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한 사회에서 혐오 표현이 확산되면 필연적으로 개인간, 집단간 갈등과 분열을 동반하고 결국 유무형의 거대한 국가적 손실을 초래한다. 혐오는 특정한 대상이나 집단을 향한 불쾌감이나 증오 등이 섞인 복합적인 감정이다. 이런 감정이 반복되고 증폭되는 과정에서 정도가 심해지면 특정 집단에 속한 다수를 겨냥한 범죄로 발현되기까지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부터 선거 유세에서 소수 집단을 표적으로 삼거나 이민자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연설들을 남발했다. 심지어 대선공약으로 무슬림 입국금지를 내세웠고, 당선되자마자, 보란 듯이 무슬림 국가들 중 몇 개국을 지정해 제한 입국을 시켰다. 또 남미 출신 이민자들을 범죄자처럼 막말로 몰아붙이며, 멕시코 국경에 이민자들의 불법입국을 방지하는 벽을 세워야 한다며, 지금까지 민주당 진영과 소비적인 정치 공방 중이다. 

얼마 전에는 민주당 유색인종 의원들을 향해 ‘원래 나라로 돌아가라’고 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차별적 발언을 규탄하는 내용의 결의안이 격론 끝에 16일, 하원에서 통과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결의안은 법적 구속력 없는 상징적 의사표시에 불과하지만, 통과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두 정당이 극도로 분열된 ‘트럼프 시대’의 풍경이었다.

미국 주요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평소 거친 언사와 공격성 발언들이 사회 분열을 조장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미국인 중 70%가 지난 5년 동안 증오를 조장하거나 조성하는 발언이나 가짜뉴스 등이 온라인을 통해 급증했다고 말할 정도다. 그리고 증오 범죄 증가에는 이러한 사회 분열이 어느 정도 깔려 있다는 지적이다. 한마디로, 사람들이(백인우월주의자들) 트럼프 대통령 때문에 정상에서 벗어나 대담해지고 있다. 소수 그룹이나 사회적 약자에게 그리고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고 증오하며 테러를 감행해도 어떠한 죄의식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상당히 불편한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2016년에 미국 전역에서 증오 범죄 건수가 증가했다. 인종, 종교, 섹슈얼리티, 장애, 출신 국가 등을 타킷 삼은 범죄가 2년 연속으로 증가한 것은 십여 년만의 일이다.

샌 버나디노에 위치한 캘리포니아주립대 '증오와극단주의연구센터'가 수집해 허핑턴포스트에 제공한 데이터에 따르면, 2016년의 증오 범죄는 2015년에 비해 5% 가량 증가했다(New Report Offers Proof Of US Hate Crime Rise In The Trump Era).

2017-2018년에도 혐오/증오 범죄는 미국 내 백인우월주의 확산과 함께 점점 더 증가했다. 미국의 최대 유대인 단체인 '반명예훼손연맹'(ADL)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백인우월주의자의 선전 활동은 미국 전역에서 1천187차례 이뤄졌다. 이는 2017년의 421차례와 비하면 182% 증가한 것이다.

또 남부빈곤법률센터(SPLC)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전역에서 활동 중인 혐오 단체의 수는 사상 최대인 1천20개를 기록했다.

미국 정부의 공식 통계도 극단주의자의 폭력이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방수사국(FBI)이 2018년 11월 발표한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에 보고된 증오범죄 건수는 전년보다 1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연방 정부나 주 정부에 공식적으로 보고되지 않은 동 범죄들이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Hate Crimes are up—But the Government isn’t keeping good track of them). 특히  FBI가 범죄기록을 제출하거나 정확한 정보를 제출하도록 법 집행기관에 강요할 법적 메커니즘이 없다. 여기에 참여 중인 사법당국 대다수 또한 혐오범죄를 기록하고 연방 당국에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 대해 특별히 엄격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대로 묻히는 동일 사건들이 숫자로 펼쳐 보이기에는 너무 많을 정도로, 미국사회에서 일상처럼 벌어지고 있다. 

1980년대 미국에서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인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증오범죄’(hate crime)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져 범죄 동기 분류표에 이 말이 포함됐다. 증오범죄는 인간의 차별과 배제를 금하는 인권의 근본원칙에 대한 도전이다. 

