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런 질문 - ‘누군지 아시겠어요?’

지난 5월 7일 이른 새벽, 한국에서 국제전화가 왔습니다. 치매로 긴 세월 요양원 생활하시던 장모님께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고인의 장례예배 일정은 5월 8일 어버이날, 오래 전에는 ‘어머니날’이었는데 바로 그날 진행되었습니다. 어머니날에 어머니의 장례를 해야 하는 그래서 더 가슴에 쓰라림이 남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장례일정에 참여하기 위해 아내는 긴급하게 준비해야만 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다른 국가로의 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라 긴급하게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하여 공항으로 떠났습니다. 아내가 공항으로 떠난 후 큼지막한 소포가 하나 도착했습니다. 소포의 내용물은 아들이 어머니날을 맞이하면서 어머니에게 우편으로 꽃을 보낸 것이었습니다.

싱싱하고 정성스럽게 다듬어진 꽃묶음을 보면서 정작 그 꽃을 받아야 할 당사자인 아들의 어머니는 자신의 친정어머니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먼 여행길을 떠난 이후라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날이라 꽃을 보내었고 그 꽃을 받아야할 어머니는 자신의 친정어머니의 마지막 시간을 위해 떠나버린 현실이 오늘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차가운 지구촌임을 상기시켜주었습니다.

고인은 제법 긴 세월동안 치매로 고생하셨습니다. 2020년 한국에서 나온 통계를 보면 65세 이상이 되는 환자들의 10.3%로써 노인 환자 10명당 1명이 치매환자로 보고되었습니다. 바로 그러한 치매로 고생하시던 고인을 우리 주님에게 보내드린 후에 문득 이전에 보지 못했던 부분들이 제 마음 속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왜 그 때는 생각하지 못했을까? 하고 자문합니다.

치매환자를 대하는 일반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은 거의 예외 없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가 누구지?” “제가 누군지 아시겠어요?” “엄마, 내가 누구지?” 그렇게 ‘내가 누구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내가 누구지?’라는 질문으로 끝이 납니다.

중기 혹은 말기 치매환자와 주고받는 대화의 내용 가운데 90% 이상이 ‘누구인지’ 그 기억력을 점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하거나 아니면 전혀 엉뚱한 대답이 나오게 되면 더 이상의 대화는 끊어지게 됩니다. 사실 상대편이 내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더 이상 의미 있는 대화를 이어간다는 것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 아픈 우리의 현실과 이제 고인이 되신 분을 기억하며 ‘과연 그게 가장 지혜로운 대화였을까?’ 하고 고민해봅니다. 어차피 기억력이 사라진 치매환자에게 나에 대한 기억을 요구하는 것 그 자체가 무리일 뿐만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 ‘나에 대한 기억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라는 점입니다. 

치매로 앓고 있는 상대는 나에 대해 아무런 기억도 흔적도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그 반대로 나는 치매환자의 이전 삶을 잘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내 쪽에서 상대를 품어주고 받아주는 것이 치매환자를 대하는 훨씬 더 존귀한 자세라는 생각이 듭니다. 상대가 기억을 하든 하지 못하든 여전히 건강할 때의 모습으로 대해 드릴 뿐만 아니라 일방적이지만 과거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해드리는 것이야말로 치매환자를 대하는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자세일 수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말씀을 읽고 찬양을 드리게 되면 치매환자의 영혼까지 돌아보게 되는 것이라는 마음이 듭니다.

가정의 달, 특히 어버이주일을 보내며 사랑하는 우리의 어버이들을 향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를 향한 기억이 없어져도 우리가 기억할 테니 더 편안하게 삶의 여정을 걸어가십시오! 라고.

hankschoi@gmail.com

05.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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