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자 그리고 떠나자

성탄이 막 지났다. 올해 받은 성탄 선물은 무엇인가? 그 선물 중에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무엇인가? 그런 선물이 없으셨어도 섭섭해 하지 마시라. 제가 한 해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시는 모든 분에게 선물을 드리려고 한다. 무슨 물건은 아니니 수고롭게 우체통에 나가보시거나 UPS 차를 기다리지 않으셔도 된다. 선물은 다름 아닌 ‘선물’이라는 시(詩)이다. 다른 수고로움 없이 찬찬히 읽으시면 된다. ‘아주 행복한 날/ 안개가 깔린 이른 아침 정원에서/ 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땅 위엔 갖고자 하는 것들이 아무것도 없었다/ 부러워할 만한 사람도 없었다/ 과거의 나쁜 일들은 모두 잊어버렸다/ 내가 누구였으며 또 누구인가 생각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몸에서는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온몸을 활짝 펴며 푸르른 바다와 돛단배를 바라보았다’ 기억만이 은혜인가? 아니다. 잊자. 잊는 것도 은혜다. 잊는 것도 능력이다. 내 삶에 나쁜 것들을 잊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큰 선물이다, 나쁜 것뿐인가. 사실 내가 무엇인가 잘한 것도 잊음이 겸손함에 좋으니 그조차 선물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선언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델타에 이어 오미크론의 기세가 등등하다. 연말인데 확진자의 그래프 곡선이 장난이 아니다. 두려움의 짙은 구름이 온 땅을 다시 둘러 덮고 있다. 이 전염병과 2년 가까이 지냈는데도 희망의 빛은 정녕 없는가. 아니다. 서광(曙光)이 비치고 있다. 그 빛은 구름 저 멀리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빛은 이미 내 안에 있다. 다만 내 안에서 숨죽이고 있을 뿐이다. 그 희망의 빛을 어떻게 드러내려는가. 아픈 2021년을 잊자. 다 뒤에 두자. 아픈 상처들에 눌려 있던 희망의 빛이 일어나도록. 연말이다. 새해까지 끌고 가지 말고 잊자. 잊자.

 

그런데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는 이 노래. ‘♪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 ♬----’ 그렇다. 물레방아 같은 인생이 있다. 그저 돌고 돌며 제 자리에 있는 것이다. 떠나는 것 같고 높이 올라간 것 같으나 끝내 떠나지 못하고 다시 돌고 돌아오는 것이다. 돌고 돌지 말자. 떠나자. 떠나야 할 때인데 아직 못 떠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안타깝게도 물레방아 인생을 꿈꾸던 자들이 있었다. 애굽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다. 그들은 자꾸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떠나야 한다. 1세기 전, ‘편도 선교사들’(one-way missionaries)이라고 알려진 용감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선교지로 떠날 때 다시 돌아올 왕복 배표가 아닌 선교지행 편도 표만 구입하였고 자신이 죽으면 누울 관을 가지고 떠났다는 것이다. 그 관속에 단출한 개인 물품만을 챙겨 넣었다고 한다. 그들 중 밀른이라는 선교사님이 있었다. 그는 남태평양 뉴헤브리디스 제도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편도 배표를 구해 떠났다. 그는 그 섬에서 35년 동안 원주민을 사랑하며 선교하여 많은 교회와 신자를 세우고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원주민들은 마을 한가운데 큰 무덤을 만들어 그를 묻고 묘비에 다음과 같은 비문을 새겼다. “그가 왔을 때 빛이 없었다. 그가 떠났을 때 어둠이 없었다.” 얼마나 울림이 큰 떠남인가. 

 

우리가 떠난다면 그 자리에 무엇이 남아 있을까 궁금하다. 우리가 떠난 자리에 아직 남아 있는 자들이 있을 터인데 그들이 우리의 어떤 자취를 볼 수 있을까? 그들이 우리의 어떤 냄새를 맡을 수 있을까? 떠남이 없이는 어떤 자취도 남길 수 없다. 그러니 떠나자. 새해를 맞기 위한 잊음과 새로운 도전을 위한 떠남의 영성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잊자 그리고 떠나자. 

12.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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