차별과 증오범죄는 연속선상에 위치한 유사한 성격의 두 얼굴이다. 증오범죄의 슬로모션이 일상적 차별이라면, 일상적 차별에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힌 것이 증오범죄라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이 증오 범죄를 이해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1. 증오범죄는 개인들 간 문제인가?

 

증오범죄는 세 축으로 구성돼 있다. 가해자는 개인으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피해자도 마찬가지다. 범죄행위의 범위 역시 단순 차별로부터 민족 멸절에 이르기까지 그 폭이 매우 넓다. 어떤 사람이 한 게이에게 주먹질을 한 것도 증오범죄이고 나치독일이 유대인 집단을 대량 학살한 것도 증오범죄다.

 

2. 무엇이 증오범죄이고 무엇이 아닌가?

 

증오범죄는 “인종, 피부색, 종교, 젠더, 성적 지향, 젠더 정체성, 장애 등의 근거로 형성된 적대 혹은 편견이 동기가 된 범죄”라고 정의된다. 그러나 증오범죄는 오해되기 쉽다. 모든 증오가 범죄로 연결되진 않으며, 혐오가 얽힌 범죄라 해서 모두 증오범죄는 아니다. 

직장에서 자신을 오랫동안 괴롭힌 동료를 증오해 범행을 저질렀다 해도 그것을 증오범죄로 볼 순 없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구체적인 증오를 품었는지의 여부도 일차적인 고려 대상이 아니다. 피해자 개인은 증오하지 않지만 그가 속한 집단을 싫어하므로 그를 죽일 수 있는 것이 증오범죄이기 때문이다.

 

3. 증오범죄의 핵심요소가 무엇인가?

 

증오범죄의 핵심은 피해자가 속해 있다고 생각되는 집단의 성격에 대한 ‘미움과 혐오’(아니무스)에 있다. 그런데 피해자의 집단귀속성, 즉 인종이나 성별, 성정체성 등은 어떤 본질을 가진 객관적 실체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그렇게 분류되고 사회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겉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어떤 측면을 절대적 기준처럼 취급해 그런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이 어떤 고정된 특성을 가졌다고 단정한 후 그들에 대한 증오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또한 증오범죄는 힘센 집단과 약한 집단 사이의 권력관계를 반영한다. 바버라 페리(UOIT, 온타리오 과기대 교수)가 이를 잘 지적했다. 

“증오범죄는 오명이 부여되고 주변화 된 집단에 가해지는 폭력과 위협이며, 주어진 사회질서의 위계구조가 불안정해질 때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의도를 가진 권력과 억압의 메커니즘이다. 증오범죄는 실제로건 상상으로건 가해 집단의 흔들리는 헤게모니와, 피해 집단에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종속적 정체성을 동시에 재창조하려는 시도이자, 자아와 타자 간의 ‘적절한’ 상대적 지위를 재설정해 양자를 확실히 구분하려는 수단인 셈이다.”

 

4. 증오범죄의 목적이 무엇인가?

 

피해자에게 고통을 가하는 것만이 증오범죄의 목적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어떤 주장을 퍼뜨리는 것도 목적이 된다. 그런 뜻에서 증오범죄는 ‘메시지 범죄’이기도 하다. 바버라 페리는 증오범죄가 발신하는 메시지의 수신자를 세 부류로 나눴다. 

예를 들어, 남미 이민자에 대한 증오범죄 메시지의 ‘직접 수신자’는 개별 피해자다. 전체 남미 이민자들은 ‘연계 수신자’가 된다. ‘이 나라에 남아 있으면 너희들도 언젠가는 당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받는다. ‘간접 수신자’는 일반대중이나 정부를 말한다.

 

5. 누가 증오범죄를 저지르나?

 

개별 증오자가 아닌 증오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현재 미국 전역에 1,020개 증오집단이 있다고 하나 이들은 전체 인구의 0.01%도 안 된다. 그러나 인터넷과 전자 미디어 덕분에 이런 미꾸라지들이 전체 공론의 장을 흐려놓을 수 있는 것이다. 보스턴에서 발생한 169건의 증오범죄를 조사해 가해자들의 동기를 밝힌 연구가 있었다. 

첫째, 증오범죄의 3분의 2가 청소년들의 열광심리와 폭언과 폭행 등 단순 난동에 의한 것이었다. 둘째, 방어적 증오범죄가 그 뒤를 이었다. 가해자는 피해자들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 영역, 지위, 생계, 존재기반이 위협받는다고 인식하고, 자신에게 방어할 권리가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따라서 자신이 행하는 폭력이 공격이 아니라 정당방위라고 믿는 경향이 있었다.

