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스페인에는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화려한 것들이 많습니다.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도시 바르셀로나에는 건축을 시작한 지 100년도 넘었지만 아직도 완성되지 않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위풍당당한 모습이 있고, 꿈과 동화 같은 알록달록한 색채를 가진 구엘 공원이 있습니다. 유럽 최고의 명절 중 하나인 크리스마스를 위한 시장도 있는데 바르셀로나 대성당 앞에서 열리는 산타루치아 마켓은 유럽 전역에서도 알아주는 크리스마스 시장입니다. 300개가 넘는 가게로 이루어진 산타루치아 마켓에서는 독특한 모양의 인형을 파는 가게가 있습니다. 인형의 종류는 종교지도자, 유명한 가수,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 아주 다양합니다. 그런데 그 인형 모두가 바지를 내리고 쭈그리고 앉아 힘을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처럼 가게에서 파는 인형은 모두 응가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찰리 채플린, 엘비스 프레슬리, 도라에몽, 호머 심슨 심지어 대통령도 교황도 바지를 내리고 힘을 주고 있습니다. '까가네'라는 이름의 응가하는 인형은 사람은 지위가 높으나 낮으나, 권력이 있으나 없으나, 돈이 많으나 적으나 모두 다 볼일을 본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사람이 본질적으로 평등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퍼온 글).
모든 차별 금지를 응가하는 인형을 통하여 해학스럽게 전하는 지혜가 참 신선합니다. 그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말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차별들이 존재합니다. 인종과 성별의 차별, 지식 재물 힘 권력 명예 등등을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차별은 항상 존재해왔고 지금도 존재하지만 앞으로는 존재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사는 지역에는 흑인들이 많이 삽니다. 그들 가운데 들어가 혼자 있을 때면 그들의 선한 눈과 따뜻한 마음을 마주함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어색함과 두려움을 느낍니다. 몇 년 전에 아프리카 케냐에서 30년 넘게 사역하신 선교사 부부와 함께 잠시 산책을 나갔습니다. 그분들이 하시는 말씀이 "여기가 아프리카네요" 하며 스스럼없이 그들에게 다가가 자연스러이 하나가 되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자매됨에 대해 진한 감동을 가졌습니다.
근래 미국에서는 인종차별 사건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얼마 전 5월 25일 흑인 조지 플로이드(46)가 경찰 무릎에 목이 눌린 채 숨을 헐떡이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공개되었습니다. "I can’t breathe." "숨을 쉴 수가 없어요"라는 절박한 간청에도 아랑곳없이 백인 경찰들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말을 할 수 있으면 괜찮은 건데"라는 잔혹한 말을 남기며 그의 목을 무릎으로 계속 짓눌렀습니다. 8분 46초. "엄마, 엄마"를 외치며 "숨을 쉴 수 없어요"라고 16번 간청했는데도, 시민들이 죽을지도 모르니 제발 그만하라고 외쳤는데도, 백인 경찰관 데렉 쇼빈이 무릎으로 희생자 조지 플로이드 목을 누른 시간입니다. 조지 플로이드는 그 자리에서 운명하였습니다. 3개월 후 8월 23일 위스콘신 주에서 발생한 흑인 남성 제이컵 블레이크(29) 사건. 블레이크가 운전석 쪽 차 문을 열고 차량 안쪽으로 고개를 숙였고 이때 바로 뒤에 접근한 경찰관이 그의 상의를 손으로 잡아끌며 7차례나 총을 발사해 그는 중태에 빠졌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 장면을 차 안에 타고 있었던 브레이크의 세 아들이 목격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제 2의, 제 3의 조지 플로이드와 제이컵 블레이크가 나와야 인종차별이 없어질까요?
이 가운데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으로 촉발된 미국의 시위현장에서 백인소녀가 경찰로부터 흑인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나서는 35초 분량의 영상이 트위터에 공개됐습니다. 영상은 경찰 앞에 선 흑인소년이 양손을 들어 보이는 장면으로 시작됐는데 소년은 자신은 위협을 가할 생각이 없다는 듯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순간 군중 틈에서 책가방을 멘 백인 소녀가 등장했고 그 소녀는 망설임 없이 걸어가 소년의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백인소녀는 흑인소년과 똑같이 양손을 든 채 무릎을 꿇으면서도, 한쪽 팔로는 소년을 보호했습니다. 경찰 4명이 거리를 좁혀왔지만 두려운 기색은 없었습니다. 경찰이 소녀의 팔을 붙잡고 일으켜 세우려 하자, 소녀는 뒤로 돌아 소년을 감싸 안았습니다. 백인소녀는 흑인소년을 붙잡고 온몸으로 보호했습니다. 그러자 이들 주변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바닥에 엎드린 흑인 2명 앞으로 백인 4-5명이 장벽처럼 섰습니다. 다른 백인들도 하나둘씩 합류했습니다.
하나님을 자유롭게 믿고 싶어서 건너온 청교도들이 세운 이 나라 미국에서 어떻게 모든 차별을 금지하시고 공평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이렇게나 거역하는지 그저 멍멍하기만 합니다. 제 개인이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마는 이 지면을 통해 한 가지 제안은, 미국에 있는 우리 한인교회들만이라도 자기 지역에 있는 경찰관들에게 ’응가하는 인형‘의 의미를 설명해주고 전달하는 일입니다.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작은 보탬이 되기를 바라고 더 이상 이런 일들이 이 땅 미국에서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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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