?
삼성그룹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일으킨 이병철 회장도 말년에 인생의 근본적인 질문들에 관하여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1987년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에 어떤 천주교 신부에게 24가지의 질문을 하였다. 그 질문들이 꽤나 깊이가 있는 것들이어서 그의 사후에 다른 이들에게 전달되어 나름의 답을 쓴 것이 책들로 출판되기도 하였다. 이 회장이 질문한 것은 대략 다음과 같다.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종교란 무엇이고, 왜 인간에게 필요한가? 인간이 죽은 후 천국이나 지옥에 간다는데 그걸 어떻게 믿을 수 있나? 성경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영혼이란 무엇인가? 지구의 종말은 정말 올 것인가? 아마도 대한민국 최고의 부자였던 이 회장도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인생살이의 허망함을 느꼈던 것 같고,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에 목말랐던 것 같다. 사실 이런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한 답은 누구에게나 목마르다.
구약 전도서는 해 아래서 모든 인생의 본질은 허무라고 꿰뚫었다.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은 게 인생이라는 것이다. 1926년 8월 4일 새벽 4시경 두 남녀가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 가는 관부 연락선에서 현해탄에 몸을 던졌다. 남자는 연극인 유부남 김우진, 여자는 조선 최고의 연예인,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로 명성을 떨쳤던 윤심덕이었다. 당시 윤심덕의 인기는 여왕의 위세라고 할 정도로 대단하였다. 그런 그가 삶의 우여곡절을 겪게 되었다. 가족들로 인한 경제적인 위기와 스캔들에 휩싸여 방황하다가 일본에 건너가 연인 김우진을 만나 조선에 돌아오다가 29세의 꽃다운 나이에 비극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윤심덕이 죽기 얼마 전에 직접 작사하여 공전의 히트를 친 곡이 <사의 찬미>이다. 원래 헝가리의 이바노브비치가 작곡한 <다뉴브 강의 잔물결>을 그녀가 번안하여 발표하여 더 유명해진 곡인데 놀랍게도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어마어마한 10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하였다.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이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러 가느냐 //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이/ 그 운명이 모두 다 같구나/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너는 칼 위에 춤추는 자로다 // 허영에 빠져 날뛰는 인생아/ 너 속였음을 네가 아느냐/ 세상의 것은 너에게 허무니/ 너 죽은 후엔 모두 다 없도다 // (후렴) 눈물로 된 이 세상이/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이 노래는 인생의 허무를 절절히 지적한다. 우리는 모두 허영에 빠져 스스로 속일 뿐이다. 삶에 열중하느라 가련하지만 우리의 모든 노력들이 칼 위의 춤처럼 위태하다. 결국 행복 찾는 모든 인생들이 찾게 되는 것은 허무. 가사가 마치 이 여가수의 비극적인 운명을 예고하는 듯하여 더욱 애잔하다. 윤심덕이 삶의 우여곡절을 겪었기 때문에 인생이 허무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잘 나가고 삶이 평탄대로라 할지라도 하나님 없는 인생의 본질은 허무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가방끈이 아무리 길어도, 외모가 아무리 탁월해도, 건강이 아무리 좋아도 하나님이 없다면, 해 아래 사는 인생의 그 끝은 허무다.
어머니의 부음을 듣고 황망히 한국으로 달려 나갔다. 발인 날 화장터에 가서 두 시간 만에 한 줌 재로 변하여 나온 어머니의 유골을 선산에 묻으며 해 아래서 우리는 “한 줌 재”일 뿐이라는 생각이 내내 떠나지 않았다. 해 위에, 영원의 세계 속에 계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인생도 그 본질은 허무일 뿐이다. minkyungyob@gmail.com
07.13.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