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은 1942년생으로 카운티 의회 의원을 잠시 한 뒤 나이 서른이 채 되지 않았던 1972년에 델라웨어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최연소 당선 기록을 세웠다(취임식이 당선 몇 개월 뒤여서 30세가 넘어야 상원의원이 될 수 있는 규정을 지킬 수 있었다).
이후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연방 상원의원으로서 법사위원장, 외교위원장 등을 맡았고 버락 오바마 정부의 부통령을 지냈다. 그 과정에서 자신만만하면서 한편으로는 수다스러운, 친근하고 안정된 느낌을 주는 완숙한 경지의 경험 많은 중도파 백인 원로정치인이란 이미지를 쌓아왔다. 그러나 뚜렷한 자기 색깔이 없어서, 중도적 입장에서 민주당을 이끌어왔다기보다는 이끌려왔다는 평을 받아온 그가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된다면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킬까?
트럼프 진영은 그를 줏대 없는 어릿광대라고 조롱하는 한편, 그가 대권을 잡으면 위험한 민주당 내 좌파그룹의 인질이 돼, 그들이 주장해온 경찰부서 해체(시민자율치안체제로의 이행), 총기 소유 금지 등에 덜컥 동의할 것이라며 보수층 표심을 자극한다. 민주당 내 진보그룹은 타성적인 중도주의에 빠져 당내 세력에 이끌려온 그가 미국의 병폐들을 과연 치유할 수 있겠느냐고 의심한다.
민주당 내 진보세력은 대선 예비선거 때 공적 의료보험 도입과 경찰부서 폐지 등을 주장했다. 그들은 바이든이 당선되려면 이런 좌파적 요구를 수용해야 투표장으로 열정적인 유권자들을 불러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2018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 다수를 장악하는 승리를 안겨준 것은 진보세력이 아니라 원래 공화당이 지배하던 중도세력의 이탈이었다. 이들은 지금 바이든에게 꼭 필요한 존재들이다. 그리고 트럼프 정부의 폐단을 겪은 지금, 미국의 다수 유권자들에게 호소력이 있는 것은 ‘미국 정신’과 ‘예의’의 회복을 부르짖는 온건하고 예의바르고 선량한 이미지의 바이든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바이든의 그런 선량하고 친근감 있는 온건 중도 이미지와 함께 개인적 불행이 겹쳤던 가족사를 통해 바이든이 깊은 공감능력을 갖춘 걸 장점으로 꼽는다. 그가 최연소 연방 상원의원이 된 직후 첫 번째 아내와 한 살짜리 딸이 교통사고로 숨졌고, 그 사고에서 살아남았던 아들(Beau)은 2015년 그가 오바마의 러닝메이트가 됐을 때 암으로 죽었다. 그 슬픔 때문에 그는 웬만하면 대선후보로 지목되는 부통령 프리미엄을 포기했다. 그가 다시 정쟁의 한복판으로 돌아온 계기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2017년 버지니아 샬러츠빌에서 벌인 행진을 트럼프 정부가 옹호한 것이었다. 2018년 중간선거에서 바이든은 지원유세를 벌였고 지난해 3월에야 대선 출마 의사를 밝혔다.
바이든으로선 이번이 세 번째 대선 출마선언이다. 첫 번째는 1987년 대선 때인데 표절시비로 하차했고, 그 20년 뒤의 두 번째 도전에서는 아이오와 당원대회에서 예비후보들 중 5위로 순위가 떨어지자 사퇴했다. 이번 세 번째 도전에서도 예비후보 경선 초기에 계속 신통찮은 성적을 얻었으나, 민주당 공식후보로 선출되더라도 낙선할 게 뻔한 버니 샌더스를 밀어낼 후보가 그뿐이라는 당내 합의에 따라 민주당의 초계파적 대선후보가 됐다.
그는 원래 낙태 허용문제나 학교 내의 인종차별 폐지, 범죄 엄단정책에 미온적이었고 금융규제완화를 지지해왔다. 그러나 버니 샌더스의 등장이 상징하는 민주당 자체의 좌표 왼쪽 이동과 함께 그도 자연히 반대쪽으로 움직였다. 그리하여 처음엔 “트럼프 타도”가 단일 목표였으나 코로나 팬데믹 이후 그것만으로는 복고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게 돼버린 상황 변화를 맞이했다. 말하자면 급작스레 바뀐 세상에 걸맞은 새로운 정책들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바이든의 정책공약 리스트 속에는 최저임금 인상, 노조보호, 파산 및 선거자금 관련법 개정 등 진보적인 내용들이 많이 들어있으나, 이코노미스트는 그 중 눈에 띄는 몇 가지를 예시했다.
우선 의료보험 개혁이 손꼽힌다. 트럼프 정부는 오바마 정부의 미적지근했던 의료보험 개혁조차 폐기하려 애썼지만 결국 성공하진 못했다. 바이든의 의료보험 개혁안은 10년 전만 해도 과격하게 들렸을 공적의료보험 도입을 포함하고 있다. 오바마 개혁안을 넘어서서, 개별적 사보험을 없애고 국민 모두가 가입하는 공적의료보험을 완성하는 것이다. 노인의료지원 혜택 대상자의 적용연령도 65세에서 60세로 낮추겠다고 한다.
