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현재,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이 코로나19로 인해 고통을 겪으며 신음하고 있다. 질병으로 인한 고통은 육체적 아픔만이 아닌 정치·경제적 아픔이며 또한 정서적, 영적인 아픔이다. 교회들도 모든 예배와 모임을 온라인으로 전환한 지 벌써 두 달이 됐다. 교회마다 목회자들과 리더들이 애쓰고 있지만 아픈 사람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인들을 돌보기에는 역부족이다. 게다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보니 영적인 가뭄도 예상된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재택근무를 하고 있지만 꼭 필요한(essential)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코로나바이러스의 감염 위협에도 외부에서 일하고 있다. 상가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식당은 테이크아웃 주문만 받고 있다. 5월 7일 기준으로 미국 내 실업수당 신청건수는 3,350만을 넘어섰다. 이렇게 해고된 인원의 수는 직업인구 5명 중 1명꼴 정도다. 또한 이 시기가 더 길어지면 아직 실직하지 않은 자들도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리라 예상된다. 대학을 갓 졸업한 학생들과 실직으로 인해 새로운 직장을 찾아야 하는 사람들의 고용불안뿐 아니라 지금 겨우 견뎌내고 있는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생존도 어려워질 것이 자명해지는 현실이다.
이들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을 찾기 위해 아직 코로나바이러스가 가라앉지도 않은 상태에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아니면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현재의 자택대피(shelter-in-place)령을 더 오래 유지할 것인가가 요즘 정치권의 쟁점이다. 어떤 결정이 나든지 그들의 결정은 미국 내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 것이고 우리 모두는 그 여파를 감당해 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시국을 1929년 경제 대공황의 시기와 견주어 이야기한다. 지금까지 그 어떤 다른 자연재해와는 달리, 코로나19는 지역과 계층 그리고 성별과 인종의 차이와 무관하게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총체적 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2020년 성령강림절을 맞아 교회는 말씀과 기도 그리고 성령의 역사를 간구해야한다. 하나님께 간구함은 여전히 위기에 대처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교회는 기도와 말씀 묵상 그리고 성령의 역사로 믿음 있는 결정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교회는 의무가 아니라 은혜에서 나온 능력으로, 장기간 지속되는 코로나19로 인한 위기 속에서 지역사회를 돌보고 정서적, 영적으로 힘든 사람들을 돌볼 수 있다.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재택거주 명령을 받고 있는 현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며 무력감을 느낀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평소처럼 식사하고 병원진료도 받으러 갈 것이다. 그러나 평소와 같지 않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힘이 없다.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이럴 때 우리가 전 세계의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일은 무릎 꿇고 도움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특별히 성령강림절을 맞는 이 순간에 드리는 기도는 더욱 더 간절하다. 바로 성령의 부으심이 절대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이다.
성령 세례를 받고 거리로 나가 담대히 복음을 전한 초대교회 성도들의 전도의 힘도 바로 이 성령강림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를 위시해 초대교회 지도자들이 설교할 때마다 3천명씩 회개하고 돌아오는 회개운동도 바로 이 성령의 역사였던 것이다. 이 성령의 강림은 사랑의 원동력이 되고 회개의 눈물의 샘이 되고 위로와 격려와 용기의 동반자가 된 것이다.
성령강림 후 이 믿는 공동체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공동체를 이뤄나갔다. 미신과 우상의 세계로부터 탐욕과 이기적인 세상으로부터 나와서 이웃의 필요를 이해하고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랑의 공동체로 바뀌었다.
따라서 성령강림은 교회의 존재 이유를 분명히 한다. 그것은 바로 세계 모든 곳에까지 복음이 전파될 수 있도록 교회는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으로 무장이 돼 있어서 그 사명을 끝까지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성령강림은 온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성령강림은 교회를 만들었다. 성령강림은 당시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사람들을 변화시켰다. 성령강림은 오늘날에도 그 당시와 똑같은 역사를 이뤄 가신다.
너무 불확실한 현 상황에 너무 지치고 힘들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바로 성령님께서 오늘 여러분을 위해 오셨다. 겁에 질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있던 제자들을 향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숨을 내쉬시며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하시며 주셨던 성령이 바로 오늘 이 자리에 오신 것이다.
“보혜사”라고 번역된 “파라클레토스(parakletos)”는 본래 희생을 각오하고 친구의 무죄를 위해 줄곧 함께 앉아서 힘이 돼주고 위로해주는 변호인을 의미한다. 오순절 다락방에서 바람 같고 불의 혀 같은 성령을 체험한 제자들이 어째서 그토록 용감해지고 자신이 생겨서 의욕이 넘쳤을까? 그것은 이 파라클레토스, 위로자 성령의 놀라운 힘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약속의 말씀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는 바로 이 성령의 강림으로 가능한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세상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음을 사람들에게 일깨워줘야 한다. 우리의 육신은 연약하고, 세계는 불확실하며, 우리는 모두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만이 폭풍을 잠잠케 하실 수 있으며, 반드시 그렇게 하시리라는 믿음 가운데 유일한 반석 되시는 그분을 세상에 전파하며 영화롭게 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다가가며 진정한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아무쪼록 하나님이 이 시련의 때, 다시금 그리스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시고 그 나라를 넓혀 가시기 위해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길 기도한다.
<편집부>
05.23.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