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쉽게 볼 수 있는 바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가야했다. 오랫동안 준비한 퍼레이드였기 때문이다. 뉴욕에선 매년 음력설을 맞이하면 한인들과 중국인들이 함께 퍼레이드를 한다.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그 행진을 포기할 수 없었다. 이민자들이 삶의 현실에서 마주치는 거친 바람과도 같았기에 오히려 더욱 더 전의(戰意)가 고조(高潮)되었다. 그 날 다른 선택은 없었다. 앞으로, 앞으로. 그렇다. 거친 바람이 불면 그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 바람 앞에 눕든지, 아예 바람에 꺾이든지, 바람을 헤치고 더 앞으로 나가든지, 그 실체를 보인다.
36세의 젊은 신경정신과 의사로서 아내와 딸을 두고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폴 칼라니티. 그가 남긴 책 “숨결이 바람 될 때(When breath becomes air)"에 다음 같은 글귀가 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I can't go on), 나는 계속 나아갈 거야(I'll go on).” 죽어가는 자기 몸 때문에 자기의 환자가 있는 병실로 갈 수 없는 그가 기어코 다시 가고자 했던 그 병실. 결연(決然)한 그의 태도는 뭇 사람에게 숙연(肅然)함을 자아냈다. 역경(逆境)이 잠재우지 못한 사명감이었다.
세상 사람도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떠해야 하겠는가. “비바람이 앞길을 막아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눈보라가 앞길을 가려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이 길은 영광의 길, 이 길은 승리의 길, 나를 구원하신 주님이 십자가 지고 가신 길. 나는 가리라 주의 길을 가리라, 주님 발자취 따라 나는 가리라.” 바람, 제 아무리 거친 바람이 불어도 우리는 부르심을 따라 주의 길을 가야하고, 갈 수 있다.
내 손에 무엇인가 좋은 아이디어를 들고 있는데, 누군가 도와주지 않고 환경이 받쳐주지 않아 아무 일도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남 탓하는 사람들을 간혹 본다. 날 도와줄 바람이 불지 않는다고 슬퍼하지 말자. 그래서 손에 든 바램개비가 돌지 않는다고 울상 짓지 말자. 달리면 된다. 내가 들고 있는 것을 들고 냅다 달리면 된다. 그러면 바람개비는 돌아가고 내가 가진 아이디어는 작동하기 시작한다. 한국의 초대 문화부 장관 이어령 씨가 주창(主唱)한 “바람개비 원리”가 아니더라도, 어렸을 적에 누구나 체득(體得)한 바람개비 이치(理致)를 나이 들어 적용 못한다면 누구 잘못이겠는가.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은 선하다. 거친 바람도 선하고,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함도 선하다. 어떤 것도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은 선하고 우리에게 다 유익하고 필요하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7:14).
아~~바람이 분다. 오~~그 바람이 멈춘다. 바람이 있고 없음이 나를 바꿀 수 없다.