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 되면 누구나 노곤(勞困)한데 마귀는 피곤하지도 않은가. 3월이 되어서도 미끼를 가지고 부지런히 살피다가 적당한 상황에 그것을 던진다. 유혹의 미끼다. 마귀는 들릴라를 통해 삼손에게 날마다 미끼를 던졌다.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삿16:16). 사단은 보디발의 아내를 통해 요셉에게 날마다 미끼를 던졌다.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창39:10a). 마귀의 미끼는 그럴듯하다. “지금 아무도 안 본다.” “누구나 그렇게 산다.” “오늘 한 번만 여기 가자, 내일은 꼭 교회가고.” “이건 별거 아니야” 날마다는 결코 가벼운 날이 아니다. 마귀가 날마다 미끼를 던지는데 어느 날이고 무심코 라도 덥석 물었다간 1-2년 정도가 아니라 평생 종(鐘)칠 수 도 있다.
사소함의 무거움과 단 하루의 무서움을 잊지 말자. 광명한 천사로 가장(假裝)하여 다가오는 사단의 정체를 잘 구별하자. 스스로를 선줄로 과신(過信)하다가 넘어지는 일은 없도록 하자. 대단한 것 같은 사람들이 어이없이 넘어지는 일들이 줄을 이어 보도되고 있다. 요즈음 뉴욕 주(州)의 유력 지도자도 엄청 흔들리고 있다. 정식 조사가 이루어져야겠지만 자기가 지난 그 어느 한 날 가볍게 생각하며 말하고 행했던 것들이 정말 사소한 것이고 적당히 감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면 너무 어리석은 일이다.
마귀의 날마다의 집요한 공격에 어떻게 패하지 않고 날마다 이길 수 있을까? 마귀의 날마다에 기도의 날마다로 승리할 수 있으리라. 예수님은 마귀에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항상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오늘, 바로 오늘, 그러니까 매일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셨다(마6:11-13). 요즘 우리는 왜 백신 주사를 맞는가. 코비드19의 위험에서 이기기 위함이다. 그러니 오늘을 기도로 진(陣)치지 않으면 마귀의 오늘 공격에 여지없이 허물어질 것이다.
여기 마귀의 날마다를 이기는 전략이 또 있다. 바울은 알았다. 날마다의 미끼를. 그래서 그는 이렇게 선수(先手)를 쳤다.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b). 역시 바울이다. 매일 죽는다는데 마귀가 매일 뭘 어쩌겠는가. 날마다에 대한 날마다의 전략이 없이는 날마다 패배한다. 바울은 날마다 죽음으로 날마다 승리하겠다는 전략으로 평생 살았다. 그 전략은 옳았다.
마귀의 날마다를 이기는 또 다른 방법은 날마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고 사는 것이다.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우리 앞에는 어려운 일들이 있다. 그 때마다 우리가 취할 태도가 있다. “인생의 어려운 순간마다/ 주의 약속 생각해 보네/ 내 맘속에 믿음 잃지 않고/ 말씀 속에 위로를 얻네/ 주님의 도우심 바라보며/ 모든 어려움 이기도다/ 흘러가는 순간순간마다/ 주님 약속 새겨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보배로운 약속을 굳게 붙잡고 사는 것이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않고 언제나 함께하며 돕고 지키겠다는 약속을 붙잡고 오늘도 사는 것이다. 곧 다시 오시겠다는 예수님의 약속을 오늘도 믿고 참고 견디는 것이다. 날마다 던지는 마귀 미끼를 덥석 물어 수치스런 인생이 되고 싶지 않다. 날마다 기도로, 날마다 죽음으로, 날마다 약속을 붙잡고 날마다 이기고 싶다.
03.06.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