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은 내가 갖지 못한 걸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뉴스위크, 베네수엘라에서 콜롬비아로 탈출한 어느 미망인의 육성 증언 보도

베네수엘라를 혼돈에 빠뜨린 위기가 갈수록 더 깊어진다. 초 인플레이션과 기아, 범죄와 질병, 죽음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삶을 찾으려는 베네수엘라인 수백만 명이 필사적인 탈출 길에 올랐다.

아나 카리나 팔라치오는 지난해 그들 중 한 명이었다. 남편이 사고로 사망하자 그녀는 딸을 임신한 상태로 어린 아들과 함께 고향을 떠났다. 그녀는 유엔과 연계된 국제이주기구(IOM)의 도움으로 콜롬비아에 합법적으로 입국했다. 현재 그녀는 베네수엘라 국경에 인접해 있는 콜롬비아 북동부 노르테데산탄데르 주의 비야 델 로사리오에 설치된 이주자 임시 지원센터에 머물며 주택과 일자리, 생후 6개월 된 딸과 두 살 먹은 아들의 돌보미를 구하는 중이다. 

다음은 그녀가 콜롬비아에서 인터넷전화 스카이프를 통해 뉴스위크의 제시카 퀑 기자와 가진 인터뷰 내용이다. 스페인어로 말한 그녀의 육성 증언을 그대로 옮겼다(Venezuelan Migrant on Fleeing Crisis: I Hope Juan Guaid Brings Change and 'It Truly Comes From the Heart').

콜롬비아로 떠나면서 베네수엘라 밖으로 처음 나갔다. 그동안 내가 살던 아라과 주나 마라카이 시를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정말 떠나기 싫었지만 그곳에서 더는 살 수 없다고 판단했다.

마라카이에서 네일과 눈썹을 관리하는 스타일리스트였는데 그 일자리도 잃었다. 대다수가 실업자가 되면서 삶은 생존에 필요한 먹거리를 찾는 문제로 변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줄을 서야 먹을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고기를 구할 수 없어서 하루 세끼 채소만 먹었다. 매일 줄을 서야 했다. 그나마 배급이 점차 줄어들더니 완전히 사라졌다. 아들이 병이 났지만 의사가 만나주지도 않았다. 약이 없기 때문이었다. 약이 있다고 해도 너무 비싸 살 수 없었다. 그곳에서 굶주리며 계속 살 수 없다고 판단하고 떠나기로 결심했다. 딸을 임신한 나는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베네수엘라를 탈출했다.

험난한 길이었다. 버스 안에서 난 완전히 겁에 질렸다. 콜롬비아 당국이 들여보내 줄지 너무 걱정됐다. 통행 카드를 갖고 있었지만 너무 불안해 곧 죽을 것 같았다. 다행히 우리는 문제  없이 콜롬비아에 입국할 수 있었다. 감격스럽기도 하고 겁이 나기도 했다. 곁에 남자 없이도 베네수엘라를 벗어날 수 있었기에 기뻤지만 그곳에는 아는 사람이 전혀 없고 누군가 나쁜 의도로 접근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초조하고 불안했다.

그때 ‘천사’가 나타났다. 그는 심리학자였다. 그의 도움으로 우리는 콜롬비아에 안착할 수 있었다. 나는 돈 한 푼은 물론 갈아입을 옷도 없이 콜롬비아에 도착했다. 지금은 이주자를 위한 임시 지원센터에서 지낸다. 집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이곳은 아주 편안하다. 마음이 많이 진정됐다. 음식도 충분하고 이곳 직원들은 우리가 형제자매인 것처럼 모든 애로 사항에 신경 써준다.

콜롬비아에도 사람이 많고 생각이 다른 사람도 있다. 그래서 우리를 따뜻이 맞아주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손을 내밀며 “이리로 오세요. 여기서 식사하세요. 무엇이 필요한가요? 샤워는 했어요?”라고 다정스럽게 말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이건 아니다. 나는 난민지원에 반대한다. 나는 베네수엘라인이 우리나라에 오는 걸 원치 않는다”고 말한다.

우고 차베스가 베네수엘라 대통령이었을 때 나는 어린 소녀로 공부만 했지 정치는 몰랐다. 물론 니콜라스 마두로가 그의 후임으로 대통령에 올랐을 때 난 여러 이유에서 그를 지지하지 않았다. 일자리도 없었고 단지 먹기 위해 허구한 날 줄을 서서 배급받아야 한다고 상상해보라. 마두로 대통령이 완전히 물러난 건 아니지만 이제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서방에서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그가 베네수엘라를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고 진심으로 기대한다.

앞으로 베네수엘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상황이 바뀌면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좋은 일자리를 얻고 이 나라에 적응하면 귀국할 생각이 없어질지 모른다. 미국 이주를 생각해봤느냐고? 당연히 우리 모두는 그런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콜롬비아에 올 때도 그랬지만 미국에 가려다가 어쩌면 죽을 수도 있다. 너무 행복에 겨워서 말이다.

나는 아들에게 강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 모든 것이 임시방편이며 머지않아 지나갈 것이라고 일러준다. 난 아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라고 독려한다. 우리 아들은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아들과 딸이 미래를 마음껏 꿈꾸고 미국으로 갈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그러면 언젠가 그들이 나를 미국으로 데려가지 않을까 싶다.

 

03.30.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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