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또 다른 인종차별주의!

WP, 지구촌 백인극단주의 부추기는 ‘아이덴티타리언’ 운동 배경과 소개 및 비판

요즘 유럽에서는 단순한 칵테일파티 초대와 극우파 모의의 시작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최근 오스트리아 언론은 마틴 셀너와 브렌튼 테런트 사이의 관계가 생각보다 깊다고 보도했다. 셀너는 반듯한 이미지의 ”오스트리아 아이덴티타리언 운동(Austrian Identitarian Movement)“의 리더이고, 테런트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모스크에서 총기난사를 벌인 인물이다. 테런트는 셀너의 단체에 기부금을 냈고, 이후 이들은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셀너는 테런트에게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알려주고 비엔나에서 만나 맥주를 마시자고 청했다. 테런트가 실제로 비엔나에 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호텔을 예약한 기록이 있다.

따라서 워싱턴포스트는 오피니언 난을 통해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극우단체들의 또 다른 인종 차별주의 운동을 비판한다(How Europe’s ‘Identitarians’ are mainstreaming racism).

이 둘의 관계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셀너는 현재 유럽 정치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이한 현상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바로 “극우 중개인”의 부상이다. 과거의 네오나치와 달리, 이른바 “아이덴티타리언(Identitarian)”들은 군화를 신고 머리를 민 채 어두운 거리를 배회하지 않는다. 

이들은 세련된 웹사이트와 프로 수준의 영상물을 자랑하며, 영국과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등 여러 유럽 국가에서 정식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구호를 외치며 거리 행진을 벌이는 대신, 난민들이 무대에 올린 연극을 방해하는 등의 “해프닝”으로 이목을 집중시킨다. 자신들은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며, 모든 문화를 존중하고, 다만 자신의 문화를 지키고 싶은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은 테런트와 같은 극단주의자들과 은밀히 관계를 유지하면서 이제는 정계 주류가 된 오스트리아의 자유당과 어울린다. 그러면서 인종주의적, 음모론적 사상을 인터넷의 주변부에서 주류 정치로 서서히 밀어 옮기고 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오스트리아에서만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들은 이와 같은 혐의를 부인한다. 영어로 찍은 한 영상(미국의 백인우월주의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서 셀너는 자신을 “애국자”로 칭하며 오스트리아의 아름다운 시골 풍경을 자랑하고 “언론의 자유”와 “문화적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류 정치인들도 이들과의 관계를 부인한다. 

오스트리아 자유당 대표인 하인츠 크리스티안 슈트라헤 부총리는 자신이 아이덴티타리언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 사진의 배포를 중단하라는 소송을 냈다. 최근 공개돼 논란이 되고 있는 영상의 내용을 봤을 때 여전히 언론 장악 시도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소송에서는 패하고 말았다.

관계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아이덴티타리언들의 사상은 자유당의 공식 언어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슈트라헤 부총리가 페이스북에 올렸던 “거대한 대체(Great Replacement)”라는 표현은 유럽 백인을 무슬림으로 대체하려는 유대인들의 계략을 일컫는 말로, 아이덴티타리언들이 주장하는 바의 핵심이다. “침략”으로부터 “유럽을 방어”해야 한다든지, “재이민(거친 말로 하자면 ”인종청소“가 된다)”이 필요하다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아이덴티타리언들의 언어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영국의 전략대화연구소(Institute for Strategic Dialogue)“가 온라인에서 “거대한 대체”라는 표현이 사용된 경우를 추적했더니, 트위터에서만 150만 여 건이 발견됐다. “재이민”이라는 용어 역시 아이덴티타리안과 독일대안당(AfD)과의 만남이 이뤄진 후 독일 내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물론 이들의 언어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영국 전략대화연구소 소속으로 이 주제의 보고서 출간을 앞두고 있는 제이콥 데이비는 “백인 대량 학살”에 대한 공포는 수십 년 전부터 존재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새로운 통신 기술의 발달과 새로이 형성된 국제적 극우연합에 이민 위기와 지하드 테러 위협이라는 현재의 정치 상황은 이들에게 완벽한 배경을 선사한다.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하나의 주제 아래 묶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극단화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거대한 대체”와 같은 음모론은 이민의 영향력과 이슬람교-민주주의의 양립 가능성과 같은 전통적인 대화를 대량 “재이민”, 나아가 살인의 정당화로 끌고 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극단화되지는 않겠지만, 극단적인 사상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생겨나게 된다. “거대한 대체”와 같은 아이디어의 부상은 사람들에게 이것이 즉각적이고 과격한 해결책을 요하는 위급한 존재론적 위기라는 인상을 준다.

이런 흐름은 최근 화제가 된 뉴스의 숨어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테런트가 작성한 “선언문”에는 이민자들의 “침략”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유대교 예배당에서 총기를 난사한 용의자는 “글로벌 유대인 엘리트들”이 미국의 인종적 구성을 바꾸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믿는다. 피츠버그 유대교 예배당 총기 난사 용의자 역시 유대인들의 조직이 “적대적인 침략자들”을 미국으로 데려온다고 믿는다. 

투자계 거물인 유대계 조지 소로스는 헝가리에서부터 미국 남부에 이르기까지 극우파들 사이에서 “유대인의 음모”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이탈리아의 마테오 살비니 내무부 장관의 입에서 “이민자들의 침략”이라는 말이 나올 때, 이들은 아이덴티타리언들과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이런 현상은 오스트리아에서나 미국에서나 경찰들에게 딜레마를 던진다. 셀너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하지만 그의 단체가 테러를 자극하는 것은 아닐까? 당연히도 셀너에게는 표현의 자유가 있다. 하지만 그의 발언들이 폭력을 유발하는 정치적 담론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재 셀너는 미국 입국을 금지 당했고, 오스트리아에서는 수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의 존재가 던지는 질문들은 법적인 문제만이 아니다. 도덕적이고 정치적이고, 디지털적인 문제다. 그리고 아직 우리는 이 문제들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

06.01.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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