셋째, 보복적 증오범죄는 ‘우리가 당했으니 너희도 당해야 마땅하다’는 식의 대응을 말한다. 9·11 이후 아랍계 주민에 대한 공격이 이에 해당하는데, 전체 범죄의 10%에 지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사명감에 의한 증오범죄가 있다. 도덕적 대의명분을 확신하는 이데올로기형 증오범죄인데 흔히 극우파들의 조직적 활동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에 의한 증오범죄는 1% 미만에 불과했다. 

6. 증오범죄의 원인이 무엇인가?

 

가해자는 피해자에 대해 실제적·가상적인 위협을 느낀다. 피해자들 때문에 자기 삶의 기회, 삶의 방식, 사회경제적 지위, 신념체계 등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주관적 불안이 증오범죄의 배경 원인을 이룬다. 

또한 정치·경제·인구학적인 변동이 주류사회 구성원들에게 불확실성을 초래할 때 이런 문제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되는 집단을 공격할 동기가 생긴다. 주류문화와 비주류 하위문화가 서로 많이 다를 때 후자가 전자를 오염시키고 타락시킨다는 우려가 커진다. 여기에 더해 범죄를 촉발할 수 있는 매개적 사건이 있으면 심각한 증오범죄가 발생하곤 한다.

 

7. 증오범죄는 피해자에게 어떤 결과를 낳는가?

 

증오범죄는 일반범죄보다 훨씬 심각하고 장기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피해자가 속한 집단 전체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 

 

8. 증오범죄가 인권에서 왜 중요한가?

 

증오범죄는 인간의 차별과 배제를 금하는 인권의 근본원칙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9. 증오범죄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형사정책, 일반 사회정책, 사상적 대응이 모두 필요하다. 잠재적 피해 집단에 대한 예방적인 보호 조처 그리고 가해자의 가중처벌도 모색해야 한다. 증오범죄 방지법을 별도로 제정할 수도 있고, 증오범죄 예방까지 염두에 둔 포괄적 차별금지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불평등을 줄이고 사회적 절망의 늪을 비우는 일도 중요하다. 

잠시 성경으로 돌아가 보자. 

이스라엘도 지역 갈등이 심한 나라였다.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지면서 지역 갈등이 시작된다. 남쪽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이고 북이스라엘은 나머지 10지파로 갈라졌다. 남유다는 땅도 적고 인구도 적었지만, 예루살렘 성전과 다윗 왕가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그것 하나로 자존심을 세우며 북이스라엘은 멸시하기 일쑤였다. 

사마리아는 혼혈 민족이라 아예 상종도 안하고, 갈릴리는 촌 동네라고 대놓고 무시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오순절 사건 이후 각 나라의 방언으로 말할 때, 예루살렘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행2:7). 갈릴리 사람들은 후두음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서 끊임없이 조롱과 놀림의 대상이 됐다. 예루살렘 사람들이 볼 때는 갈릴리는 지방이고 시골 무지렁이로 생각했다.

따라서 요한복음 1장 46절,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는 나다나엘의 말은 당시 이스라엘에 편만한 갈릴리에 대한 편견을 있는 그대로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결론으로, 전문가들은 증오나 혐오 범죄의 해답/대안이 뚜렷하게 있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 대신 백인들을 대상으로 바른 역사교육과 함께 인종차별에 따른 미국사회의 문제를 직시할 수 있도록 보여주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만큼, 백인들은 자신이 어떤 특권을 누려왔으며, 사회에서 일어나는 인종차별에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400년 전 버지니아 제임스타운에서부터 시작된 노예제도라는 역사는 여전히 미국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Half of Practicing Christians Say History of Slavery Still Impacts the U.S.). 따라서 증오범죄와 인종간 화해를 위해서 바르게 기억하기와 그에 따르는 삶을 돌이키는 진정한 사과가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으로 부각된다. 그런데 문제는 한번 자리 잡은 편견은 바뀌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사회심리학자 고든 올포트는 저서 '편견의 본질'에서 "편견은 한번 고착화되면 이후 올바른 정보가 주어지더라도 그것을 강화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제거되기 어려운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가치판단이 아닌 심리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혐오'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내 생각에 편견이 있다'로 연결하기가 힘든 시대가 된 것이다.

 

07.27.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