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사랑이 크리스천에게 최고의 사랑은 아니지만 사랑해야 하는 대상인 것만은 분명하다.”
아버지는 빳빳한 성조기를 집 밖에 게양하시곤 했다. 국경일뿐만 아니라 1년 내내 국기를 달았지만 아버지는 한 번도 그 이유를 말씀해주신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특별한 애국자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이기는 했지만, 전쟁에 대해서는 넌더리나는 기억밖에 없어보였다. 아버지는 의회에서 분석가로 일하시는 동안 중요한 정책 문제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공청회에 참여한 적이 있다. 아버지는 미국의 민주주의 체제를 존중했지만, 그렇다고 감상적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분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집에는 늘 성조기를 꽂아두셨다.(What's Right About Patriotism: The nation is not our highest love, but it still deserves our affection).
크리스천이 애국심을 품는 것이 신학적으로 옳은 일일까? 하나님 나라 시민이라는 신분을 가진 기독교인이 이 세상 나라를 향한 충성의 깃발을 흔들어도 좋은 것일까? 다른 문제들도 그렇지만, 이 문제 역시 크리스천들은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숫자상 감소 추세를 보이는 미국 우파 크리스천은 조국을 향한 사랑을 표하고, 그 사랑의 증표로 자랑스럽게 성조기를 흔든다. 반면 좌파 크리스천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로서 전 세계를 향한 사랑을 강조하고, 그중 일부는 미국의 행동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결국 우파는 좌파의 국제주의와 비판적 태도를 공격하고, 좌파는 국수주의에 대한 잘못된 헌신을 비난한다.
철학자 제프리 스타우트는 신앙심이란 존재의 근원을 향한 감사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미덕이라고 말한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애국심도 일종의 신앙심으로 볼 수 있다. 국가는 인간 존재의 실존 장소이자 지리적 근원지이며, 우리는 그 안에서 태어나고, 움직이고, 생활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감사의 표시로 애국심을 표하는 것이다. 하나님께만 충성하고 나라에 충성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곧, 하나님만 경외하고 부모를 공경해서는 안 된다는 말과 똑같은 얘기다.
애국을 거부하는 것은 한 인간으로서 특정한 시대의 특정한 상황 하에 태어난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즉, 가족, 장소, 시대에 뿌리를 둔 자연적 유대관계를 묵살하는 행위다. 우리는 지금 이 시대에 우리 부모님에게서 태어나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이지, 다른 시대에 다른 부모님을 모시고 다른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공중에 떠다니는 혼이 아니라 육신이 있는 인간이며, 하늘이 아니라 이 땅 어딘가에 뿌리를 두고 사는 사람들이다. 애국이란 우리 육신이 자리 잡고 살아가는 특정한 나라에게 그저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려 깊은 진보 성향의 크리스천들은 감상적인 애국심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들은 20세기의 광적인 민족주의가 빚어낸 끔찍한 상황들을 경험했다. 현대사를 공부한 학생이라면 애국심이라는 말만 들어도 나치의 삼엄한 행진 장면이 머리에 떠오를 것이다.
절박하고 두려움이 팽배했던 시절에는 그런 식의 선동도 통했지만, 현대 민족주의는 그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 지금은 오히려 자신이나 가까운 관계 이외에, 조직이나 기관에 충성하려는 의식이 너무 약해진 것이 문제다.
라인홀드 니버는 1930년대 초반에 이런 말을 했다. “애국심에는 최소한 자기 자신을 벗어나 더 넓은 공동체를 위하는 미덕이 있다. 애국심도 국가적 이기주의의 발로라고 볼 수 있지만 분명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개인적 이기주의에서 발전된 형태다.”
신학적 견지에서 미국을 볼 때, 일말의 애국심이라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지역교회라는 사실은 애석한 현실이다. 미국의 공공 행사에서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찾아보기란 힘들다. 남아 있는 애국심의 표현이라곤, 그저 가끔씩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독립기념일 불꽃놀이 정도다. 그것을 보며 미국이 불꽃놀이 하나는 기막히게 한다는 것 외에 무얼 배울지 의문스럽다.
교회는 애국에 대한 복합적인 사명을 의식해야 한다. 미국인들이 애국심을 공개적으로 표현할 공간이 무너져 갈수록 교회의 어깨가 더욱 무겁다. 미국의 크리스천들은 신중하게 애국을 논해야 한다. 우리는 조국을 사랑하지만 영원히 이 땅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다. 조국이 번영하기를 바라지만 이 세상의 모든 나라와 지역들이 하나님의 눈에는 똑같이 소중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미국의 국가 이념을 존중하지만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진리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미국을 축복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동일하게 다른 나라도 축복하신다.
애국심에 대한 이러한 모든 근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를 사로잡는 생각이 있다. 조국을 사랑하고 충성할 줄 모르는 사람이 과연 하나님 나라를 얼마나 사랑하고 충성할 수 있을까!
(David P. Gushee has been the Distinguished University Professor of Christian Ethics and Director of the Center for Faith and Public Life at Mercer University since 2007. He was formerly the Graves Professor of Moral Philosophy and the Senior Fellow of the Carl F. H. Henry Center for Christian Leadership at Union University in Jackson, Tennessee).
08.31.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