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은 성부와 성자를 묶는 사랑의 끈이다. 또한 성령은 하나님과 우리를 묶는 사랑의 끈이다. 하지만 성령은 이해하기 어려워 왜곡되거나 체험에만 집착하는 모습이 교회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코로나바이러스 19 감염증 으로 서로가 거리를 두다가, 이제는 정상화로 가는 길목에서 올바른 성령 이해로 하나님과의 거리를 좁히는 성령강림절을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 입자 하나가 세상의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뜻하지 않은 불청객으로 찾아온 코로나19는 함께 사는 세상에서 ‘함께함’을 이용해 자신의 세력을 과시했다. 바이러스의 증식을 막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거리두기’였다. 함께함이 문제였으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거리를 둬야했다. 마스크 쓰기는 이제 행정명령이라는 사회적 규칙으로까지 정해졌고,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자유롭게 바라볼 수 없게 됐다. 마스크로 가린 얼굴로 우리는 서로 간에 간격을 둬야 했다.
바이러스가 바꿔 놓은 곳은 비단 세상만이 아니었다. 주님께서 ‘불러 모인’공동체인 교회의 ‘모임’은 바이러스 확산의 최전선이 될 수 있다는 우려로, 유래 없이 공동체 예배를 중단해야만 했다. 하지만 공동체 예배 중단의 상황에서도 믿는 이들은 저마다 하나님과 맺은 관계를 이어 나가고자 노력했다. 그 노력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목회자들도 애를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막 대면 예배가 재개되고 있는 시점에서, 코로나19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린 냉담교인들에 대한 우려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 교회 상황이다.
우리는 이러한 시기에 성령강림절을 맞이한다. 성부와 성자를 사랑으로 묶으시고, 나아가 우리 서로가 사랑으로 일치할 수 있도록 묶어 주시는 일치와 사랑의 끈인 성령께서 우리에게 내리심을 기념하는 절기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40일째에 승천하셨고, 승천하신 지 10일 후에 성령님을 보내주셨다. 부활로부터 50일 후가 성령강림절인 것이다. 구약절기에 의하면 유월절에 있는 초실절 후 50일째를 오순절이라고 부른다. 이 오순절은 하곡인 밀을 추수하는 절기였다. 봄에 보리이삭이 맺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여름추수인 밀 추수에 이른 것을 기뻐하는 절기였다. 이 절기를 맥추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밀 추수인데 말이다. 이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셨다(행2:1-4).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신 것은 구약의 오순절이 성령강림으로 말미암아 성취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대인들은 오순절에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았다고 해석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을 지키면서 출애굽했고, 50일째에 시내산에 도착해 언약의 돌판을 받았다는 것이다. 최초의 오순절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세상 양식에다가 하늘 양식을 받았다. 오순절은 하나님께서 주신 땅의 열매를 기뻐하고 감사하는 절기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이 헌법(?)을 반포하면서 한 민족, 한 나라로서 출발한 것을 알리는 절기였다. 최초의 오순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언약의 문서를 받고, 언약의 백성으로 살기 시작한 것을 축하하는 절기였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언약을 맺고 난 다음에 바로 송아지로 우상을 만들어 섬기므로 언약을 깨뜨려 버렸다(출32:1-6). 이것을 본 모세는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시고 새겨주신 돌판을 던져서 깨뜨려 버린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언약을 지키려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언약관계가 깨어졌다는 것을 시위해보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돌판을 만들어가지고 올라오라고 하시고는 처음 것과 동일한 언약의 말씀을 새겨주셨다(출34:1-9).
이후에 이스라엘의 완약함을 지속적으로 목도하신 하나님께서는 새 언약을 맺겠다고 하신다. 이제는 돌판이 아니라 마음판에 하나님의 율법을 새겨주시겠다고 하신다(렘31:33). 마음판에 새겨졌으니 이제는 잊어버릴 일이 없다. 마음으로부터 율법을 지키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초대교회는 교회력의 절정인 성령강림절을 크게 축하했다. 부활 전야제처럼 성령강림 전야에 모여 예배했다. 이 전야 예배 때는 구약성경의 본문을 네 군데 읽었다. 이 네 군데 본문은 오순절 성령강림을 예상하는 본문들이었다.
첫째 본문은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이다. 오순절 성령강림이 죄로 인해 수없이 분열돼있는 세상을 하나로 만드는 사건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둘째 본문은 시내산 앞에 당도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신 출애굽기 19장이다.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인해 주님의 교회에 새로운 법을 선포해주신 것을 축하한다.
셋째 본문은 뼛조각들이 거대한 군대를 이루는 에스겔 37장의 말씀이다. 성령께서 오심으로 죽었던 자들 가운데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일어나는 것을 보여준다. 넷째 본문은 요엘 2장 말씀이다. 오순절 성령강림 때 사도 베드로가 인용했던 바로 그 구절이다. 이제는 말세가 됐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복된 시대가 펼쳐졌다는 것을 선포한다.
부활절에 강단을 장식할 경우에는 백합과 같은 흰 꽃으로 장식한다. 부활절은 흰색이 적합하기 때문이다. 성령강림절에 이르면 그 색깔이 빨간색으로 바뀐다. 오순절에 성령께서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모습으로 임하신 것을 연상하도록 불붙는 것 같은 색깔의 꽃으로 장식한다.
결론으로, 완전한 사랑의 끈으로 결합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관계가 단절될 수 없듯, 우리를 초대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그 사랑에 응답한 우리의 신앙이 이루는 사랑의 관계는 단절될 수 없다. 또한 당신의 몸을 모시고 ‘파견’된 그 자리에서도 이웃 사랑의 관계는 단절될 수 없다. 작은 바이러스 하나가 많은 것을 바꿔놓은 지금, 사랑으로 결합된 관계를 이룬 성령강림으로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키워가며, 그 사랑으로 주님과의 거리도, 이웃과의 마음의 거리도 좁혀 나가는 기회가 돼야겠다.
05.22.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