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의 유산(遺産)

내게는 아버님의 유산이 둘이 있다. 하나는 무형(無形)의 유산이고 다른 하나는 유형(有形)의 유산이다. 무형의 유산은 아버님의 유언(遺言)이셨는데 바로 이것이다. “복음전파! 복음전파! 복음전파!” 장로님이셨던 아버님은 하늘나라로 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 세 마디를 외치셨다. 그때는 내가 목사가 된 지 2년이 된 해인데 복음을 전파하라고 외치신 것이다. 이 유언은 내게 너무나 소중한 유언이셨다.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을 다시 일깨워주신 것이며 복음의 단순함과 광대함을 동시에 일러주신 말씀이셨다. 복음은 단순하다. 그러나 그 깊이와 넓이와 높이와 길이는 측량할 수 없이 광대하다. 우리가 늘 손에 쥐고 생활하는 스마트폰이 단순한 것 같으나 그 안에 잠겨 있는 다양한 기능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그 스마트폰의 다양함도 복음에 다양함에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이 “복음전파”는 내가 직접들은 유언이지만 훗날 나의 두 아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그들도 지금은 복음을 전파하는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다. 그리고 조카 중에도 여러 명의 목회자가 있다. “복음전파! 복음전파! 복음전파!”는 이제 우리 가정의 가훈(家訓)이 되었다.

 

아버님에게 물려받은 유형의 유산도 있다. 건물? 아니다. 은행 통장? 그것도 아니다. 아버님이 물려주신 유형의 유물은 몇 권의 낡은 노트이다. 내게 유산이라고 하지 않으셨으나 아버님이 떠나신 자리에 남아 있던 낡은 노트를 내가 유형의 유산으로 삼은 것이다. 내 책장 속에 지금까지 꽂혀 있는 아버님의 낡은 노트를 간혹 펼쳐 볼 때면 아버님의 체취를 물씬 느낄 수 있다. 아버님의 낡은 노트에는 아버님이 예배 때 여러 목사님의 설교들을 요약하시면서 받아 적으신 내용이 있다. 설교 날짜, 설교자, 설교 제목, 설교 본문이 노트 위에 가지런히 적혀있고 각 설교는 대학노트 한 페이지 분량으로 한글과 한자(漢字)를 섞어 그날의 설교를 요약해 놓으셨다.

 

설교 노트라 아버님의 견해나 생각이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았지만 아버님이 무엇을 가장 중요시하셨는지는 분명히 알 수 있다. 설교의 제목들은 다음과 같았다. 인생(人生)과 영원(永遠), 복음(福音)의 유익(有益), 하나님의 주권(主權), 헌신(獻身)의 출발, 은혜(恩惠) 신앙(信仰), 노후 대책(對策), 기도(祈禱)를 배우자, 다양성(多樣性)의 조화(調和), 죽도록 충성(忠誠)하라 등등이었다. 아버님의 노트는 그날의 설교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시겠다는 아버님의 설교에 대한 자세와 말씀에 대한 갈망을 엿보게 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 노트는 아버님이 나에게도 예배 때마다 말씀을 청종(聽從)하라고 교훈하는 듯하다. 

 

“사람은 자신이 선택한 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 아브라함 링컨의 말이다. 사람의 선택은 자신만의 행복이 아니라 자기의 후손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다. 그런 면에서 아버님의 선택은 탁월하셨다. 자녀들을 위한 유산의 선택을 너무 잘해주셔서 감사하다. 돈을 많이 남겨주셨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큰 빌딩을 하나라도 남겨주셨다면 우리 1남5녀의 관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려는 선택을 통해 자신도 살고 이삭도 살고 그 후손이 지대한 복을 받았다. 내일은 아버지날이다. 세월이 지날수록 “복음 전파”와 “낡은 노트”라는 아버님의 유산이 감사한데 나는 어떤 유산을 남겨줄 아버지가 될 것인가.

06.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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