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 말한다

어제는 6.25전쟁 71주년의 날이었다. 6.25전쟁은 수백만의 사상자(死傷者)와 천만의 이산가족(離散家族)을 만들었고 지금까지 그 상처가 짙고 짙은 현재 진행형의 역사(歷史)이다. 6.25전쟁은 비극적 전쟁이지만 그렇지 않았으면 아직 북(北)에 남아 신앙생활의 박해를 받고 있을 하나님의 사람들을 남(南)으로 보내신 하나님의 섭리도 있음을 믿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역사를 잊으면 제대로 된 미래를 맞이할 수 없다. 잊지 말자. 6.25전쟁. 우리는 그날을 잊을 수 없고 또 잊어서도 안 된다. 특별히 남침을 감행한 사악한 공산당 무리에 죽음으로 맞선 군인들을 잊을 수 없다. 작금(昨今)의 상황은 적잖이 걱정스럽다. 6.25전쟁이 있었는지, 언제 일어났는지, 누가 그 전쟁은 일으켰는지를 묻어두려거나 왜곡하려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허튼 침묵(沈默)과 수작(酬酌)을 벌이는 자들은 죽은 군인들조차 가만히 있는 줄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죽어서도 바르게 말한다. 6.25전쟁 피난길에 한 군인의 죽음을 목격한 모윤숙 시인은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라는 시(詩)를 썼다. 

 

“산 옆의 외 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 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구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죽음을 통곡하며/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원수가 밀려오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숨지었노라..../ 아무도 나의 죽음을 아는 이는 없으리라..../ 바람이여! 저 이름 모를 새들이여!..../ 내 사랑하는 소녀를 만나거든/ 나를 그리워 울지 말고, 거룩한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 일러 다오.”

 

국군은 죽어서 말했다. 꽃다운 나이에 아낌없이 죽은 그 죽음의 이유를. 그렇다. 따듯한 어머니의 품이 그리웠을 젊은이들, 어여쁜 소녀의 손을 잡고 싶었을 청년들이 죽음에 자신을 내놓았다. 이 세상에는 자신의 행복과 생명보다 더 큰 가치가 가진 것이 있음을 죽음으로 말하였다. 사랑하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죽었노라고 스물다섯의 젊은 군인은 말한다. 그런 젊은 군인들이 죽음으로 이 나라를 지키지 않았다면 오늘 같은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은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죽음의 선명하고 아름다운 이유가 있었다. 그들의 처절한 죽음은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기들이 죽어 이 땅에 꽃피우고자 기대했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세세히 들려준다. “그대들이여, 의미심장한 이야기꾼들이여, 그대들이 죽음으로 말하는 것들을 가슴으로 잘 듣고 있노라. 감사하다, 자랑스러운 그대들이여.“

 

33세의 청년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한 죽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죽음. 우리는 죽어서 무엇을 말할까. 죽음의 이유도 모른 채 죽는다면 죽음에 대한 바른 자세가 아닐 것이다. 우리를 자유 대한민국에 살게 하시다가 이 미국 땅으로 옮겨 심으시어 새로운 환경에서 살게 하시다가 언젠가 죽게 하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있으시다. 그 언젠가 있을 우리의 죽음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죽은 것이냐고 나의 후대(後代)가 묻는다면 나의 죽음을 어떤 답을 내놓을 것인가. 

06.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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