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바라보며 광야를 걷는다

“가장 어두운 시간은 해뜨기 바로 직전의 시간이다.” 인생에서 고난의 골짜기와 어둠의 시간을 지나는 사람을 견디게 하는 한 마디입니다. 팬데믹의 어둠을 지나는 삶은 광야 길을 걸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적막한 광야 길은 많은 사람에게 희망의 존재에 대하여 의심하게 하고, 내일이라는 꿈을 무너지게 합니다. 사방을 돌아보아도 소망의 빛이 보이지 않는 극한의 상황에서 호흡하는 것마저 힘겨울 때가 있습니다. “광야를 지나며”라는 찬양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 길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광야 광야에 서 있네.” 신자든 불신자든 광야 같은 적막한 인생이 펼쳐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의 삶이란 광야에 서 있던 바다 한복판을 항해하든 홀로 던져진 존재가 아닙니다. 광야를 지나는 인생길에서도 평강을 누리며 기뻐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하여 찬송은 계속 들려줍니다.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수 없는 곳, 광야 광야에 서 있네.” 

광야로의 초청에 응한 사람은 없지만 광야 같은 인생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습니다. 광야 길의 극복은 광야를 대하는 자세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독수리 날개 위에 업고 인도하신 것처럼 우리를 인도하셨다는 확신을 가지면 광야에서도 부를 노래가 있습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고난의 삶을 살아간 헬렌 켈러가 한 말입니다. “삶은 대담한 모험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거센 폭풍우가 몰아칠 때 닭은 머리를 숙이지만, 독수리는 날개를 펼치고 창공을 바람에 의지하여 날아갑니다. 인생길이 늘 벚꽃 화려한 길만 펼쳐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화려한 벚꽃이라 해도 한 시절 찬란하게 빛을 발하면 향기를 다할 때가 있고 바람에 떨어지는 날이 옵니다. 소크라테스는 “시험 받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고 했습니다. 가시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장미꽃을 만질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광야에 서 있다고 생각할 때마다, 주위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할 때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영혼의 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민족시인 이육사는 일제 치하의 어둠 속에서 민족해방을 꿈꾸며 ‘광야’라는 시에서 노래합니다.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우리에게는 천고 뒤가 아니라 이미 2천년 전에 영혼의 진정한 해방자가 되시는 초인 예수님이 하늘을 가르시고 세상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 예수님은 언젠가 역사의 어둠을 뚫고 다시 오실 것입니다. 크리스천이란 그날을 기다리는 소망을 품고 즐거이 광야를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시험 받으신 곳이 광야입니다. 모든 것이 끊어진 광야에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사탄의 유혹을 이기시고 승리의 문을 여셨습니다. 광야는 우리를 무너뜨리는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승리를 맛보는 기적의 현장입니다. 광야 길에 서 있다고 생각할 때면 잠잠히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풀 한 포기 물 한 모금 보이지 않을 때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여전히 나를 향해 미소 짓고 계시는 주님이 계신다면 우리는 광야를 행복한 여행처럼 즐기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광야라도 사명의 땅이 되는 것입니다. 광야를 지나면서 이 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고민하지 마십시오. 주님 자신이 우리의 목적지이기 때문입니다. 

광야 길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언젠가 들어갈 가나안이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성취될 미래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면 현재의 고난은 하나의 통과 과정으로 여기고 이겨낼 힘을 얻게 됩니다. 오히려 이런 시기에 하나님의 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명에 더욱 충실하게 됩니다. 아직 팬데믹으로 세상이 아파하고 있습니다. 똑 같이 고난의 시간을 보내지만 부디 하늘을 바라보며 평강과 소망을 노래하며 광야를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그 삶 자체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preachchrist@kcpc.org

05.0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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