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텔로사 가나안

버스비 같은 생활물가가 올랐다는 소식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면 금새 체감이 되지만 몇 년 근무하고 받은 퇴직금 수십억이나 수백 억 단위의 돈거래는 보통사람들에게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땅이 돈이라는 사실을 바라보기만 하며 사는 사람들은 대장동이라는 동네 앞에서 다시 깜짝 놀라고 있다. 

땅은 무엇이었던가? 그저 철없이 뛰어놀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나 ‘땅따먹기’ ‘오징어게임’을 하며 뛰어놀다가 해 지면 신발로 쓱싹쓱싹 금을 지우고 돌아서 집으로 들어가 버릴 수 있는 삶의 놀이터였는데... 단순히 그게 아니라는 걸 이제야 알아채는 그저 무지하고 순박한 백성들. 

땅이 그런 것이었나? 땅이라는 것이 가진 사람들은 쉬쉬 하며 얼굴 가려야할 부끄러운 것이고 못 가진 사람들은 땅주인들을 손가락질하며 반목하게 만드는 것이었나? 같이 뛰어놀던 그 땅이 그렇게 값이 뛸 줄 몰랐던 백성들은 땅을 치며(?) 억울해하고, 허접하게 버려졌던 땅이 “얼마 지나보니 금싸라기가 되어있는 걸 어쩌라고?” 라며 법을 거스른 것이 없다는 사람들도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이 땅에는 그래서 온통 억울한 사람들로 가득한 것 같다.

성경도 처음부터 땅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나님도 태초에 에덴이라는 특별한 땅을 만들어 사람에게 무상으로 공급해주셨고, 아브라함에게도 땅을, 수백만 백성을 이끌고 나와 광야를 헤매던 모세에게도 땅을 약속해주셨다. 그래서 성경 속 사람들도 땅에 대한 소망을 갖고 약속받은 땅을 뺏기지 않으려고 전쟁도 불사하며 살았다. 

한국의 대장동이 뜨기(?) 전인 몇 년 전, 미국 서부 사막에 유토피아(Utopia)를 건설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이른바 텔로사(Telosa, ‘최고의 목적’이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라는 도시를 만들겠다고 나선 이 사람은 월마트의 전자상거래 사업을 총괄하는 임원이었던 억만장자 마크 로어이다. 로어는 헨리 조지의 ‘토지공개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 도시를 구상하면서 토지를 시민들이 공동소유하고, 도시 안에서 벌어들이는 임대수익으로 교육과 복지, 일자리, 저렴한 주택 등 사회 인프라에 재투자하는 경제구조를 갖고 밑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는 미국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인 ‘부의 불평등’이 마침내 미국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진단하고, 토지가치의 상승이 주민 모두의 이득으로 되돌아가는 시스템의 유토피아 같은 도시를 구상했다.

이미 도시역사가, 교통계획 전문가, 엔지니어들로 팀을 구성한 로어는 전체 프로젝트 완성을 위해 4천억 달러를 예상하고(참고로, 로어의 개인자산은 5천억 달러) 180만평 부지에 5만 명 수용 규모의 텔로사가 향후 40년 내에 인구 5백만의 대도시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새벽기도 본문인 신명기를 지난주에 마쳤다. 마지막 34장에서 하나님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오른 모세에게 눈앞에 펼쳐 보이는 온 땅을 보여주면서 말씀하신다.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여기에 있다. “네게 주리라‘는 말을 기대하는 모세에게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고 하시는 이 마지막 한 마디. 이 말씀이 오늘, 대장동 땅 한 뼘 차지하지 못하고, 텔로사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연약한 백성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여기’가 아니라 ‘저기’. 하나님이 수고한 인생들에게 약속하시는 것은 뺏어야할 땅이 아니라 편히 안식할 쉼이라는 사실이다.

아쉬워하지도 분노하지도 말라며 들려오는 말씀. “수고했다, 이제 다음은 여호수아가 담당할 것이다.” 땅뺏기 싸움인 인류역사, 대장동 땅을 취하기 위해, 텔로사 땅을 건설하기 위해 더 이상 수고하지 말고 내게로 오라고 부르시는 조용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할 때이다. “수고했다. 이제 너는 쉼이 필요하다. 네게 준비된 땅은 저기 보이는 곳이 아니라 나 있는 곳 하늘이란다.”

10.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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