또 하나는 기후변화 대응책을 강화하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탈퇴해버린 파리 기후변화협약에 미국이 다시 들어가고, 온난화가스 배출을 2050년까지 제로(0)로 만들며, 모든 자동차들을 전기차로 바꾸는 등 오바마 정부 구상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려 한다.
그러면서도 핵에너지와 셰일오일 개발을 막진 않는다. 대신에 오바마 정부 때 도입하려 했으나 실패했던 탄소배출권 거래제보다 훨씬 더 포괄적인 탄소세 도입으로 수익자가 오염제거비용을 지불하게 한다.
이런 개혁을 완수하려면 상원(전체 100석) 내 공화당 의석 중 3석 이상을 빼앗아 와야 민주당이 과반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고소득자에게 부과하는 한계소득세율 39.6% 회복, 트럼프가 삭감한 법인세율 인상(21%→28%) 등을 내용으로 하는 ‘화해법안’은 상원 단순 다수로도 가능하다. 하지만 의사진행 방해, 즉 필리버스터링(filibustering)의 ‘인질’이 되는 것을 막으려면 상원에서 60석을 확보해야 한다. 지금 클린턴뿐만 아니라 오바마의 후보시절보다 지지율이 훨씬 더 높은 바이든일지라도 민주당 의석을 13석이나 늘리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11월대선 이후 코로나 팬데믹에 대처하기 위한 초당파적 협력을 추구해야 할 바이든으로선 그런 압승을 바라지도 않겠지만, 대선 승리 후에도 트럼프 지지자들의 반대 목소리는 더욱 요란할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바이든이 당선될 경우 눈에 띄는 정책 변화 중에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으로 대외정책(외교안보)을 빼놓을 수 없다. 바이든은 국제관계에서 트럼프 정부가 포기한 글로벌 리더와 세계질서 수호자로서의 미국 역할을 되찾으려 할 것이다.
요컨대 오바마 시절의 외교방식으로 돌아가려 하겠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닐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예상한다. 아마도 바이든은 군비통제 협의를 부활시켜 러시아 및 이란 등과의 협상을 재개할 것이다.
그리고 앞서 얘기했듯이 트럼프가 내팽개친 파리 기후변화협약에 복귀할 것이며, 그와 관련한 국내외 프로젝트들도 활성화할 것이다. 그리고 부패와 독재를 막고 인권신장을 목표로 하는 ‘민주주의를 위한 글로벌 정상회의’를 개최할 계획이다. ‘관계 쌓기’에 남다른 재주를 지닌 바이든에겐 자신의 장점을 살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또한 중국의 강력한 공세와 압박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된 아시아 주요국들이 바이든 시대의 개막을 반길 것이라며, 바이든의 미국이 중국에 맞서는 또 한쪽의 균형추가 될 것임을 이코노미스트는 예고했다. 이는 바이든의 미국이 트럼프의 미국과는 그 방식을 달리하겠지만 중국을 경쟁 맞상대로 여기고 어떤 형태로든 강력 대응할 것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을 것으로 본다는 얘기가 아닐까.
오바마는 그 종족적 특색과 이력 때문에 대통령 당선 자체가 엄청난 변화를 함축했다. 그는 자신의 그런 특성에서 비롯된 빈 곳을 메워줄 경험 많고 안정감 있는 원로·백인 정치인을 러닝메이트로 택했다. 그러나 그의 후임은 알다시피 반(反) 오바마 기치를 앞세운 경험 없고 혼란스럽고 냉혹한 사람에게 넘어갔다. 이제 다시 여전히 안정감을 주고, 또 그 때문에 사람들의 변화 욕구를 대변할 바이든이 차기 대통령이 된다면 그런 기대를 배경삼아 오바마 정부 때보다 더 야심만만한 정책을 펼 수 있지 않을까.
복고냐 급진이냐? 이코노미스트는 자신들이 던진 이 질문에 대해, 복고도 급진도 아니다, 중도를 고수하라, 그렇게 얘기하는 듯하다.
그 중도란 예전의 미적지근한 타성적 중도주의자 바이든의 그것이 아니라 민주당의 좌표 이동을 따라 함께 왼쪽으로 좀 옮겨간 바이든의 중도다. 당내 좌파그룹의 요구를 무시하진 않되 당선에 필요한 중도 우파들을 끌어들이는 ‘절충적 중도’지만, 일정 분야에서 오바마 정부보다 더 ‘급진’적인 중도다. 이는 바이든이 변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서 있는 지형 자체가 왼쪽으로 움직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이동의 최대 동력 가운데 하나는 바로 코로나 팬데믹이다. 그야말로 세계를 코로나 이전(BC)과 이후(AC)로 나누게 만든 코로나 팬데믹이 미국 대선의 지형도를 완전히 바꾸었다. 그 최대 피해자는 트럼프다.
이코노미스트 선거예측 모델이 제시한 답이 맞을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기독교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통전적인 대응책은 우리에게 필요하다.
08.22.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