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의 마음에 빛이 있다면 무슨 색깔일까? 잿빛이리라. 잿빛은 먹구름 색이다. 검정에 가까운 짙은 회색이다. 온 땅에 흐드러졌을 노란 개나리도 못보고 분홍 진달래도 못보고 지나오다 5월을 맞았다. 짙은 향기와 함께 자색, 보라색, 크림색 등 다양한 색깔을 뽐내던 라일락도 숨죽이며 숨어 있던 2020년의 봄이었다. 계절의 여왕 5월이 늘 대동(帶同)하였던 하얀 목련도 지금은 제대로 볼 수 없다. 내 마음에 잿빛이 있으니 세상의 모든 색깔도 칙칙하게 보인다.
교우들의 가정에 어린이들이 있다. 아들들의 가정에도 아이들이 있다. 저들도 뛰어놀 봄을 빼앗긴 채 5월을 맞았다. 우리의 어린이들이 왜 이런 답답한 시간을 언제까지 보내야 하는지, 미안함이 가득하다. “애들아,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얼마나 힘드니? 꼭 갇혀 있기가. 너희들이 싱그러운 봄을 송두리째 빼앗긴 것은 우리 어른 탓이다. 아니, 내 탓이다.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았어야 했는데. 미안하다. 용서를 빌고 싶구나, 아이들아....”
며칠 전 나지막이 불러보았다. 어렸을 적에 해맑게 불렀던 노래였다.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여름엔 여름엔 파랄 거예요. 산도 들도 나무도 파란 잎으로 파랗게 파랗게 덮인 속에서 파아란 하늘 보며 자라니까요.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겨울엔 겨울엔 하얄 거예요 산도 들도 지붕도 하얀 눈으로 하얗게 하얗게 덮인 속에서 깨끗한 마음으로 자라니까요.” 노래를 부르는 가운데 눈에는 눈물이 맺혔고 마음에는 먹먹함이 깃들었다. 그리고 “그래, 이건 아니야. 내 마음이 잿빛은 아니지. 내 마음에 색깔이 따로 있었잖아. 계절마다 그랬듯이 내 마음에 5월의 색깔도 있었잖아.” 그 노래를 부르고 난후 이렇듯 억울함과 분함과 서러움이 함께 몰려왔다.
내 마음에 잿빛을 벗고 5월색을 입고 싶다. 어린이들의 천진난만(天眞爛漫)한 맑은 웃음 색을 입고 싶다. 어린이들의 이리저리 뛰노는 채색(彩色)을 입고 싶다. 어린이들의 똘망똘망한 눈망울 색을 입고 싶다. 지나친 욕심인가? 아무튼 우리 모두가 자기의 마음에 드는 5월의 색깔을 입고 이 5월 중에는 꼭 다시 만나자. 내 마음의 문을 열고 그대에게 내 마음의 색깔을 보이리라. 그대의 마음을 열고 그대의 빛을 내게 비추어 달라. 누구도 빠져서는 안 된다. 우리 함께 마음의 빛을 쏟아내야 한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화려한 5월의 색을 함께 빚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피콜로는 어디 갔어?”라는 이야기다. 아주 오래 전 이탈리아의 명지휘자 미카엘 코스타가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앞두고 백여 명의 단원들과 함께 마지막 리허설을 할 때였다고 한다. 단원 중의 하나인 피콜로는 자기 악기 소리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각각 악기를 소리를 내는데 나 하나쯤 소리를 안내도 있어도 괜찮을 거야.” 그 때 지휘자는 최종 리허설을 중단시켰다. 그리고 크게 소리 질렀다. “피콜로는 어디 갔어?” 피콜로는 빠지면 안 되는 것이었다. 피콜로는 반드시 함께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색을 만들어야 했다. 이 5월에, 다시 모일 그 때에 피콜로가 되지 말자. 피콜로가 되어 슬쩍 숨어 있으면 아무도 모르게 넘어가겠는가.
하나님은 정확히 아신다. 그리고 찾으신다. “피콜로는 어디 갔어?” 노래하자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5월엔 5월엔 빛 날거에요.” 화려한 빛의 쇼(show)를 펼칠 준비는 됐는가? 드디어 5월, 이제 막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05.02.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